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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Sep 01. 2023

다음 메인화면에 노출되는 내 글의 공통점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 소재제공자

   난 운이 좋은 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성당에서 성탄절 맞이 경품행사 때 가장 비싼 상품이었던 TV를 타와서 한동안 우리 집 영웅이었다. 중 3 때는 휴대폰을 개통하면서 간단히 이벤트에 참여했는데, DVD플레이어를 받아서 다시 한번 나의 운발(?)을 증명했다.  

   그렇게 소소하게 다가왔던 내 행운이 뜸한가 싶더니만,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면서 다시 한번 내가 운이 좋은 편임을 느낀다. 바로 '조회수 000000을 돌파했습니다!'란 알림이 뜰 때이다. 내가 쓰는 글은 평범한 애셋엄마가(어머님 아들 포함) 매우 주관적인 나의 소소한 일상을 적는 글이 대부분이라서 화제성이 크진 않다. 그런데 가끔 다음 메인에 장식되어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글들이 있는데 공통점은 바로 '어머님 아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같은 공간을 함께 하고 있는 동거인이기에 나의 생활밀착형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남편이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조명처럼, 그는 깜깜했던 내 머리속에 눈이 번쩍뜨이는 나와 결이 다른 행동으로 글감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내가 평소 고통을 즐기는 자(?)이긴 하지만 거의 12시간의 산통 끝에 첫째를 낳았는데 아빠 닮아 거대한 아이를 보며 "난 이제 할 일 다 했다."라는 본인에겐 유머, 나에겐 망언(?)을 남긴 덕분에 산통으로 풀렸던 눈에 독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그 말을 잘 실천하셨다. 하하하)

   또 한 번은 내가 유방암이 의심되어 조직검사를 받으러 간 날 병원대기실에서 초음파 사진으로 유방암에 대해서 설명하는 타인의 X-레이 영상을 보며, "너도 저렇게 사진으로 찍히긴 하는 거냐?" 라며 근원적 물음을 날렸다. (역시 덕분에 내가 아직은 아플 때가 아니라는 굳은 의지를 불태우며 주먹을 꽉 쥐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주에도 마찬가지였다. 태생이 허약체질에 운동기피자로 골골한 체력이 기본값이긴 하지만, 평소보다 더 아파서 앓아누운 장모님 딸은 내팽개치고 불교신자이면서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말씀을 성실히 옮기는 남편 덕분에 열폭한 날이었다. 불철주야 이웃사랑의 결실로 남편은 코로나19까지 덜컥 걸려서 미국 병원을 방문하는 기회가 창출되었다. 그렇게 미국에서 제일 안 가고 싶은 곳, 미국 병원에 보호자 및 통역사로 다녀온 소재가 남편 덕분에(?) 생겼다.

코로나 19에 걸린 어머님 아들 덕분에 미국 의사선생님도 만나는 기회가 생겼다.

   위의 에피소드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서,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셨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의 남편이 없었다면, 이 공간에 지금처럼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는 상황에서 넘실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생존본능이 올라와(?)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일기처럼 나만 보는 글이면 장에서 갓 올라온 날 것 그대로의 문자로 거침없이 썼겠지만, 다음 브런치스토리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개방된 공간에 쓰는 글이기에 한숨 한번 크게 내쉬고 그래도 뇌를 한번 거쳐서 키보드를 눌렀다. 분노, 실망, 절망, 슬픔 등 격한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최대한 제삼자처럼 바라보려 했다. 거기에 너무 무거운 소재가 뻔하지 않게 희화화 한 스푼을 첨가하면 글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글로 쓰기까지는 감정의 소화가 다 마친 후에야 가능했다.

남편이 글에 등장해서 다음 메인에 올랐던 글

   나와는 다른 성장배경과 가치관, 생활패턴 등 을 지닌 남편은 내 입장에서 항상 '억'하는 일들이었다. 특히 MBTI에서 '극 F'인 나는 호의적일 때 200% 상대에 감정을 이입하여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살지만, 남(의) 편은 반대로 '극 T'로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철주야 '왜?'를 로봇처럼 반복한다. 개와 고양이처럼, 같은 의도 다른 행동을 보이는 우리는 그래서 어긋나기 쉽다.

  자꾸만 삐걱대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처음엔 나를 상대에게 맞춰보려고 노력했었다.  무리한 배려는 나를 지치게 하고, 계속되는 호의는 호구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또 반대로 상대에게 나의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내 안의 틀을 강요할수록 오히려 내가 피곤하고 힘들었다. 내가 필요에 의해 스스로 한 간단한 결심(예를 들어 매일 10분씩 스트레칭)도 지키기 어려운데, 남이 강요하는 이해 안 가는 나의 기준이 안 그래도 주관이 매우 뚜렷한 어머님 아들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나의 시야만 좁아지고 남편의 행동을 평가하며 흑백논리에 빠져 오히려 내 숨통을 조여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까지는 안되더라도, 최소한 피할 수 없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남편과의 '억'하는 갈등들은 '앗'하는 흥미로운 글감들로 점점 바뀌었고, 어느 순간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좋은 소재 하나 득템했다며 기꺼이(때로는 기쁘게) 받아들이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낯선 땅 미국에서 애 들데리고(어머님 아들까지 하면 셋) 2년 살기를 하면서, 더 편견 없는 글감들이 칠흑 같은 시골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처럼 나에게 내려온다. 소재 제공자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머리와 손을 반성하며 날것의 소재들을 잘 소화시키고, 다듬어서 한 편 한 편의 글로 빚어보려 한다. 그렇게 자칫 팽팽하게 조여 오는 순간들에 숨을 불어넣어 느슨하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려 한다.

덧.

안 하던 운동을 하면 근육통에 시달리듯, 안 하던 남편의 장점 찾기를 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

내 글의 소재제공자'님'(이럴 땐 극존칭 붙여줘야 함),

앞으로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에피소드로 잘 부탁드리면서, 이미 충분한 글감이 산적하오니 당분간은 활동을 쉬시길 강력히 '권고'드립니다.(권고라 부르고 협박이라 읽는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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