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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Dec 11. 2024

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2024.12.11.


"얼마나 더 가야 할까?"

"글쎄, 이제 한두 시간만 가면 되지 않을까?"

메마른 숨에 턱이 들썩거렸다. 

방금 전까지 피로감에 부들부들 떨리던 다리는

힘이 빠지며 감각도 둔해졌다. 

발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배꼽 아래 어딘가에서 신호가 가면

그저 몸이 따라가는 듯한 기분,

팔다리에 자발적인 동작은 없고

누군가로부터 조종당하는 것 같았다. 


M과 N은 등산동호회에서 만났다. 

국내 유명한 산을 두루 다니며 정을 쌓았다. 

계절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라서 더 좋았다. 

M은 돌아온 싱글이었고 

N은 비혼주의자였는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점만 빼면

인생관도 비슷했다. 

사계절 중 겨울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닮았다. 

이번 겨울 산행은 동호회와 별도로

두 사람만 가는 일정이었다. 

M은 N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N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서로의 관계를 다듬고 싶었다. 

M이 표현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분명한 방법은 아니었고

당시 N의 반응이 애매했다. 


그렇게 준비한 이번 산행은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출발할 때 날씨도 좋았고

주말 오후치고 많이 붐비지 않았다.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문제는 조금 지나서 생겼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바람이 점점 강해졌다. 

M은 경력만 믿고

코스 조사에 소홀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산행보다 N과의 동행에

마음이 더 빼앗겨 있었다. 

해는 금방 떨어지고

시야는 점점 좁아졌다. 

이제는 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M은 당황스러웠다. 

산행을 망친 것보다

N과의 시간을 망친 게 더 짜증 났다. 

평소 실력이었으면 벌써 하산하고도

남았을 텐데 두 사람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N은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다. 

걸을 수는 있었지만 

걸을 때마다 시큰거렸다. 

아, 어떡해야 할까. 

M은 미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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