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친절한 James
Dec 15. 2023
그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빗물이 내리는 선을 따라 마음을 그어 내리곤 했다.
생각도, 감정도 모두 내려 두고
하늘이 땅에게 보내는 눈물 담은 입맞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가 그렇게 여겨졌다.
물기에 젖은 상큼한 흙내음이 올라오면
그건 땅이 하늘에 보내는 아련한 미소 같았다.
그래서 비가 올 때 산책을 하면,
특히 숲길을 걸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작년이었구나.
장마철은 아니었지만
살짝 후덥지근한 바람이 감돌던
비자림에서 소나기를 만났잖아.
영원처럼 속삭인 10여 분이 참 좋았지.
옷은 좀 젖었지만 뭐 어때.
처음으로 혼자 떠난 일주일 여름휴가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아, 너무 오랜만인가, 먼 나들이는.
그녀는 비 오는 날이 좋았기에 달무리를 보면 반가웠다.
다음 날 비가 올 거란 비밀 약속 같았기에.
너도 우리끼리의 암호를 좋아했는데.
잠이 덜 깬 달이 눈을 비비며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
희뿌연 테두리에 담긴 동그라미, 너의 눈동자를 닮았어.
이제는 보고 싶다는 말도 그리워지는 내 마음이 틀린 걸까.
벌써 그런 걸까. 햇수로는 10년이 조금 안되는데.
그녀는 창가를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따라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날도 달무리가 떴다.
그와 손잡고 나란히 걷는 이 길,
반지 같기도 하고 단추 같기도 한 밤하늘 풍경.
넌 달걀프라이 같다고 했는데 그것도 그런 것 같네.
노른자가 너무 작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럼 너는 큰 흰자를 먹고 내가 작은 노른자를 먹을게 했던 너.
별거 아닌 말에도 피식 웃으며 서로 다정했던 우리.
달무리가 보인다고 항상 비가 온 건 아니듯
함께 한 나날이 즐거웠다고 항상 행복한 건 아니었어.
그녀는, 이제는 잊고 싶은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다가올 봄, 5월의 신부가 되어 달라며
달무리보다 빛나는 반지와 편지를 건네준 12월의 너.
수줍은 네가 정말 큰마음먹은 거란 걸 나중에야 알았지.
병세가 심해진 홀어머니가 걱정된다고
야간 당직을 마치고 경주로 내려가던 네가
그렇게 떠날 줄이야.
연락이 계속 닿지 않던 그날도
달무리가 보였고 다음 날 비가 왔지.
비는 오는데 왜 너는 오지 않을까.
하염없이 마음이 젖어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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