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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Jun 05. 2024

물고기한테 물려도 즐거운 태국 여행

꼬리뻬에서 인생 최고의 바다 수영을 하다

꼬리뻬 여행의 유일한 목적은 바다 수영이었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치고 태국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꼬리뻬라는 섬에 갈 생각은 없었다. 페낭, 랑카위 모두 섬이라서 솔직히 더 이상 섬은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태국으로 넘어가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 꼬리뻬를 가는 것이기에 연속 3번째 섬 여행이 아무리 싫었어도 이미 지쳐버린 장기 여행자가 더 불편한 방법을 선택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페리를 타고 도착한 꼬리뻬는 지나쳐온 어떤 여행지보다 좋았다. 바닷물 아래로 모래와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까지 훤히 보였고, 하루에 채 만 원이 넘지 않는 숙소의 스태프들은 그 어떠한 숙소의 직원들보다 친절했다. 심지어 사전에 신청하지 않았음에도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짐을 대신 옮겨주고 툭툭으로 숙소까지 태워다 줬다. 체크인을 도와준 직원부터 바닥을 청소하고 있던 직원까지 모두 친절한 모습을 보자 입국 심사에서 만났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자 먼저 온 한국 친구가 2주째 내가 예약한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꼬리뻬가 너무 좋아서 떠날 수 없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농담에 껄껄 웃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의 예상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더 큰 확신이 든 건 다음날 바다에 가고 나서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장 가까운 해변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해변까지는 도보로 5분 정도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상점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도착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나뭇잎이 바닥에 닿을 듯 나뭇가지가 바닥 가까이 늘어져 있는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풍경을 보고 이번 여행 기간 수없이 봐왔던 바다들과 또 다른 모습에 잠시 감탄했다. 근처 상점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팔던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로 들어갔다. 발이 발등을 간신이 적실 정도의 깊이 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하체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물속에 들어가서 물에 얼굴을 넣어보니 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물고기들이 보였다. 문제는 스노클링 장비 사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숨을 몇 번 쉬었는데 자꾸 물이 입과 코로 들어왔다. 저렴한 걸 구매해서 그런지 의심하며 몇 번 더 시도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장비에서 물안경만 착용하고 바다에 두둥실 몸을 띄웠다.



산호초 주변에는 니모처럼 생긴 오렌지 빛깔의 작은 물고기부터 주둥이가 삐쭉 튀어나와 몸에 파란 줄을 가진 물고기, 뾰족뾰족 위협적인 바늘을 가지고 있는 성게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있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숨을 쉬고 다시 얼굴을 물속으로 넣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산호초 주변을 돌며 얼마나 다양한 물고기들을 만났을까 다리에서 따가운 느낌이 들어서 일어났다. 물속에서 일어나서 따가운 느낌이 난 다리를 확인하니 작은 상처 두 개가 나 있고, 그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설마 해파리에 쏘인 건가 싶어서 황급히 물 밖으로 나갔다. 해파리에 쏟았을 때 응급처치와 증상들을 인터넷으로 확인해 봤지만, 피가 나는 사람은 없었다. 따끔하긴 했지만 무언가에 쏘인 느낌이라기보다 물린 느낌에 가까워서 ‘물고기한테 물렸을 때’로 다시 검색해 보니 놀라운 사실이 나왔다. ‘트리거 피쉬’라는 물고기 종이 사람을 무는 사건이 아주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무는 물고기가 있다니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심지어 바다 여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트리거 피쉬에게 물린 경험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7년 전 태국 여행 중에 꼬창이란 섬에서 바다에서 노는 많은 사람들을 따라서 바다에 들어갔다가 수영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물에 젖기만 하고 나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 작년 베트남 여행 중에 한 리조트에서 홀로 수영을 독학한 후로 어설프게나마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한국에서는 수영을 배울 일도 할 일도 없었지만,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숙소에 있던 수영장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점점 숨 참는 시간도 길어졌고, 물만 보면 뒷걸음치던 내가 먼저 뛰어들지 못해 안달 난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니까 바닷물에 호기롭게 뛰어들었지만, 옷만 적시고 그대로 돌아 나왔던 7년 전의 나와 무턱대고 스노클링 장비를 사서 바다로 뛰어들어 물고기 영역까지 침범해 물고기한테 물린 내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사막 투어로 유명한 냐짱에서 숙소 밖에는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수영하지 않았더라면, 쿠알라룸푸르에서 한 달 살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물고기에게 물릴 일도 없었을 터였다. 7년 전의 나는 상상도 못 할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상처가 따갑고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즐거웠다. 나의 세상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바다에서 물고기에게 물린 일은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피하고 싶은 일일지 몰라도 여행가로 살아가겠다고 결정한 나에겐 어떠한 순간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고작 물고기에게 물린 경험으로 꼬리뻬라는 여행지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 다른 이에게 비웃음을 살지라도. 기꺼이 그런 우스운 경험을 앞으로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물안경을 여행 가방에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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