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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녀)는 평소대로 주문했다

2023.12.18.

by 친절한 James


"딸랑 ♬"

"어서 오세요."

그녀가 왔다.

왜 하필 내가 근무할 때마다 오는 걸까.

업무 인수인계서에도 적혀 있는 그녀.

이름은 몰라도 직원은 다 안다.

그녀는 항상 같은 자리,

창가 쪽 두 번째 테이블에 기둥을 등지고 앉는다.

한 번 숨을 고르고 또 같은 주문을 하겠지.

역시나, 그녀는 평소대로 주문했다.


"로제 파스타요. 페투치니면에 미트볼 주시고

생크림은 약간 적게, 토마토소스는 듬뿍 부탁드려요.

파마산치즈는 조금만요. 피클은 미리 두 접시 주세요."

이제는 외울 지경이다.

이 정도면 거의 만트라 수준 아닌가.

그녀가 주문을 시작할 때

동시에 같은 말을 암송하는 선배도 있다.

억양과 리듬이 기가 막히게 비슷하다.

뭐지, 자매일까.

어떤 선배는 그녀가 들어올 때

주방에 미리 주문을 한다.

이른바 작전명 'She'

그래도 되나 싶었는데 틀림없다.

한 번도 다른 메뉴를 시킨 적이 없다.

최소한 내가 본 50여 번은 그랬다.

미션이 떨어지면 조리실은 바빠진다.

일초라도 빨리 식사를 내놓아야 한다.

안 그러면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아니, 여긴 왜 이렇게 음식이 늦게 나와요?"

지금껏 사과를 한 매니저도 여럿이다.

아니 그럼 다른 데 가지

여기 계속 오는 이유는 뭐지? 궁금하다.


아무튼 오늘은 문제없이 지나갈 것 같다.

요리도 신속, 배달도 쾌속이었으니까.

지금은 바쁜 시간대가 아니라 더 그랬다.

의기양양 돌아와 카운터에서 다른 손님

식사 계산하는데 그녀의 호출이 울린다.

뭘까. "네, 잠시만요."

카드 단말기를 누르는 손이 바빠진다.

4만 5천 원을 45만 원으로 결제할 뻔했다.

"저기요!" 한 옥타브 높아진 음성.

네네 갑니다.


그녀를 보면 파리지앵이 떠오른다.

난 명품은 잘 모르지만

그녀는 옷을 잘 차려입었다.

패션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그건 부러웠다.


"아, 혹시 무슨 문제라도..."

"주방장이 바뀌었나요?

맛이 다른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

주방장은 10년 근속 중이랍니다.

사장님 동생이라고요.

"그건 아닌데요..."

뭐라고 말해야 하지.

꼭 이럴 때 하필 다 어디 갔냐.

신이시여,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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