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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시감 Oct 21. 2023

꼰대 상사님, 제가 좀 부끄럽습니다 – 1

미움 받을 용기

나는 2013년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10년 동안 우리 부서 상사로 5명의 국장을 모셨다. 요즘 시대에 상사가 부모도 아니고 ‘모신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나로서는 적당한 말을 찾기가 힘들다. 말 그대로 ‘모셔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짧으면 1년 아니면 2년마다 인사이동에 따라 타 부서에서 오는 국장들은 모두 SKY 출신에 남자였다. 나이는 50대 중반에서 60대로 대부분 성향이 권위적이고 수직적이었다. 그리고 나이와 세대에서 오는 ‘꼰대’ 마인드는 어쩔 수 없었다. 나이와 세대로 치자면 나 역시 꼰대인지라 누군가 나에게 꼰대라고 해도 반박은 못할 것 같다. 


같은 꼰대라 마음을 이해해서 그런가. 그런대로 국장들과는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사실 그 국장과 큰 충돌이나 싸움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나 혼자 소심하게 마음 속으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 꼰대’라 칭하며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명예퇴직을 앞둔 60대였다. 우선 반말이 기본이었다. 반말이 무조건 나쁘다 할 수는 없다.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누군가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친밀감이 느껴져서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반말이 상관없고 심지어 친밀감까지 느껴지려면, 상대가 좋은 사람이고 나와 친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에 반해 상하 관계가 뚜렷한 회사에서, 그것도 권위적인 상사의 반말은 강압적이고 무례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60대 국장은 직원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으면 고압적으로 호통을 치기도 했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논하는 시대에 고압적인 호통이라니… 그럴 때면 국장은 혼자 시간여행을 떠난 듯 1970년대나 80년대로 가 있는 것 같았다. 


난 고분고분 한 것 같으면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뻣뻣한 직원이었다. 국장은 여자 직원이 웃으며 사근사근 얘기하는 걸 좋아했는데, 난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에 건조한 말투를 구사했다. 그의 보이지 않는 미움이 느껴졌다. 상사한테 밉상으로 찍히는 것도 현명치 않은 것 같아 한때 거짓 미소를 장착하고 노력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야’ 사건 이후로 그냥 ‘미움 받을 용기’를 선택했다. 

‘야’ 사건이 터진 건, 팀장급들과 함께 우리 잡지에서 주최하는 골프박람회 회의를 할 때였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행사를 취소할 것인지, 그냥 강행할 것인지 논하고 있었다. 

행사가 3주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지만 코로나가 다시 극성을 부릴 때라 취소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취소 시 장소를 대여한 곳에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안 좋은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국장이 갑자기 “야!”라고 크게 말했다. 


‘야’라는 단어에 깜짝 놀란 나는 속으로 ‘헐… 지금 누구한테 ”야’라고 한 거야?’ 생각하며 고개를 한 번 갸우뚱했다.   


“야! 너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 


지금 나 보고 ‘“야!”라고 한 거 맞나?’ 국장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고, 분위기를 봤더니 “야”는 바로 나였다. ‘아… 이름도 아니고, 직급도 아니고… 야…?’ 나는 순간 ‘멍’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사람이 갑자기 뒤통수를 맞듯 당하면 오히려 아무 말을 못한다. 


당시 반백살 가까운 40대 후반 나이였고 ‘야!’라고 무시 섞인 반말로 불렸던 적은 처음이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생활에서도, 20년 넘는 직장생활에서도… 나는 점점 분노가 차올랐지만 아무 말을 안 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굳은 얼굴로 꼿꼿하게 앉아 앞만 응시하고 있으니 국장도 더 이상 묻지 않고 회의를 서둘러 끝냈다. 


이후 나는 꽤 오랜 시간 나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나는 왜 바보처럼 아무 말 못했을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직원에게 함부로 “야!”라고 하시냐고… 아무리 상사라도 부하직원에게 반말하지 말고 예의를 지켜 말씀하셔라… 그리고 저한테 사과하셔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따져서 말하지 못한 내 자신이 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세상에 “야”라고 불려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아무리 높은 권력에 있는 사람도, 그리고 아무리 상사라도 자기보다 못하거나 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야”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스트레스 받으며 감당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외부 사람을 만날 때는 ‘부끄러움’까지 따라올 때가 있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내가 다니는 회사 상사이고, 내 나이쯤 되는 직장인들은 회사 직원들에 어쩔 수 없이 공동체 의식이 있다. 마치 가족 중에 누군가 실수하면 나까지 창피한 것처럼, 같은 회사 직원이 누군가에게 예의나 매너 없이 행동하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수준까지 떨어지는 것 같아 부끄럽다. 

몇 년 전 기자 면접을 볼 때였다. 30대 초반의 여자 지원자에게 지원하게 된 동기, 입사하게 되면 취재하고 싶은 기획, 디지털 채널 업무 경험 등애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가고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내가 어떤 질문을 더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국장이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남자친구는 있나?”


음... 남자친구의 존재 유무가 왜 궁금할까. 그리고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원자가 당황하며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국장도 괜한 질문을 했다 싶었는지 “아, 요즘에는 이런 질문 하는 것도 좀 그런가…?”라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마지못해 어색하게 웃으며 함께 “아… 네… 뭐…”라며 얼버무리며 면접을 마무리 지었는데, 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건 다음 면접에서였다.   


다음 면접자는 40대 여자로 예전에 나와 함께 일하던 후배였다. 어느 정도 면접이 끝나갈 무렵 국장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원래 나이 많은 여자는 안 보려고 했는데…”  


‘아… 저런 말을 왜 하지?’ 나이 많은 것도 못마땅한데 여자라서 더 마음에 안 든다는 늬앙스였다. 원래 3~5년차 경력에 30대를 뽑으려 하긴 했다. 하지만 기자 직군도 점점 비인기 직종이 되면서 지원자가 많지 않았고 마땅한 후보도 없어 40대 후배에게 제안해서 진행된 면접이었다. 처음에 못마땅해 하던 국장도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보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후배의 면접을 수락한 것이었다. 꼰대의 특징 중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하는, 또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이다. 


우리 부서에서 2년 반을 있었던 그 국장은 정년을 꽉 채우고 명예롭게 퇴직을 했다. 퇴직을 앞두고 그는 직원들이 공로패를 해주기를 대놓고 바랬고, 그의 바람대로 공로패 뿐 아니라 케익과 꽃다발까지 더해 고이 떠나 보내드렸다. 안 그러면 퇴직하고도 찜찜하게 연결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 그에게 공로패가 아니라 부끄러운 ‘베스트 오브 베스트 꼰대패’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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