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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21. 2023

간헐적 다정함이 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대부분의 무정함과 가끔의 다정함 : 간헐적 다정함 보유자

  몸에는 '간헐적 단식'이 좋다면, 마음엔 '간헐적 다정함'이 좋다. 식사와 단식을 반복하여 상당한 공복 시간을 유지하도록 조정하는 게 간헐적 단식이라면, 다정함과 무정함을 반복하여 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도록 조정하는 게 간헐적 다정함이다.


   간헐적 단식은 혼자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사항이다. 내가 한 끼만 먹는다고 강력히 선언해 봐도 아침밥은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엄마, 회사에서 식사는 같이 해야 한다는 팀장님, 저녁에 치맥 하며 친목을 도모하자는 친구 등 도처에 난관들이 많다. 그래도 요즘엔 처음과 달리 사회적 분위기가 간헐적 단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예전보다는 이를 실천하기 좋은 환경이다.

   간헐적 다정함은 더더욱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함께 사는 어머님 아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따뜻하고 살가운 것이 보통 부부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자세를 지닌다. 그 결과 다정함은 확 줄이고 무관심(은 양호하다), 의견대립(까지도 무난하다)의 과정을 지나 도발(서로의 약점을 일부러 건드린다)이나 구강 액션 또는 물리적 충돌 등이 수반되면 그때는 상당히 괴롭다.

음식이 풍족한 현대 사회에서 간헐적 단식이 어렵듯, 로맨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간헐적 다정함은 쉽지 않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인사가 '식사하셨어요?'이고, 고봉밥은 애정의 표시이며, '삼시 세 끼', '한국인은 밥심'이란 표현 등 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겐 하루 3번 풍족하게 식사하는 게 익숙하다. 이런 문화와 포만감에 길들여진 자가 오랜 시간 공복상태를 유지할 때의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간헐적 단식이 어렵다.

   간헐적 다정함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정', '우리가 남이가' 같은 일반적인 관계의 사람과도 따뜻한 온도로 지내는 게 대부분인데, 같은 주거공간을 공유하며 평생을 약속한 배우자가 간헐적 다정함의 소유자라면 기대치를 낮추는 게 쉽지 않다. 가끔씩 간헐적 다정함이 서러운 이유이다.

간헐적 다정함은 도둑처럼 가끔, 그리고 소리 없이 왔다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쓸모'라는, 이른바 장점 찾기 프로젝트에 '간헐점 다정함'을 넣은 이유는 간헐적 단식처럼 간헐적 다정함이 주는 이로움 때문이다. 첫째, 내가 필요한 것은 스스로 취하는 독립적인 사람이 된다.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남편과 일정 및 장소 등을 조율하는 절차 없이 곧바로 먹으러 갈 수 있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땐 기-승-전-결 상황 설명 후 따뜻한 공감을 구걸하기보단 그 즉시 버터플라이 허그로 내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타인에게 바라지 않고 우선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가고 해결해 보는 것이다. 더 빠르고 정확한 효과는 덤이다. 행동은 안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나의 의존적인 성향에는 더욱 안성맞춤이다.

   둘째로, 사람에게 기대하고 상처받는 일이 적어진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었던 길을 모래주머니를 빼고 나면 같은 길이라도 훨씬 가볍고 빨리 뛸 수 있는 것처럼, 생활을 같이 나누는 매우 가까운 이가 무정함이 기본값이면 악성민원인이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해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 담력과 이해심이 길러진다.

   마지막으로 한 번씩 남편이 간헐적 다정함을 시연할 때마다 그간의 무정함과 대비되어 감동이 크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예상치 못한 반전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뭔가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어쨌든 관전포인트가 확실하여 간헐적 다정함에 빠져든다.

한 번씩 그만둬 본다. 그게 뭐든, 어찌 됐든.

   

  사실 간헐적 단식도 초반에는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 사례가 쌓여가고 논문이 발표되면서 그 효과는 입증되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간헐적 다정함도 대부분의 이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지만, 나의 생활이 사례이자 증거로서 언젠가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되는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간헐적 단식을 하다가도 가끔 폭식이 그리운 날이 있듯이, 간헐적 다정함을 유지하지만 가끔씩 인간 양봉장이 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날 바라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하지만 정서적 공복이 있기에 또 그 여백을 나 스스로 채워가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간헐적 다정함 보유자님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덧. 어쩌다 보니 (어설프게)간헐적 단식도 실천하고 있다. 아침은 애들 챙겨주면서 8시에 간단히 먹고, 점심은 귀찮아서 건너뛴 다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4시 이전인 3시 반쯤 점심이자 저녁 식사를 혼자 한다. 아이들과 함께 식 사하다 보면 계속 요구사항이 많아서 식사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내린 조치이다. 그러다가 저녁엔 아이들 수발을 들다 보면 피곤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자는 게 빠른 육아퇴근의 길이기에 9시부터 취침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빠는 간헐적 다정함을, 아이들은 간헐적 단식을 제공한다. 안팎으로 건강해지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따뜻한 애정과 넘치는 음식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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