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사표
새벽의 조용한 거실,
책상 위에 눕혀 둔 펜을 다시 세운다.
멈춘 줄 알았던 시간이,
사실은 내 안에서 글의 모양으로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한때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 문장으로 나를 꾸미려 했다.
글을 써도 마음은 늘 비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성과만 바라봤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하루 한 줄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분량보다 리듬을, 완벽보다 온도를 택했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적은 짧은 시, 산책길에서 떠올린 메모,
다정한 한 문장이 모여 작은 불씨가 되었다.
그 불씨는 올해 문학상 결선 무대까지 나를 데려갔다.
박수는 잠깐이었지만, 그 뒤로도 바람은 계속 불었다.
상이 증명한 것은 ‘끝’이 아니라 ‘계속’이었다.
나는 느꼈다.
글쓰기는 나를 세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내일도 앉을 것이다.
제목이 먼저가 아닌 마음이 먼저인 글,
문장에 숨어 있는 체온을 믿는 글.
민들레씨처럼 가벼운 문장을 멀리 날려 보낼 것이다.
언젠가 그 씨앗이 낯선 독자의 가슴에 내려앉아,
하루를 조금 더 견디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나는 기쁨과 감동을 건네는 작가가 되겠다.
한 권, 또 한 권. 세상이 한 칸 더 밝아질 때까지,
내 펜 끝에서 새벽이 다시 피어나게 하겠다.
새벽의 테이블에 남은 커피 자국
마른 펜 끝이 바닥을 긁던 밤들
수첩의 모서리마다 접힌 마음들
한 줄이 길이 되는 비밀을 나는 배웠네
돌아보면, 때로는 멈춘 듯 보여도
내 안의 시간은 조용히 달리고 있었지
첫 책 한 권, 세상에 등불처럼 놓였고
누군가의 책장에 작은 여백이 생겼어
거대한 함성은 아니었지만
한 문장의 숨결이 누군가의 새벽을 살렸기를
그날의 떨림이 내 어깨를 가볍게 했고
나는 다시,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었어
올해, 문학상 수상자에 내 이름이 불렸네
박수는 끝났지만, 바람은 계속 불었지
상은 목적지가 아니라 뒤에서 미는 손
넘어질 듯 내딛는 발에 붙여 준 용기
나는 그때 알았다
길은 앞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걸
오늘도 빈 의자가 나를 기다려
책상 위 햇살이 백지를 채우고
키보드의 미세한 파도가 문장을 밀어 올리네
한 줄, 또 한 줄—작은 다리가 생기지
어제와 내일 사이의 협곡을
건너는 법을 나는 쓰기로 배우네
글이 기쁨이 되는 순간을 사랑해
불안한 밤에 건네는 따뜻한 컵
문틈으로 들어가는 한 줄기 빛처럼
내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눈물과 웃음이 섞인 바다를 흔들면
그 파도 끝에 다시 내가 서 있어
숲 가장자리에서 민들레씨가 떠오르고
수평선 위로 어제가 가볍게 흘러간다
나는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그 선에
미래의 제목을 조용히 적어 넣지
포기 대신 쉼표, 두려움 대신 여백
그리고 다시, 시작이라는 단어를
나는 계속 쓰려고 해, 끝까지 아름답게
낮에는 햇살로, 밤에는 별빛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건네는
따뜻한 그릇이 되고 싶어
한 권, 또 한 권—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질 때까지
내 펜의 끝에서 새벽이 피어나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