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계급 사회
나는 2017년 말에 지금 살고 있는 군자동의 투룸 도시형 생활주택을 분양 받아 샀다. 군자동 집을 선택한 건 크게 3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내가 가진 예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격이었고, 둘째는 신축에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잘 돼 있다는 것, 세 번째는 회사인 충무로와 강남 모두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강남 오피스텔에서 전세로 살아왔던 나는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는 것에 지쳐 있었고, 무엇보다 대출을 크게 안 받는 선에서 선택하고 싶었다.
난 아무리 주택 구입이라도 억대의 금액을 대출 받는 게 겁났다. 혹시나 ‘대출을 못 갚는 상황이 되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섰다. 또 어려서부터 엄마한테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하면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출이나 빚을 지면 안 된다’, 두 번째는 ‘사업하는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 된다’였다.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게 된 데는 삼촌의 영향이 컸다. 강화에서 알아주던 만석지기 땅부자었던 우리집은 삼촌이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 많던 땅을 삼촌이 할아버지를 꼬드겨 사업자금으로 야금야금 팔아먹더니, 나중에는 엄마 이름으로 돼 있던 김포땅까지 몰래 저당 잡아 대출 받은 것을 알게 됐다. 삼촌은 대출을 갚기는 커녕 이자까지 밀려 엄마한테 은행의 독촉장이 계속 날아왔고, 스트레스를 받던 엄마는 급기야 그 땅을 팔아 대출 빚을 대신 갚아줬다. 그러니 엄마는 ‘대출’이나 ‘사업’은 집안을 말아먹는 지름길이라 여겼고, 그 영향으로 나 역시 대출은 곧 ‘안 된다’라는 마인드로 살아왔었다.
갖고 있던 돈을 모두 끌어 모아도 몇 천만원이 모자라 생애 첫 디딤돌 대출을 받긴 했지만 ‘빚’이 무서운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2년이 채 되지 않아 그 돈을 모두 갚았다. 그리고 한 동안 오후면 넓은 창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고, 맑은 날에는 멀리 남산까지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의 내 집을 만족해 하며 살았다. 그렇게 평화롭던 마음에 균열이 깨진 건 2020년 부동산 광풍이 불면서다.
어려서는 단독주택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오피스텔에서 살았던 나는 ‘아파트’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학군, 대단지, 입지 등을 분석하며 이사를 다녀도 싱글인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리고 낡고 오래 된 아파트가 재테크 투자로 인기가 높다는 것도 몰랐다. 얼마나 부동산에 무지했는지, 연식이 오래 된 옛날 아파트를 보면 ‘옛날 건물이라 불편하겠다’라며 되도 않게 그 곳에 사는 분들을 걱정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아파트값이 치솟으며 부동산 광풍이 불고, 내 집이 없는 사람들이 ‘벼락 거지’가 된 것 같은 상실감에 빠졌을 때 나 역시 뒷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2017년 ‘아파트’가 아닌 ‘도시형 생활주택’이었던 나의 선택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누구는 투자한 아파트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누구네 집 아파트값이 얼마가 올랐다더라, 누구는 ‘영끌’ 해서 집을 샀다더라 등 각종 아파트 관련 이야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면서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처럼 부동산에 무지했던 친구들까지 재테크 플랜을 세우기 시작했고, 나도 ‘똘똘한 한 채’ 아파트로 갈아타기 위해 부동산 유튜브를 열혈 시청하며 소위 말하는 ‘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임장을 다니면서 내가 느낀 건 우울감과 절망감이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는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영끌 대출’을 한다 해도 예산을 훌쩍 초과하는 금액이었고, 예산에 맞는 아파트는 입지가 좋지 않을 뿐더러 혼자 살자니 심란해지는 곳들이었다.
나처럼 아파트를 알아보러 다니던 후배 한 명은 급기야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 동안 열심히 직장 생활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아파트값은 너무 비싸고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하고, 자신이 마치 가난뱅이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무수히 많은 아파트가 보인다. 그런데 저 많은 아파트 중에 내가 살 곳이 없다니… 마음이 헛헛해지는 게 사실이다.
아파트값이 너무 올라 고점이고, 1~2년 안에 상승장에서 하락장으로 넘어가는 부동산 사이클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섣부르게 판단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자,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또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고, 어느 순간 ‘빚 없이 내 집에서 편하게 사는 것에 감사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자’라는 뻔한 이 말이, 뇌 과학자들도 말하는 5분 만에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는 방법이긴 하다.
그래도 가끔 고요하던 감정이 ‘아파트’ 때문에 또 흔들릴 때가 있다. 얼마 전 친한 동생이 저녁을 사겠다며 불러내 낯선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였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에서 흔하게 주고받는 질문은 뻔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어디서 사는지 등이 기본값처럼 따라붙는다.
때로는 정도를 넘는 호구조사에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처음 만나 남북관계, 미중 무역전쟁이나 러-우 전쟁 등 복잡하고 무거운 난제를 논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 날도 여지없이 하는 일과 대강의 연령대 등이 오가다 남성 한 분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어디 사세요?”
“군자동 살아요.”
“군자동이요? 거긴 아파트가 없는데…”
“네. 아파트 없어요. 저 아파트에 안 살아요.”
아파트 운운하는 게 예의가 없는 것 같아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건 아닙니다!’라고 덧붙여 말하려다 관뒀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고 하니 별 뜻없이 나온 말이겠지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모든 사람이 그러진 않겠지만, 누군가 말하길 ‘어디 사는지’ 묻는 심리에는 그 사람의 경제력을 파악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어 고약하다 했다. 예전에는 주택의 소유 여부만을 놓고 계급을 나눴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어느 지역에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계급이 결정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부동산 등급표’까지 존재한다고 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아파트 계급 사회’다.
부동산 등급표에 따르면 나는 중급지 하층민에 속한다. 나는 앞으로 열심히 재테크를 하다 보면 최상급지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등급표가 바뀌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할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등급이 바뀌면 삶이 더 윤택해지고 낯선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이 좀 달라질 것도 같다. 그런데
확실한 건 남들이 정해 놓은 ‘부동산 등급표’에 따라 부동산에 열을 올렸던 지난날을 되돌아 보니 난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안의 중심을 잡고 살아기가 힘든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조류 속에서도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더 멋있게 느껴진다.
여전히 나는 세상의 잣대에 쉽게 흔들린다. 그래도 내 안의 행복을 찾아 흔들리는 나를 붙잡으려 오늘도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