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다움 Sep 18. 2023

내가 집에서 요리를 안 하는 이유

남에게 음식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집 요리사' 남편.

  우리 부부는 MBTI는 하나도 맞는 게 없지만, 집안일 업무분장을 나눌 때 한 가지 결론은 언제나 일치하는데 "뭐든 둘 중 잘하는 사람이 하자."라는 것이다. 그중 '요리'에 있어서 난 뭐든 잘 먹는 입맛인데, 달리 말하면 뭘 먹어도 웬만하면 맛있어서 맛의 미세한 차이를 모르며, 만드는 사람의 성의에 크게 감동하는 편이다. 반면 섬세한 미각을 소유한 채 있는 음식을 먹을 때 무슨 재료가 언제 들어가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게 남편이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보조로 주방에서 음식 손질부터 간 보기, 설거지까지 꾸준한 활동을 해왔던 나는 요리가 어렵지 않고, (내 기준에는)나름 맛도 있는 편이다. 하여 신혼 초에는 내가 요리를 주로 했지만, 아이 이유식을 마지막으로 주방기구들과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는 외식하기엔 비싼 물가와 높은 환율,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팁문화의 콜라보로 더더욱 강제 집밥을 먹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요리의 중요성이 급부각되었다.

  결정적으로 하루는 내가 라면을 끓여줬는데, 남편은 마늘을 얼마나 넣었냐, 언제 넣었냐, 마늘맛이 너무 강해서 라면 맛을 해친다 등등 고든램지 버금가는 날카로운 질문폭탄과 차가운 맛 평가로 다시는 남편 앞에선 요리를 하지 않아서 결국 남편이 우리 집 요리 책임자로 등극한다.  

   처음엔 아이들이 좋아하고 오래 먹을 수 있는 짜장, 카레부터 몸풀기를 하더니 얼마 안 가서 깍두기와 오이소박이를 담그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재료의 가격 등이 마뜩지 않았던 남편은 급기야 한국대비 미국에서 매우 비싼 채소직접 채소(깻잎, 청양고추, 부추 등)를 심고 뒷마당에 가꾸며 원재료를 자급자족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 들으면 매우 가정적이며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남편님 되시겠다. 하지만 여기서 얘기가 끝나면, 마치 인스타그램 과시용 사진처럼 반쪽짜리 현실을 담은 같은 글이 된다.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누락되었는데 바로 메뉴선택과 그렇게 만든 요리가 어디로 공급되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난 한국에서도 김치를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다. 흔히들 라면엔 김치라는 국룰마저 나에겐 적용되지 않다. 그나마 동치미, 열무김치 등을 좋아하며, 그 외는 굳이 찾아먹지 않는다. 그런데 그동안 남편이 담근 김치들은 특히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엄마가 담가주셔도 잘 안 먹던 '깍두기, 무생채, 오이소박이' 등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김치를 담가서 주변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나눔을 실천할 줄 아는 선한 마음을 가진 이라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 집 요리사'는 알고 보니 큰 배포를 가진이로 '우리 동네 요리사'로 승격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3시간 걸려서 '내가 좋아하는' 열무김치를 담갔다고 공치사하더니, 여느 때와 같이 그 열무김치를 또 이웃에 나눠준다고 한다. 담근 열무김치가 많은 양이 아니었기에, 응?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에 계란프라이 2개를 하고 있는 남편을 보고 하나는 내 건가보다 생각하고 있다가 잠시 청소 후 돌아왔는데 혼자 먹고 있길래 '하나는 내 거 아니었어? 하는 김에 내 것도 같이 해주지'라는 말을 했다가 '넌 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냐'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프라이팬에 계란을 터뜨려서 한 번만 뒤집어주면 끝나는 계란후란이란 초간단 요리를 하면서도 우리 집 구성원인 나는 안중에 없고,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겨우 완성되는 열무김치는 담글 때부터 우리 동네 사람들을 나눠줄게 계산되었다는 게 적잖이 놀라웠다. 삼겹살 구이, 생선구이, 파전 등 갖은 반찬을 해서 따뜻할 때 먹으라고 요리하자마자 덜어서 옆집에 신속히 나눠주는 남편과 계란 프라이도 미리 말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라는 남(의) 편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착각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우리 집 요리사는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것인데 감사히도(?) 그 모두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이해가 된다. 복기한다. 우리 집 요리사님이 생각하시기에 아내인 나는 '남'이 아니기에, 언제나 내 것도 있는지 정중히 사전에 물어보고 필요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열무김치를 맛있게 먹고 있는 현실에 매우 만족하며, 남편의 쓸모 하나를 더 발견하여 매우 뿌듯하다.


덧.  언젠가 나 역시 우리 집 요리사님께 '남'이 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동시에 역시 음식은 집밥이 아니라 돈 내고 사 먹는 게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한국에 돌아가면 사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에 열무김치를 추가로 적어본다. 하하하




    

이전 03화 간헐적 다정함이 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