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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시감 Oct 18. 2023

프로님,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몸은 안 따라줍니다

레슨을 받아도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이에요 

레슨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머리로는 레슨 내용을 이해해도 몸은 잘 들어먹질 않는다는 걸. 특히 나이가 많거나 구력이 오래 된 골퍼일수록 더하다. 언젠가 유명 프로의 유튜브 레슨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고 '빵' 터졌던 적이 있다. 


‘너무 좋은 명강의! 그런데 내 머리는 이해를 하는데, 제 몸은 안 따라줍니다. 둘 사이의 원만한 합의를 하고 오겠습니다. 하하하하하’  


10년 동안 근본 없는 스윙으로 골프를 치고 다니다 어느 순간 스윙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야겠다 마음먹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꿋꿋했던 내가 갑자기 변하게 된 이유는 당시 친하게 된 동생의 영향이 컸다. 업무 때문에 알게 된 동생은 나보다 구력이 한참 짧은 3년차였는데 스윙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어깨와 팔이 일체감 있게 이어지는 테이크어웨이부터 오버되지 않고 적당한 백스윙 톱, 왼발에 체중을 실어 딛고 일어서는 다운스윙까지 마치 골프대회 중계에 잡히는 여자 프로의 스윙처럼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완벽한 힙턴이었다. 힙턴과 함께 플레어 스커트가 싹 돌아가며 나풀거릴 때는 같은 여자가 봐도 예쁘고 부러웠다. 그런데 나는 힙턴은 커녕 하체는 제대로 쓸 줄도 모르고 팔로만 쳤다. 일명 ‘팔로 스윙어’라고나 할까. 하하. 그 동안 잘 치는 사람들을 봐도 스윙이 그닥 좋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는데, 그 동생의 스윙은 나도 저렇게 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스윙이 어쩌면 그렇게 프로처럼 좋아?” 

“나 처음 가르치는 프로가 여자는 무조건 스윙이 예뻐야 한다며 힙턴을 강조해서 가르쳤거든.”

“나도 그 프로한테 배워볼까?” 

“그래 볼래? 그럼 나 다음주에 레슨 받으러 갈 때 같이 가자!”

“지금도 계속 레슨 받아?”

“정기적으로는 아닌데 좀 안 맞거나 스윙이 이상해졌다 싶으면 가서 받지. 레슨 안 받고 계속 치고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스윙이 이상해지는 것 같더라고.”  

역시 레슨과 연습밖에 없구나. 이번이 바로 내 오랜 ‘근본 없는 스윙’과 이별할 때인 것 같았다. 동생을 따라 부푼 기대를 안고 레슨 프로를 만나러 갔다.  


“편하게 몇 번 쳐 보세요!” 


프로가 한 번 쳐보라는 말에 7번 아이언으로 연습 샷을 쳤는데 처음에는 뒤땅, 두 번째는 쪼로(토핑), 세 번째는 슬라이스… 


“어머! 오늘 따라 왜 이러지…” 


어떤 샷 하나 정타가 없었다. 나도 안다. 왜 이러기는… 원래 못 치니 안 맞는 게 당연한데… 안 맞을 때면 저런 말이 자동반사처럼 나온다. 더 쳤다가는 부끄러움만 더해질 것 같았다. 재빨리 ‘저는 배울 자세가 돼 있어요’라는 듯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프로를 쳐다봤다.  


“음… 스윙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셔야 할 것 같은데…”


예상하던 바라 원포인트 레슨이 아니라 10회 쿠폰을 끊고 1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기로 했다. 


정식으로 첫 레슨을 받는 날, 

“일단 회원님은 제대로 된 몸의 회전부터 배우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팔로만 백스윙을 하시는데, 어깨를 이렇게 같이 회전시켜 주셔야…” 

“이렇게요?” 

“아뇨. 지금도 팔로만 드신 거고…” 


첫 수업부터 대략난감이었지만 ‘첫 날이라 그런 거겠지’ 싶었다. 계속 레슨 받고 연습하다 보면 나도 ‘아름다운 힙턴 스윙’을 할 수 있으리라 희망회로를 돌렸다. 그런데 레슨 회차가 늘어날수록 나를 보고 답답해 하는 듯한 프로의 늬앙스는 깊어 갔고, 내 기대감도 점점 절망감으로 변해갔다.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이 빌어먹을 몸뚱이는 통 들어먹질 않았다. 1주일에 4~5번씩 연습도 하고, 집에서는 앙팔을 가슴에 모아 하체로 리드하는 바디턴 연습에 수건 들고 다운스윙 때 수직낙하 하는 연습까지 했다. 그런데 왜 매번 몸은 초기화되는지… 


그나마 프로가 옆에서 잔소리 할 때는 되던 동작까지도 혼자 연습하면 안 되기 일쑤였다. 급기야 ‘아, 이번 생애 골프는 망했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골프를 잘 치려면 다시 태어나는 길밖에 없는 걸까. 그렇게 발전 없이 8번째 레슨이 진행되던 어느 날, 나는 급기야 폭발하고 말았다. 

“오른쪽 다리를 너무 빨리 떼지 말고 늦게 떼라고요! 아 그게 아니라!"

“이렇게요?”  

“아니 그렇게 오른쪽 무릎을 앞으로 내밀지 마시고! 그럼 배치기가 된다니깐!” 

“아 지금 또 배치기!”  


‘어라, 이제 반말까지 하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더니 저녁은 못 먹어 배는 고파 죽겠지, 프로의 잔소리는 점점 높아지지, 몸은 말을 안 듣지… 나중에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프로님, 나도 그렇게 치고 싶다구요! 근데 내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해요...”


그 동안 고분고분하기만 했던 내가 울기 직전의 한탄 섞인 말투로 쏘아붙이니 레슨 프로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 여자가 뭘 잘못 먹었나?’ 싶은 얼굴로 한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회원님이…”  

“금요일이라 연습장 오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 1시간도 넘게 걸렸어요.! 저녁도 못 먹어서 배고파 죽겠는데, 프로님이 자꾸 지적만 하시니깐... 그리고 제가 왜…” 


깊은 한숨과 함께 다음 말은 삼켰다. ‘제가 왜… 자꾸 혼나야 할까요? 못 치니까 돈 내고 레슨 받는 건데…’ 내가 못해서 답답한 건 이해하겠는데, 좀 더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 안 되는 걸까? 나도 잘 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어쩌라고요!


그 동안 쌓였던 설움인지, 짜증인지 모르겠는 감정을 토해내는 나를 보고 프로는 ‘오늘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었는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 회원님이 오늘은 많이 힘드시구나…;; 오늘은 힘드시니까 천천히 연습하시고 다음에 레슨 더 해드릴게요…” 


그리고 9회차 레슨 날, 지난 번 감정적으로 말했던 게 민망해 어색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는데, 나의 눈치를 보며 프로가 건넨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회원님, 오늘은 저녁 드셨을까요?” 


내가 배가 고파 히스테리를 부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피식’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낫겠다 싶어, 먹지도 않은 저녁을 그냥 먹었다고 답했다. 

무언가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초고속 충전기처럼 금방 채워지면 좋겠지만 누구든 버퍼링이 걸리기 마련이다. 또 사람마다 이해하는 속도가 다르고, 분야에 따라 더 낫거나 못한 정도의 차이가 있다. 


골프는 특히 실력이 잘 늘지 않는 스포츠로 꼽힌다. 돈 써서 레슨 받고 연습을 열심히 해도 '왜 이렇게 골프 실력이 늘지 않나?'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다른 걸 이 정도로 투자 했으면 뭐라도 됐겠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니 누구나 한 번쯤 ‘골프를 그만둬야 하나’ 기로에 서기도 한다. 


그런데 가르치는 대로 머리와 몸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이 움직였으면 모두 프로가 되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몸이 말을 안 듣는 건 당연하다.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나 싶으면서 ‘골프 지진아’라고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스윙을 제대로 익힐 때까지 레슨 받고 연습하면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 그래서 나는 극복했냐고? 못해서 서럽고 때론 자존감까지 떨어지기도 했던 답답하고 아주 더딘 시간을 거쳐 지금은 그래도 ‘스윙이 좋다’, ‘따박따박 잘 친다’는 얘기를 듣는 정도는 됐다. 


그리고 또 하나, 처음 골프를 배울 때 제대로 잘 배워야 한다는 것! 

근대 골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해리 바든(Harry Vardon)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골퍼의 스타일은 좋건 나쁘 건 골프를 시작한 최초의 1주일 안에 만들어진다.” 


1주일은 상징적인 표현 같고, 골프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1~3개월 사이가 중요하긴 하다. 이 시기에 제대로 스윙을 배우지 못하면 안 좋은 습관이 밴 이상한 스윙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생할 수 있다. 내가 직접 겪어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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