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시감 Oct 07. 2023

PT쌤, 왜 나랑은 안 웃어요?

회원 차별하는 거 아닙니다

나이 오십에 헬스를 시작했다. 확실히 ‘5’자를 달고 나니 체력은 자꾸 떨어지고 피로감에 만사가 귀찮게 느껴졌다. 게다가 기초대사율이 떨어져서 그런지 소화도 잘 안 되고 뱃살이 점점 존재감을 강력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뭘 먹지도 않았는데 기본값처럼 배가 나와 있고, 뭘 먹기만 하면 복부가 욕심이 많은 건지 아님 다른 부위들이 복부에 몰아주기를 하는 건지 복부에만 쌓였다. 중년이 되면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복부에 지방이 축적된다더니 예외 없이 나에게도 생물학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때마침 집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서 신규 등록 이벤트를 하길래 등록했다. 내친김에 PT까지 받아야겠다 생각했는데 헬린이를 위한 30분 프로그램이 있길래 신청했다. 그 동안 요가는 오랫동안 해왔으나 헬스는 처음이라 1시간은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우선 30분으로 시작하는 게 부담 없을 것 같았다. 

PT를 받기로 한 첫 날, 나에게 배정된 트레이너가 상담 차트를 갖고 내 앞에 앉았다. 트레이너는 20대 후반 아니면 많이 봐야 30대 초반으로 어려 보였다. 내가 엄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모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키는 작지만 누가 봐도 ‘저 운동 좀 했어요’라는 듯 벌크업 된 근육을 자랑하는 몸이었다. 

 

“PT는 전에 받아 보셨어요?”

“아뇨, 처음이에요.” 

“그럼 PT를 받는 목적이 있으실까요?” 

“올해 제 나이가 오십이거든요. 오랫동안 요가를 하긴 했는데, 나이 들수록 근력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요. 그리고 자꾸 배가 나오는 것 같아서…”     

“그럼 우선 인바디 측정부터 해보실게요.” 


인바디에 나의 키와 나이 등 정보를 입력 후 측정을 했다. 얼마 후 바로 결과 데이터가 나왔고, 트레이너는 데이터를 인쇄해서 다시 내 앞에 앉았다.  


“다른 곳에서 인바디 측정은 해보신 적 있으시죠? 결과는 보실 줄 아시고요?”  

“네. 역시 체중과 골격근량은 표준이하네요. 체지방율도 표준이하이고… 체수분과 단백질, 무기질 부족에… 그러니 당연히 기초대사량은 떨어질 테고. 제가 밥순이거든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밥보다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기 위해 낫또와 계란 후라이를 많이 먹었는데도 데이터는 예전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근력 운동을 같이 안 해서 별 효과가 없는 건가요? 부위별 근육은 그나마 다리 쪽이 표준에 가깝네요. 그 동안 요가와 골프를 꾸준히 해서 그런가…”     

“…” 

“…” 


내가 말이 끝났는데도 트레이너는 아무 말없이 몇 초간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 내가 주책 맞게 혼자 떠들었나?’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진다더니, 눈치 없이 트레이너가 할 말도 내가 너무 나서서 말했다 싶었다. ‘이제부터는 말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대로 따라야겠다’ 마음먹고 입을 닫았다. 


트레이너는 겨우 “탄수화물을 너무 안 드셔도 안 돼요”라는 말을 한 뒤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첫 수업으로 여자들이 많이 하고 좋아한다는 힙 어브덕션(Hip Abductions)부터 시작했다. 일명 ‘애플힙’ 만들어주는 기계다. 그런데 기구 작동법과 올바른 자세 그리고 동작에 대한 설명을 듣고 20번씩 3세트를 하고 나니 수업은 끝나 있었다. ‘뭐 이리 시간이 짧지? 설명 듣다 끝나네.’ 첫 날이라 설명이 더 길었을 거라 추측하며 다음 수업부터는 좀 빠르게 진행될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PT 날, 트레이너는 나와 어정쩡하게 눈인사를 하더니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앞장 서 걸어갔다. 트레이너 뒤를 졸졸 따라 걸으며 속으로는 ‘오늘은 어떤 기구를 해요? 어느 부위 운동하는 건데요? 오늘은 기구를 좀 여러 개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 이어졌으나 꾹 참았다. 첫 날 아줌마처럼 내가 너무 혼자 떠들어대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레이너가 나에게 아직 낯을 좀 가리는 것도 같았다. 


수업은 첫째 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구 작동법과 올바른 자세, 동작에 대한 설명을 듣고 20번씩 3세트를 했다. 그래도 달라진 건 기구 1개에서 2개로 늘어났다는 것 정도? 가슴 근육을 키워주는 체스트 프레스와 팔 운동을 위한 암컬 머신 2개였다.  


세 번째 수업도 별 다른 대화 없이 수업은 진행됐고, 나는 말없이 운동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혼자 운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빈약한 가슴을 어떻게 운동으로 좀 보완해 볼 요량으로 지난 시간에 배운 체스트 프레스를 끙끙 대며 밀고 있는데, 근처 운동 기구에서 남녀가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어라’ 자세히 보니 낯익은 뒤태였다. 나를 등지고 기구에 한 쪽 팔을 올리고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내 담당 트레이너요, 회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은 암컬 머신에 앉아 운동은 안 하고 조잘대고 있었다. 


‘아주 웃음꽃이 피었네! 칫, 근데 이 묘하게 꼬이는 마음은 뭐지? 나랑 할 때는 웃지도 않고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것 같더니… 내가 나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가…’ 


차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좀 나쁜 것도 같고, 트레이너의 행동이 예쁘고 어린 여자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 같아 좀 우습기도 했다.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유독 많긴 했다. 게다가 몸짱 남녀들도 많았다. 근육 부자 남자들은 허리에 벨트 하나씩은 차고 무거운 중량을 들고 있고, 여자들은 딱 붙는 브라톱에 레깅스로 군살 없이 탄탄한 몸매로 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풀메이크업은 기본이요, 긴 머리는 왜 그렇게들 풀어헤치고 운동을 하는지… 하하. 에어컨을 틀어도 운동을 하다 보면 더위로 땀이 흐른다. ‘어휴, 덥지도 않나?’ 싶으면서 한편으론 ‘근데 젊음이 좋긴 하다. 예쁘기도 하고… 좋을 때다!’라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난… 레깅스를 입긴 하는데, 브라톱까지는 좀 무리다. 헐렁한 스포츠 티셔츠에 단발도 성가셔 고무줄로 질끈 묶고, 노메이크업으로 운동 기구와 씨름하듯 끙끙 대며 한다. 하하.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G.X 프로그램도 운영 중인데, 아줌마들은 주로 헬스보다 줌바를 추거나 스피닝을 타고 있다. 나도 나잇대로 보자면 줌바나 스피닝 공간에 있어야 하건만, 왜 그렇게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지… 예전에 집에만 계시는 엄마께 동네 노인회관이라도 마실 삼아 가보시라 했다가 “거긴 할머니들이 너무 많아서 싫다”고 하시는 말씀에 ‘엄마도 할머니인데…’라며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다.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좀 알겠다.  


이후 PT 수업에서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도 트레이너의 말이 좀 늘어나긴 했다.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식사는 하고 오셨나요?”와 같은 안부인사 같은 말들이라고 할까. 그리고 간혹 내가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 얼핏 한 번씩 웃기도 했다. 


10번의 PT는 그렇게 끝이 났고, 헬스를 한 지 5개월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보면 “말랐다”, “약해 보인다”, “운동 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데 근육도 언젠가 태산처럼 쌓일까? 오늘도 난 헬스장에서 기구들을 든다. 티끌이라도 모아보자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언젠가 뱃살 부자가 아니라 근육 부자가 되기 위해!   

이전 08화 꼰대 상사님, 제가 좀 부끄럽습니다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