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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12. 2024

밤새 깨어 있었다

2024.7.12.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다.

몸이 피곤한 것과

잠에 드는 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피곤해도 잠들기 어려운 날이 있고

활기차도 금방 잠드는 날이 있다.


어제는 긴 저녁 산책을 했다.

낮동안 내린 비로 촉촉한 공원을

크게 두 바퀴 돌고 왔다.

요즘은 날이 선선해서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여유롭게 거닐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책을 좀 읽다가 잠자리에 누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곯아떨어질 줄 알았다.

책장은 넘기다 졸음이 쏟아져

몸을 누이게 했으니까.

그런데 웬걸, 불을 끄자

빛이 사라지듯

침대에 눕자 잠이 사라졌다.

당혹스럽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꺼풀과 발끝에서 끈적거리던

피로와 졸림이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오히려 쌩쌩하다.

공원을 몇 바퀴 뛰고 와도 될 듯.

보통 눈을 감으면 찰랑이는 수면

위아래를 머물다가 잠에 빠져드는데

이것도 소용없다.

베개에 머리만 스쳐도 쿨쿨거렸던

기나긴 이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일어나 무얼 하기도 그렇네.

몸을 살짝 움직여볼까.

반듯이 누운 몸을 옆으로 세워본다.

1분, 10분, 그리고 왼쪽, 오른쪽.

달걀프라이 뒤집듯 위치를 바꿔본다.

바뀌는 게 없다. 이런, 난감하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다 되어간다.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자세를 불편하게 했다가

눈 감고 멍 때리다가 다시 누웠다.

아, 진짜 잠이 안 온다. 다시 책을 볼까.

사랑이 없는 인생은

여름이 없는 일 년과 같다고 하던데

잠 없는 밤은 무엇과 같을까.

깊은 밤은

더블베이스 독주곡처럼 낮게 깔리는데

정신은

신나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울려 퍼진다.

초조해진다.

점점 더 피곤한데 점점 더 산뜻하네.

뭐지, 미칠 것 같다. 취침이 필요하다고.


이제 해가 뜰 시간이 다가온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가

현실이 되었다.

아무도 잠들지 마라니, 나는 자고 싶다고!

외로운 방에서 별빛과 노닐다

아침을 맞이하는 운명의 마법에 빠졌다.

승리할 수 있을까. 이 불면의 황무지에서

푸른 단잠을 피워낼 수 있을까.

아, 이 무정한 마음이여.

너는 나를 이렇게 팽개치고 깨워두는구나.

알람이 울린다. 이미 일어나 있어.

내가 알람을 깨운 것 같네.

오늘 밤새 깨어 있었다.


밤새 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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