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다움 Oct 21. 2023

그곳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다

낯선길도 두렵지 않다 : 인간 네비게이션 & 운전기사님

 난 잘하는게 딱히 없지만, 특출나게 못하는 것도 없다. 예를 들어 키 163cm으로 (내 또래) 평균신장, 영어도 유려하진 않지만 필요한 말은 (더듬거리며)할 수 있으니 평균, 요리도 유튜브 몇개 보고 따라하면 관대한 내 아들들은 엄지척 해준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평균이하를 자랑하는것이 있는데 바로 길찾기다. 우선 지도앱을 켜면 출발에서부터 버퍼링이 걸린다. 내가 어느방향에 있는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정면이 어느 곳인지 지도에서 찾는 것부터 헷갈린다. 4개 방향중 하나를 찍어서 움직였는데, 애초에 안내한 방향이 아닐때가 많다. 우여곡절끝에 가다가도 거리감 앞에서 또 좌절한다. 예를 들어 500미터 앞에서 우회전이라는데, 감이 안와서 학창시절 100m 달리기를 했던 경험을 상기하며 도로위에 100미터 트랙을 5개 그려본다.

  게다가 기계와 친숙하지 않은 아날로그형 사람으로서, 자동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장농면허란 알을 깨고 운전한지 이틀만에 주차장에서 나홀로 기둥에 충돌하여 차 후미등을 바스라뜨린 전력도 있다. 이런 나의 평균이하의 능력을 발휘해야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길을 운전해서 가는 것'이다. 용불용설(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서  발달하며, 그러지 못한 기관은 점점 퇴화하여 소실되어 간다는 학설)를 확대적용하여 나의 길찾기및 운전능력에 적용시켜본다. 자주 운전을 안하여 더욱 운전능력이 퇴화되는 원인 중 하나로 남편을 들 수있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타고난 안전주의자로서 위험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양보운전을 하며 평화롭게 운전한다. 게다가 운전능력은 최상급이다. 차가 들어갈까 싶을 정도로 좁은 주차공간에서도 한손으로 핸들을 여유있게 돌리며 후방주차를 시전하면 옆에서 물개박수가 절로 나온다. 방향감각도 뛰어나서 왠만해서는 헤매지않고 한번에 길을 척척 찾아나선다. 그런 남편이 보기에 나에게 운전을 맡기는것은 상당히 위험스러운 일인가보다. 처음에는 자상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나의 운전실력을 못미더워하는게 살면서 밝혀졌다. 눈커플이 내려앉아 거의 눈이 감길정도로 졸려도 절대 나에게 운전대를 내어주지 않기때문이다.

    미국에 와서는 운전을 못하면 곧 자발적 감금상태를 의미하므로, 나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더 많이 하게되었다. 물론 내가 운전대를 잡기까지는 옆에서 운전강사님처럼 일일히 코칭을 시연하셨다. 코너를 돌땐 좀더 크게 돌아라, 차선에 지금 너무 붙었다, 주황불인데 왜 밟냐, 차선 간격 봐라 등등 세밀하게 조언을 해준 덕에 저혈압인 내가 혈압이 정상까지 올라온듯 하다. 한국에서도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느라 운전을 계속 했었고, 기본은 내몸이 기억하고 있건만 미국에 오고나서는 길치에 방향치인 나를 염려해 네비게이션의 음성보다 더 자주 출몰하신다.

운전할때 방향안내 외의 남편 교통방송은 저 타오르는 불꽃에 냅다 던져버리고싶다. 하하하

   사실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 남편의 뛰어난 운전실력과 공백없는 잔소리 시연이 만나 운전을 안했던것 같다. 과거 심리상담을 받으러 차로 1시간 가량 운전해서 다녀야만 할때가 있었는데, 운전을 안해서 매번 신랑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동했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물으셨다, 왜 운전을 안하느냐고. 궁색하게 변명하다가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보다 30살 많은 우리 엄마도 나보다 더 많은 나이에 운전을 시작해서 더 잘다니는데, 내가 운전을 못하는게 이상하다는 것을. (결국 그때를 계기로 운전대를 본격 잡기 시작했다.) 

  항상 나보다 더 운전을 잘하는 남편이 있기에 내가 할필요를 못느꼈고, 의지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남편이 옆에서 위험하다, 하지말라, 넌 못한다 등의 얘기에 나도모르게 세뇌당했던것도 있어서, 실제로 운전을 자신있게 하기까지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삶의 전반적인 곳에서 여전히 중간이 없이, 운전하기 또는 아예 안하기 둘중 하나를 선택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기도 한다. 잘하거나 못하거나만 있는게 아니라, 집앞에 익숙한 길은 운전 잘 하지만 낯선길은 어려워하는 상태도 있는 것을 인정한다. 양자택일에 나를 끼워넣는게 아니라, 지금 가진 그대로를 인식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잘 하고 있다고. 남(편)이 하는 얘기보다 더 크고, 더 많이 나 자신을 치켜세워준다. 

   미국은 워낙 땅떵이가 넒어서 차로 1시간 이동까진 가깝다고들 한다. 내년 여름방학엔 아이들과 함께 장거리 여행도 다닐건데,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남편의 뛰어난 운전 능력은 아껴두고 좀더 자주 운전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간 운전으로 고생한 남편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며, 조만간 믿고 맡길 수 있는 운전자로 거듭날 것을 약속해본다. 그렇게 앞으로 누군가가 바라보는 시각에 나를 맞추는게 아니라, 도달하고 싶은 목표에 집중해서 나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덧.

남편은 길의 방향을 잘 찾아가기도 하지만, 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주기도 한다. 인간 내비게이션답게 영역을 확장하여 방향을 찾아내서 안내하는게 낯설진 않지만, 굳이 다큰 성인에게까지 본인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중히 거절하고 싶다. 특히 미국에 와서 나에겐 골프가 안맞으니까 하지마라, 내가 하는 일이 많으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라 등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종합하여 내린 진심어린 조언이란 사실 자체는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네비게이션 기능은 실제 도로에서만 쓰는걸로 합시다, 나란 인간에겐 불필요해. No thank you!

이전 07화 파이어족을 꿈꾸며 쓸데없는 지출을 봉쇄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