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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Sep 23. 2023

나의 기대도, 나의 몫이다.

내 안의 평화를 찾게 만드는 자 :  영혼의 훈련자

 내 취향은 쓸데없이 한결같다. 콜라보단 사이다가 좋고, 떡볶이는 밀떡보다 쌀떡을 선호한다. 뭘 선택해도 무난한 것 이외에도 극단적인 밸런스 게임(예를 들어 '정장 입고 1박 2일 자전거 타기' VS '바이크복 입고 1박 2일 하기')에서도 일관성이 있다. 특히 이상형 밸런스 게임으로 '다정함이 기본인데 언제나 예상 내의 반응으로 지루한 사람' vs '차가운 게 기본인데 가끔씩 예상밖의 반응으로 반전미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후자를 꼽는다.

  상상력 풍부한 이상주의자인 나와 정반대로 냉철한 현실주의자인 남편이 처음엔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와 10년 넘게 함께 살면서 마치 도시생활에 질린 시골쥐가 자연으로 돌아가듯, 나 역시 과거로 돌아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이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 쉽지 않기에 나의 상상력을 억제하려 노력하는데, 그 방법으로 간접경험을 멀리한다. 구체적으로 달달한 로맨틱 영화 및 소설 등을 멀리하고 피 튀기는 연쇄살인, 추리물 등을 즐겨본다. 대부분의 K-드라마에서는 장르불문 애정씬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에 한동안 드라마를 끊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들 다 본다는 드라마는 한 번씩 몰아보기를 할 때가 있는데, 공통점은 바로 남자주인공의 성격이다. 곤경에 처한 여자주인공 옆에서 논리적으로 사실에 접근하여 철저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남자주인공을 보면 광대가 저절로 승천하며 선홍빛 잇몸을 드러낸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는 나의 한결같은 취향을 재확인하며 씁쓸해져 혼자 중얼거린다.

'저건 드라마니까 남자주인공의 행동이 다소 쌀쌀도 시청자들은 여러 정황다 보이고, 속마음도 들리니까 이해하는 거다. 현실에서는 저런 배경설명들도 없는데, 맨날 틱틱거려 봐라 그게 좋은가. 좀 심심해도 다정한 게 최고지. 암.'

둘째아들 학교벽면에 게시된 아이들 그림, 하얀눈밭의 흰토끼를 그려놓은 독보적인 작품(짧게 말해서 백지)덕에 난 학교로 소환되었다. 아들~ 니덕에 영어가 늘어. 하하하

  오늘도 둘째 아들은 내가 드라마에 과몰입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미션을 던져준다. 학교에서 여전히 아침인사를 안 한다며, 집에서 'Good moring' 연습을 해달라고 담임선생님께 메일을 받았으며, 아직도 학교에서 점심을 안 먹기에 집에서도 밥을 잘 안 먹냐고 식당 선생님이 물어보셨다는 얘기를 첫째 아들이 전한다. 둘째 아들이 스쿨버스에서 내리는데 눈가에 하얀 눈물자국이 얼룩져있는 것을 보니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데 드라마 속 다정한 남자주인공떠올리며) 나와 공동육아책임자인 남편에게 둘째 아들의 상황을 공유한다. 그러자 딱 한마디로 나의 대화욕구를 차단하고, 연쇄살인범이 등장할 때 나오는 싸늘한 분위기로 바꾸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

  "(한껏 사무적인 목소리로) 엄마가 아들 교육에 더 신경 써봐. 내가 집안일을 더 할 테니까."

  둘째가 학교에 다소 부적응하고 있는 것은 '교육'이 부족해서라고 원인분석을 하고, 해결책으로 '엄마가 더 아들에게 신경을  쓴다'를 내놓으며, 그것에 일조하는 방법으로 아들 교육이 아닌 본인은 '집안일'이라는 곁가지로 빠지는 치밀함까지 저 두 마디에 담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해결책이 제시된 상황인데 더 답답해지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하며, 참아보려 했다가 나도 한소리 하고 만다.

"애가 이러는 게 내가 아들 교육이 부족하단 말이야? 애가 영어를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건데 엄마가 뭘 더하라는 거야. 어쩜 말을  해도. 됐어!!"  

우리둘의 대화는 서로에게, 마치 예상치 못한 벽에서 유령이 튀어나온 듯 깜짝 놀라는 경험을 선사한다. "벽에서  유령이 왜 나와"처럼  "거기서 그 말이 왜 나와?"

  남편은 객관적인 문제해결책에 대노하는 나를 보며 당황했고, 나 역시 공동육아책임자와 이 상황을 공유하며 정서적 공감을 원했는데 뜬금없이 '기-승-전-엄마'로 끝나는 대화에 폭발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이 같은 상황을 (늦은 감이 많지만)'알아차림'하며 이렇게 되뇐다. '나의 기대도, 나의 몫이다'라고.

  이 말은 내가 자주 듣는 명상앱에서 나오는 구절인데,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연습을 할 때 매우 주요하게 작용한다. 정반대인 남편이 나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기대를 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자주 부딪히는 사람이기에 서로를 더 잘 알고,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종족이 함께하는 불편한 동거라고 보는 게 정확한 것 같다. 또한 MBTI으로도 밝혀진 정반대의 성격인 우리 둘은 어느 한쪽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양이가 츄르를 거부하고 강아지가 산책을 싫어하는 게 빠를 것 같다.(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하하)

  그러기에 이분(?)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연습, 즉 나의 기대를 알아채고 남과 나를 분리하는 마음단련을 하면, 인생에서 만나는 그 어떤 빌런과도 어깨동무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어머님 아들은 나에게 궁극의 이너피스를  찾게 해주는 영혼의 훈련자인 것이다. 그것도 함께 거주하면서, 매번 다른 상황에서 예상 못하는 반전을 선사하며, 오늘도 나를 깨우치게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계신 남편님의 노고 치하를 보낸다. 그렇게 오늘도 (어렵사리) 남편의 쓸모를 찾아낸다.


덧.

 마지막으로 오늘도 내 영혼을 수련시키려 열일 중이신 남편에게 고한다. (내가 감정형이라 서두가 좀 길어. 혹시 맘 상할까봐)요새 고생이 많지? 그래서 말인데, 나에게 이너피스를 찾아주기 위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러는데... 그래그래, 본인이 좋아하는 문제해결책을 짧게 말해줄게.

... (감정형의 깊은 심호흡 후)

눈치 챙기고 좀 적당히 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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