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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Oct 29. 2024

당신은 물속에 있다

2024.10.29.


고요한 백색 소음 속

온몸을 누르는 부드러운 찰랑임.

빈틈없는 피아노 선율 같은 물소리가

말라붙은 고막 언저리를 문질렀다.

물 밖의 소리가 희미한 울림으로

몸에 닿고 희미해졌다.


물안경을 쓸 걸 그랬나.

눈을 떠보고 싶은데 겁이 났다.

따가우면 어떡해.

코에서 공기 방울이 보글거렸다.

가슴에서 메마른 답답함이 퍼져왔다.

산소가 부족해지고 있군.

수중 생활도 가능하게

아가미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숨 막히지 않고 물속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다면 신날 텐데.

무릎도 안 아프고 날씨가 나빠도 상관없지.

이제 목이 메고 얼굴이 갈라지는 것 같다.

푸! 물 위로 머리를 솟구쳐 숨을 들이켰다.

아, 살 것 같다. 체증이 쑥 내려갔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야지.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처럼

멋지게 입수해야겠다.


물속에 있으면 좋다.

이불 같은 압박감이 포근하다.

태어나기 전,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 있을 때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몸이 커질수록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었겠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와

가능성이 더 커졌겠지.

이제는 호흡이 허락하는 시간 동안만

물속에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더 큰 물속에서 탯줄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으니까.


언제든 물 밖으로 나오고 싶을 땐

고개를 쑥 내밀어야지.

아직은 참을 만 해.

물이라는 건 참 신기하지.

앞으로 나아갈 때는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 같은데 또 손과 발을 움직이면

힘을 뒤로 전달해 주거든.

그러고 보면 나쁘기만 한 것도,

좋기만 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지금 당신은 물속에 있다.

나를 감싸 안아주는 물속에서

태초의 평온을 느끼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당신은 물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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