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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Sep 01. 2023

남편의 쓸모

우리 부부가 최악(?)의 MBTI 궁합이란 걸 알고 난 후

"결혼의 장점이 뭐예요?"란 질문을 자주 듣는다, 특히 미혼인 분들에게. 결혼의 단점은 고사양 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아주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숨도 안 쉬고 1시간 내리 말할 수 있는데 반하여, 장점은 추상화처럼 막연하게 '좋아'라는 주관적인 단어만 튀어나오며 뭔가 부연설명을 하고자 하지만 자꾸만 '음...'이란 말만 반복하곤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결혼의 장점이 없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결혼의 장점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그게 익숙지 않은 문화라서 그렇다는 의견을 접했다. 게다가 여전히 뫼비우스띠처럼 무한갈등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오랜만에 상담선생님이 주신 과제로, '남편이 나에게 베푼 친절함 찾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세하게, 놓치지 않고 적어보려 한다, 이른바 '남편의 쓸모'를.  

  사실, 나는 결혼 전에 부모님의 권유로 지금의 남편과 사주로 궁합까지 확인하고 결혼했다.(참고로 우리 엄마와 나는 가톨릭 신자이다, 아멘.) 종교의 교리조차 잠시 잊을 만큼 한평생을 살 누군가와 나의 조합이 괜찮은지를 알고 싶었다. 사주상 나쁘지 않았고, 혈액형도 둘 다 (제멋대로) B형에다가, 같은 직업에 비슷한 연배이기에 많은 공통점을 바탕으로 서로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결혼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여전히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왜 갈등의 깊이가 깊고 주기가 잦을까를 생각하다가 최근에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바로 MBTI이었다.

나와 남편은 '진짜 궁합 최악!지구 멸망의 길' 이 나온다. 이 표에 따르면, 10년 넘게 함께 하는것 자체가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일이었다. 하하하

   나는 INFJ(내향형, 직관형, 감정형, 판단형), 남편은 ESTP(외향형, 감각형, 사고형, 인식형)으로 뭐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이른바 최악의 MBTI 궁합이었다. MBTI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줄 수는 없으며, 본인의 MBTI가 규정한 성격대로 항상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남편은 자기를 16가지 중 하나로 분류하는 것 자체를 불쾌히 여기며 본인의 MBTI를 거부한다. 그래서  MBTI 도 다년간의 경험과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유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않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수단으로 나에겐  MBTI만 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겹치는 게 없기 때문에 둘이 있을 때 완벽한 상호보완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이 사람이 나와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다른 그림 찾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챕터2로 넘어가서 이 사람이 나와 다른 점이 우리라는 공동체에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찾아보고자 한다.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의 마음으로, 다양한 장점을 찾아 긍정적 남편이미지를 만들어보고자 한다.(할수 있겠지? 하하하)


   얼마 전에 맘먹고 운동이라는 것을 하려고 헬스장을 동록 했다. 숨쉬기 운동 외에는 하는 게 없던 나는 안 쓰던 근육들을 쓰느라 부들부들 떨리고, 자려고 누우면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그래도 하루, 이틀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단단해져 감을 느낀다. 작은 반증으로 며칠 전 10kg짜리 쌀포대를 한 손으로 쉽게 들어 어깨에 철썩 올리는 날 보고, 남편이 헬스장 다닌 효과가 난다고 칭찬했더랬다.(칭찬인 거 같은데, 뭔가 찝찝해. 아무튼)

  마찬가지로 남편의 단점이 잘 보이고, 같이 있다 보면 단전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용암 같은 화가 자주 폭발하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안 쓰던 마음근육을 이용하여 어머님 아들의 장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으며, 1만한 장점을 뻥튀기하여 100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반면, 총 10편이 넘게 쓸 예정인데 프롤로그가 끝일 수도 있다. 하하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좌충우돌 과도기를 거쳐서, 나만이 그릴 수 있는 행복을 선택하고자 한다. 때로는 삶이 어두운 동굴이라 해도 주어진 그대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보다는, 어차피 들어온 동굴이라면 여기서 원석을 발견해서 나가겠다는 자세로 임하고자 한다.(한마디로, 쉽지 않을수 있다. 하하하)

  덧.

  나의 책 <외모지상주의자의 극사실 결혼생활>을 읽은 독자분들은 대부분 카카오 99% 같은 씁쓸한 내 결혼생활에 웃음과 위로를 보내주셨는데, 어떤 분은 '남편 자랑'아니냐는 의견을 주시기도 하셨다. 책이란 독자의 해석이 100%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쩐지 그게 마음에 계속 남았다. 남편 자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0.1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반대로, 남편 자랑처럼 보이려고 열심히 포장(?) 하려고 한다. 역시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두 미간에 힘주고 비장한 각오로, '남편의 쓸모'를 최대한 열심히 찾아보려고 한다. (잘... 할 수 있겠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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