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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15. 2024

'내 배신의 목록'(토니 호글랜드의 작품에서)

2024.7.15.


"이 배신자 같으니라고!

  네가 감히 어떡해..."

T는 빨간 울분을 토해냈다.

꽉 진 주먹이 부르르 떨리며

허공을 휘저었다.

창백해진 통통한 볼이 파르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T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거실을 맴돌았다.

창가 가장자리에 웅크린

마호가니 탁자 위에는

구겨진 편지지와 찢어진 봉투가

낙엽 조각처럼 나뒹굴었다.


"어떻게 내게, 그것도 네가 감히..."

습한 무더위에 숨이 막히듯

T는 입속에 걸린 말을

미처 내뱉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르네.

일단 물 한 잔을 마셔야겠다.

차가운 한숨을 내쉬고

T는 다시 편지지를 집어 들었다.

부릅뜬 두 눈이 종이를 뚫을 듯

글자를 훑어내렸다



내 배신의 목록.


존경하는 T님께.

본디 직접 찾아뵙고

미천한 저의 의견을

전달드려야 함이 도리이나,

머나먼 이국 땅에서 약소한 편지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저의 가련한 처지를

부디 드넓은 도량으로 용서하고

헤아려 주시기를 먼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10년 간 T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큰 은혜를

그 누가 감히 측량하고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 점만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고개가

절로 숙여져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항상 벅찬 감사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습니다.

T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서면으로나마

알려드릴 일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30여 년 전 T님께서는

큰 재산을 받으셨지요.

4천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유산으로 받으셨습니다.

이 자금을 토대로 사업을 키워

지금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부와 지위를 얻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자

엄청난 집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T님 곁에서

자본을 다루고 자산을 관리하며

일을 배운 시간이 꿈만 같습니다.

어찌 제가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

.

.




다시 읽는 편지지,

T는 끝내 다 읽지 못했다.

헛구역질과 구토가 나왔고

온몸이 떨렸다.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문밖으로 나가려던 T는

바닥에 쓰러졌다.

힘겨운 숨을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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