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4.
"이제 이 집에서 머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A는 아쉬움을 담아 한마디 내뱉었다.
"그러게. 20년 세월이 짧지 않은데 벌써 과거가 되어버렸어.
참... 뭐랄까. 신기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그래."
J도 멋쩍은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의 전원주택 마을로 이사 온 게
바로 어제 같은데 하루가 일 년처럼, 일 년이 하루처럼 흘러간 날들.
후회는 없었다. 큰 아이의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
갖은 방법을 다 해보다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이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둘째의 천식도 많이 좋아졌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마음이 넉넉했다.
야근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위장 장애로 고통받던 A도 건강을 되찾았다.
J는 처음에는 한적한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는데
자연 속에서 사계의 변화를 몸소 마주하며 안정을 찾아갔다.
아이들은 잘 커서 독립했고 두 부부가 집을 지켜왔다.
A는 이곳에 좀 더 머물고 싶었는데 요즘 부쩍
신장이 나빠진 J를 위해 병원과 가까운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했다.
아주 떠나는 건 아니고 주요 짐만 추려서
가기로 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참에 창고도 좀 정리해야겠어."
A는 집 뒤편에 있는 간이 창고에 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갖가지 짐을 넣고 빼던 곳.
올해 봄에는 바다를 닮은 파란 페인트로
새로 칠한 나무문. 아직 쌩쌩하구먼.
손잡이를 돌리자 뽀얀 먼지향이
들기름처럼 구수했다.
"오랜만에 환기를 좀 할까."
일할 때 혼잣말을 하는 건 A의 오랜 버릇이었다.
벽 구석에 달린 창문을 열기 위해
그 앞에 병풍처럼 놓인 잡동사니를
창고 밖으로 꺼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짐을 모두 뺐는데
맞은편 구석에 있던 테이블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건..." A는 회상에 잠겼다.
아마 둘째가 학교에 입학할 즈음이었나.
5일장에서 샀던 접이식 나무 테이블이었다.
나뭇결이 많이 닳았네.
아이들이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간식도 먹고 하던 유년기의 받침대.
한쪽 다리가 부러져 일단 테이프를 붙여 쓰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치워두었는데 다시 만났다.
버리기에는 망설여지고 남 주기에는 멋쩍어
창고 품에 맡겨 두고 잊고 지냈는데...
"오늘 다시 보는구나."
A는 테이블을 꺼내 햇볕 아래 펼쳐 놓았다.
이른 오후의 햇살을 온몸으로 담아내는 모습이
지난날 우리 같았다.
반갑다.
그리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