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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시감 Oct 15. 2023

제가 스토커가 된 건가요?

전화가 힘들면 문자에 답이라도 주세요

회사에서 직원 채용을 진행했던 사람이라면 다음의 두 가지를 공감할 것이다. ‘사람 뽑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뽑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마찬가지다. 신입은 신입대로 ‘커리어가 없어서’ 판단이 어렵고, 경력은 경력직대로 ‘커리어를 봐도 모르겠어서’ 뽑기 힘들다. 


편집장 생활만 14년째인 나는 그 동안 많은 직원을 떠나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고, 또 떠나 보내고 맞이하기를 반복했다. 정말 손발이 잘 맞고 일을 잘 하는 직원을 떠나 보내는 것도 힘들지만, 어차피 가족이 아닌 이상 이별은 수순이라 서로의 앞날을 응원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새로운 직원을 뽑는 건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부터 우리 조직에 잘 어울리는지, 다른 직원들과의 합은 어떨지, 혹시 성격파탄자나 돌아이는 아닌지 등 여러 가지를 고심하게 된다. 


예전에는 기자를 주로 떠나 보내고 새로 뽑았다면, 최근 몇 년 동안은 디지털 채널이 중요해지면서 디지털 담당자를 보내고 뽑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채널의 특성상 보내고 뽑는 대상은 20대인 경우가 많다. 회사에 미련도 많고 갈 곳도 많지 않은 4050세대가 쉽게 떠나지 못하는 반면, MZ세대는 자신과 맞지 않는 곳이라 생각하면 미련 없이 떠난다. 

거기에는 수직적인 조직문화, 회사에서의 처우불만, 더 좋은 조건의 이직 등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으니 나무랄 생각도 없고 개인의 선택이니 존중한다. 그런데 채용과 퇴사 과정에서 종종 황당하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긴 하다.


면접 날 ‘노쇼’하는 사람부터 출근하기로 한 날 전화기를 끄고 잠수 탄 사람, 어머니가 귀한 자식 대신 전화로 퇴사 의사를 알려왔다는 얘기, 아침에 멀쩡히 첫 출근했던 신입이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그 길로 퇴사했다는 사건 등 내가 직접 겪은 일부터 주변에서 겪은 일까지 다양하다. 


지난해에도 디지털 콘텐츠 담당자를 뽑을 때 아주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성실하고 똘똘한 데다 모난 구석 없이 성격까지 좋았던 26살의 담당자가 1년만에 워라밸과 함께 퇴사를 선언해, 어쩔 수 없이 또 구인구직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냈다. 

지원자는 30여 명으로 많았지만 이력서를 걸러내고 보니 면접까지 볼 사람은 3명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남자 2명과 대학 졸업을 앞둔 여자 1명이었다. 부서 상사인 국장과 면접 일시를 상의하고 지원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 지원자는 전화 연결이 돼 바로 스케줄을 잡았지만, 2명의 남자 지원자들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문자를 남겼다. 1시간 뒤쯤 한 명의 지원자는 다른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는 문자를 보내왔는데, 다른 한 명은 끝내 답이 없었다. 


다음 날, 국장에게 상황 보고를 위해 마지막으로 남자 지원자에게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길게 신호음이 이어지다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000 씨죠? 월간지 00000 편집팀장인데요, 저희 잡지 디지털 콘텐츠 담당자 뽑는데 지원하셨죠?”

“네. 근데 이 전화까지 안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받았습니다.”

“네?”


‘엥? 이건 무슨 얘기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나는 얼떨떨해서 잠깐 포즈(Pause)가 걸렸다. 내가 아무 말 못하고 있자 그는 이어서 말했다.      


“아… 제가 며칠 전에 취업을 했거든요. 그래서 

어제 연락을 안 받은 건데…” 



이 말에도 역시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전화를 많이 했던가? 어제 한 번 하고 오늘 두 번째인데… 

왜 이 전화까지 안 받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애기를 하지? 내가 전화 두 번 하고 스토커가 된 건가…?’ 

좀 황당하고 언짢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럼 그냥 그렇게 얘기하시면 되죠. 그리고 어제 제가 문자 보냈을 때 답장을 주셨어도 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지? 지금 말만 잘하고 있구만... 하하. 그리고 우리가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입사하고 싶어 이력서 넣고 지원한 거 아닌가?!’


속에서는 따다다다 구시렁이 몰아치는데, 겉으로는 감정을 섞지 않으려 노력하며 “예, 그럼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냥 넘겨도 되는 별일 아닌 에피소드지만 다른 

업무로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나는 심기가 언짢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속사포 랩처럼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친구는 오히려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네가 잘못했네! 하하. 왜 눈치 없이 또 전화를 

했어? 요즘 애들은 전화 안 받는 걸로 답을 하는 

거라는데!”  


요즘 MZ세대들 중에 타인과의 전화 통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콜포비아(Call Phobia)’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다. 실제로 당시 같이 일하던 20대 기자 역시 전화보다는 톡이나 문자가 편하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문자는 생각할 시간이 있는데, 전화는 생각을 정리할 틈 없이 바로 대답해야 해서 부담된다는 것이다. 또 텍스트나 이모지에 비해 통화는 상대적으로 감정 소비와 집중을 많이 해야 해서 피로도가 높다고 했다. 


누구든 걸려오는 전화를 꼭 받을 필요는 없다. 문제는 소통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다. 전화 통화는 1876년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 후 147년간 이어져 온 의사소통 수단이다(벨 이전에 많은 발명가들이 전화기를 개발했지만 벨이 특허권을 먼저 접수하면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화기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세대별, 그리고 사람마다 암묵적인 규칙이 다를 수 있다. ‘연락 달라’는 누군가의 말에 통화 버튼을 쉽게 누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누구는 문자나 톡을 보내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대면과 전화가 편한 기성세대와 비대면과 텍스트가 편한 MZ세대. 이 다른 세대가 함께 일도 하고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 기성세대가 MZ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MZ세대도 기성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면 안 될까. 그냥 무응답으로 답하기보다 문자나 톡이든 본인이 편한 방법으로 응답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길게 얘기했는데 전화 통화가 힘든 분들에게 한 마디만 하자면, 전화가 힘들면 문자에 답이라도 좀 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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