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다움 Oct 21. 2023

파이어족을 꿈꾸며 쓸데없는 지출을 봉쇄한다

알뜰살뜰합니다 : 중고상품 애용자

  우리 부부는 서로 닿지 않는 평행선 같지만, 한 번씩 교차점이 발생하는데 바로 '중고물품 애용'이다. 특히 나 같은 맥시멀리스트들에게 물건이란 구매에서부터 사용까지 모든 게 즐거움인지라 우리 집엔 야금야금 물건이 늘어간다.

  미국으로 잠시 거주지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살던 집을 비워야 했는데, 그 짐을 처분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나겠다고 다짐을 했다. 특히 필라테스 리포머, 반신욕기 등 덩치가 큰 제품부터 머리끈 200개, 스타킹 50개 등 소소하지만 대량 구매하는 것은 자제하리라 맘먹었다. 하지만 나는 한낱 인간으로, 망각의 동물이었다. 미국에 와서 집안의 여백의 미를 참지 못하고 자꾸만 '이 공간에는 이게 있음 딱인데'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한국에 있을 땐 주로 내가 당근마켓 주구매자고, 남편은 당근마켓 주문물건 배송자로서 역할이 양분되었다. 미국에 와서는 중고거래가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Facebook market place)에서 이루어지는데, 난 페이스북 계정조차 없고 미국에서는 물건사기를 자제하겠다는 굳은 결심의 의지로 아이디를 만들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에서 중고거래는 자연스레 남편의 고유영역으로 남겨졌다. 남편은 소소하게 올라오는 소파, 책상부터 시작해서 뒷마당에서 쓸 호스, 아들 축구화와 보호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중고거래를 했다.

산책중 업어달라는 아들의 요청에 대비하여 구입한 , 내 체력손실을 막아준 소중한 자전거.이 역시 중고로 사서 잘 썼다.

   처음에는 거리감각이 없고, 빈 집을 채우는데 급급하여 차로 30분 거리도 드라이브 삼아 가고 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길바닥에 버리는 기름값도 계산하며 무료 나눔 제품도 자제했다. 아이디를 한국이름을 그대로 놓으니 무료 나눔에 답장이 잘 안 온다며 영어식 이름을 바꾸고, 비슷해 보이는 couch와 sofa,  000, 00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거래를 통해 익히며, 열과 성을 다해 중고거래에 매진한 결과 우리 집이 빼곡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환율과 물가 모두 급등하며 살림살이가 팍팍한 탓도 있지만, 사실 2년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물건을 안 사는 게 정답이다. 새것을 사기는 부담스럽기에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부터 없으면 불편한 것들까지 가능하면 모두 중고로 채운 것이다. 남편의 중고물건 구매가 점점 가속도가 붙더니 맥시멀리스트인 나를 앞지를 기세의 남편에게 하루는 물어봤다. 왜 이렇게 물건을 사는 거냐고. 그랬더니 남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옆집에 사는 애가 그랬어. 자기네 집엔 아무것도 없어서 친구를 초대할 수가 없다고. 만약 우리 아들이 친구를 초대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우리 집에 물건이 없어서 초대를 못하는 일이 있음 안되잖아."

이유야 어찌되었든 물건들이 집에 들어오는건 대환영. 중고거래로 득템시  내표정 같다. 하하하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유야 어쨌든 난 본투비 맥시멀리스트이기 때문에 암묵적 동의를 보낸다. 사실 이렇게 근검절약하는 이유가 한 푼이라도 아껴서 조기퇴직이 목표라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고정비용 및 돌발상황에 들어가는 추가비용 등 여러 가지를 조합하면 과연 이렇게 아껴서 파이어족이 될 수 있을까 싶긴 하다.

  무언가 열심히 한다고 노력하는데 그 결과는 미미할 때가 있다. 지금 같은 중고거래가 그렇다. 새것을 사는 것과 비교하면 품질이 좋다는 가정하에 가격적인 면에서는 중고거래가 좋지만, 기타 검색하고 방문하고 찾아오고 하는 등의 번거로움을 감수한 끝에 들여온 물건들이라 가격적인 면은 싸지만, 그 외의 에너지는 좀 더 많이 든다. 렇게 애써 한 푼씩 절약하는 돈의 양과 속도는 더디고, 수입은 고정이며, 반대로 물가와 환율의 이중고를 겪고 있을 때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중고거래를 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유지가 가능한 내일을 꿈꾸지만, 내 영향력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지나간 과거에 못 산 삼성전자 주식도 아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최고급 실버타운도 아니다. 오직 지금, 여기뿐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행동들이 모이고 쌓이면, 언젠가 꿈에 그리는 모습에 닿아있지 않을까. 어릴 적 막연하게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던 소망이 지금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졌듯이 말이다.    

   목표는 가지되 현재에 충실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남편의 중고물품 사랑을 지지한다. 청소할 때 잠시 후회하긴 하지만, 물건이 주는 안정감을 사랑하는 나는 앞으로도 남편이 저렴한 가격에 이것저것 많이 들여오길 기대한다. 파이팅!

 덧. 내가 물욕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북세일(Book sale)을 한다고 해서 자전거 타고 가볍게 왔다. 새것 같은 중고를 파는데  어린이책 기준으로 하드커버는 $1, 소프트 커버는 $0.5로 저렴하다. 해리포터 하드커버를 $1 구매한 흡족한 기억을 떠올리며  도서관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책을 사는 것은 좀 유난스러운가 싶어 여유 있게 30분 늦게 도착했는데, 웬걸. 다들 박스에 담아서 손수레에 가져간다.

  이미 좋은 물건(?)은 한차례 털린 후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봐야 한다며 이것저것 담은 결과 자전거로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드커버도 아니고 소프트커버의 어린이용 책인데도 이것저것 담다 보니 무게가 상당해서 자전거에 담을 수 없던 것이다. 이로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차피 살 거면 오픈런해야겠다고. 추가로 근처 다른 도서관에서 책판매를 언제 하는지 홈페이지를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하하


이전 06화 나는 왜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