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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리 Aug 24. 2020

제사, 너는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어.

 Come on 제사!

내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그 날이다.

생일? Nope.



바로 '제사' 다. 30년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를 각각 지냈다던 시댁에서 "며느리 들어오기 전 제사는 무조건 합치자."는 어머님의 강력한 주장으로 작년부터 한 번으로 퉁치게 되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가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었다고 기쁨과 감사의 마음은커녕, 제사가 다가올수록 괜히 심통이 난다.


이 모난 마음의 정체는 뭘까.


하필이면 이번 제사가 '일요일'이라, 다 치우고 나면 월요일 새벽이 되어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썼듯 우리에게 제사란 결혼 후 유일한 부부싸움의 도화선이었다. 뾰족한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그러려니'하며 참을 만큼 내 마음이 편안하지도 않았다. 이럴 때는 표현하는 것이 현명한 법. 쌓아두다간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   

 

금요일 저녁,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서 제법 선선해진 밤바람을 쐬며 소파에 앉은 남편이 보였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슬쩍 운을 띄웠다.


"오빠, 나 왜 이렇게 신경이 곤두서지?"

".....?"

"그냥 제사가 다가온다는 거 만으로 신경이 쓰여."

"효리야..."

"잠깐!!! 오늘은 나 공감받을래. 오빠는 가만히 1분만 내 얘기 들어줘. 공감마사지 받고 싶어."

"효리야..그거 폭력이야..공감 폭력."



남편은 나에게 강요된 공감을 '공감폭력'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제사만 다가오면 괜히 억울하고 속상한 이 마음을 남편에게 구구절절 말을 했다.



"오빠, 오빠가 가만히 듣고만 있어주니까 내가 속이 후련~~~~하다~!"


"후..."


"고마워 오빠, 이제 오빠 말할 차례 줄게. 내가 공감해줄 테니까 시원하게 얘기해봐."


"효리야, 효리가 얼마나 마음 쓰는지 아는데 나는 너도 알다시피 제사나 명절 때 가만히 있지 않는 거 알잖아, 사실은 내가 제사나 명절 때 효리 힘들까 봐 효리도 살피고 우리 엄마도 한번 살피느라 가운데서 나 역시도 마음이 바빠. 효리가 억울하고 힘든 거 아는데, 나도 노력하고 있다는 거 좀 알아주면 좋겠어. (중략) 대한민국에 이 제사라는 제도가 있다는 게 나도 너무 싫어. 마음 같아서는 속 편하게 나랑 형이랑만 가고 싶고. 누구를 위한 풍습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



 남편은 약 10분간 제사에 관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쏟아냈다. 목소리 높아지는 법이 없는 사람인데 쌓아둔 제방이 무너지는 것 마냥  열변을 토했다. 성토대회처럼 터져 나온 오빠의 말에는 평소 같았으면 섭섭했을 만한 내 이야기가 반면교사로 인용되기도 했었다. 옛날 일을 들먹이면서 까지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기며 끼어들거나 받아치는 대신 고개만 끄덕이며 약 10분 동안 듣기만 했다.(10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꽤 길다.)



  자신이 얼마나 오래 말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할 만큼 설움에 북 받친 남편을 보니 그리도 짠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댁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많이 움직인다. 시아버지를 필두로 시장에서 제사 음식을 사고, 제기를 닦고, 음식을 세팅하고, 설거지 및 뒷정리까지의 과정을 남편과 아주버님이 도맡아 한다. 제사의 대부분의 과정을 남자가 주도하는 이 곳은 어쩌면 대한민국 1% 유교 가정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몸이 쇠약하신 어머니와 낯선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나를 함께 살폈을 남편의 모습이 그제야 그려져 마음이 찡했다.


제사가 다가 올 수록 남편도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도 더 무거운 마음이었으리라.


"오빠, 오빠가 나도 신경 쓰고 어머님도 신경 쓰느라 마음이 바빴겠다. 애를 많이 쓰고 있네. 그런데 내가 억울하다고 하니 오빠도 서운했겠다. 미안해 여보..."


"서운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


"오빠는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나도 오빠 마음을 다 들어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더라... 내가 괜한 걸 말했나 싶기도 해. "


"아니야.. 효리도 충분히 억울하고 속상하지. 대한민국에 제사라는 제도 자체가 많은 여자들과 나 같은 남자들을 힘들게 하지 뭐.. (울컥)"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토닥이며 안아주었다.


 앞으로 10년은 더 하게 될지도 모르는 제사. 천천히,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년에도, 후 내년에도, 이 맘 때가 되면 이유 없이 심통이 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의 대화를 기억하며, 부단히 애쓰고 있을 남편을 하며.  


가부장제의 폐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뿌리 뽑혀야 할 허례허식.

'제사'를 지내러 남편과 두 손 꼭 잡고 시댁으로 걸어가 보련다.





    

출처 . 로빈 킴 - '유교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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