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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Oct 18. 2024

우리는 동이 트자마자 떠났다

2024.10.18.


짐은 많지 않았다.

어제저녁에 옷가지와 수건 몇 개,

세면도구와 비상약, 담요와 슬리퍼,

그리고 물 정도만 챙겨두었다.

차문을 닫고 시동을 켰다.

이제 출발이다.


아직 해는 보이지 않고

낮게 깔린 구름에 반사된

분홍주홍빛이 이른 아침을 물들였다.

하늘이 높아질수록 연보랏빛과

연한 파랑으로 색감이 물결쳤다.

10월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오늘,

우리는 동이 트자마자 떠났다.

목적지는 없었다.

따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차에 올라 어디로 갈까 잠깐 고민하다가

해가 뜨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한산한 도로를 경쾌하게 달렸다.

곧 높은 건물이 없는 탁 트인 하늘을 마주했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구름 사이로

하얗고 긴 강물이 흘러갔다.

비행기구름이다.

동에서 서로 크게 가로지르다가

고개를 아래로 돌렸다.

멀리 또 다른 비행운은

낙하하듯 남북을 긋고 있었다.

꽃의 이중창처럼 듀엣 항적운을 만났다.

자세히 보면 맨 앞에 비행기가

점으로 반짝이며 날고 있었다.

우리처럼.


조금씩 찬 공기에 물들어가는

가로수 단풍이 바람에 기웃거렸다.

아, 가을이구나.

이럴 땐 브람스 교향곡 3번을 들어야지.

삼삼한 음률이 다채롭게 피어나

너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드라이브의 맛이 살아나네.

첼로를 닮은 묵직한 공기가

열린 차창으로 들어와 뺨을 두드렸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그냥 떠나곤 했다.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달콤한 추억으로

가득한 여행들이었다.

함께 한 시간들,

그리고 함께 하기로 한 약속.

평생을 동행할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곱셈하고

슬픔을 나눗셈해줄 것이다.

그대는 나의 안식이고 평화라네.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주는 사람, 당신, 내 사랑이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남쪽으로 떠났다.

강을 지나 고개를 건너 바다에 닿았다.

우리가 닮고 싶은 마음을, 바다는

넉넉한 어깨로 품고 있었다.

바라만 봐도 좋은 건

바다도 그렇고 그대도 그렇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난 일정이 떠올랐다.

그때 참 좋았지. 녹턴처럼 삶에 스며드는 시간을

그저 즐길 수 있었으니.

세상이 같은 듯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었어.

그건 지금도 그래. 당신 덕분에

평범한 삶이 날로 새로워져.

저 모퉁이를 지나면 나타날 세계,

아름다운 장미가 향기로운 왈츠를 추는

다정한 풍경이 펼쳐질 듯하다.

아, 이제 해가 솟아오른다.

그들은 부드러운 가속을 더하며

부서지는 햇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동이 트자마자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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