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카위 맹그로브 숲 투어의 씻을 수 없는 아름다움
랑카위 여행의 유일한 목적은 맹그로브 숲투어를 하는 것이었다. 투어는 오전 일찍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분주히 준비해야 했지만, 어느때보다 신이 났다. 피곤함도 모른 채 숙소 앞으로 온 미니벤에 올라 30분 넘게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올랐다. 킬림 생태 공원에 도착해 스피드 보트를 타고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했다. 박쥐 동굴을 구경하고 물고기 먹이 주기 체험 후 독수리 서식지에 갔다가 섬에 가서 수영하는 일정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양쪽에 맹그로브와 물 위로 드러난 엉켜있는 듯 빽빽한 뿌리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꿈에서만 봤던 그리고 언젠가 꼭 보고 마리라 다짐했던 공간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장이 뛰었다. 마치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살던 꿈을 이룬 것처럼.
몸이 힘들거나 특히 정신적으로 피폐해 지면 꼭 악몽을 꾸곤 했다. 지금은 스스로 마음을 다루는 법을 터득했기에 악몽을 꾸는 횟수도 줄었지만 예전엔 정말 잠들기가 무서울 정도로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맹그로브 숲을 본 그날의 꿈에서도 늘 그렇듯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쫓기고 있었다. 마치 히치콕 영화의 주인공처럼 아주 평범한 내가 너무나도 이상한 일에 휘말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상태였다. 누가 왜 날 쫓아오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살기 위해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근데 그날은 이상하게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보통 궁지에 몰리면 꿈에서 깨어나거나 칼에 찔리거나 다치면 일어나야 하는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계속 도망쳤다. 그러다 한 숲으로 몸을 숨겼고, 땅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무의 흙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물 아래로 얼기설기 얽혀있는 나무의 뿌리가 드러났다. 빨리 달리려고 할 수록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벌어진 상처에서 더 큰 피가 뿜어져 나왔고 다급한 마음은 커져갔다. 급기야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물기를 머금은 뿌리는 더욱 미끄러웠다. 비는 점점 날카롭게 변하더니 나무의 가지가 되어 몸에 박혔다.
온몸에 피가 쏟아져 나왔는지 몸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더 이상 도망칠 힘이 없어 이제 모든 걸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눈앞에서 숲이 끝나고 넓은 해변이 나왔다. 하얀 백사장 위로 분홍색 빛의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내가 살면서 혹은 여행하면서 본 어떠한 풍경과 장면보다 아름다웠다. 꿈에서 깨어나도 꿈속의 풍경이 잊히지 않았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바닥에 빨갛게 손톱자국이 생겨있었고, 이를 하도 세게 물어서 턱은 얼얼했다. 마치 정말로 그 일을 직접 겪고 그 풍경을 눈으로 보기라도 한 듯 생생했다. 물에서 사는 나무, 분홍색 바다 등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물에서 사는 나무라는 검색어에는 맹그로브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그런 나무가 있었는지도 한 번도 본 적도 없는데 없는데 어떻게 내 꿈에 나왔는지 신기했다. 하지만 분홍색 물을 가진 바다는 없었다. 분홍색 바다라는 검색에는 모래가 핑크 빛을 띄는 해변 사진이 전부였다. 그를 보고 내가 꾼 꿈으로 꼭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풍경을 꼭 화면으로 담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니 꿈속에서 무언가에 쫓겨 죽기 직전까지 달렸던 것처럼 그 순간을 만들기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 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니까 랑카위에서 본 맹그로브 숲은 여행 중 봤던 풍경 중 가장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감동도 잠시 꿈속의 장면보다 더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보트가 멈춘 곳은 독수리의 서식지였다. 파란 하늘엔 수십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높은 곳에서 나는지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밖에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멋져서 감탄 이외에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맹그로브 숲 투어는 스피드 보트가 파도에 요동치면서 엉덩이가 높이 뛰어 올랐다. 보트에 부딪히는 바람에 꼬리뼈와 허리에 통증이 생겼다. 심지어 여행 하는 내내 통증이 계속될 정도로 증상은 괜찮아지지 않았지만, 다쳤음에도 그 장면은 다시 한번 보고 싶을 정도로 잊을 수 없었다. 역시 여행은 기대한 장면이 상상만큼 멋진 순간을 마주할 때도 예상치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담는 의외의 행복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맹그로브 숲을 직접 눈으로 담았으니, 이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분홍색 해변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풍경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 어떠한 순간보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의 한 장면이자, 꿈을 이룬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