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빛고은 Aug 09. 2024

노량진 입성

임용고시 준비 시작

2005년, 늦여름이었다.


노량진역에서 내리면 사람들에게 떠밀려 파도타기 하듯이 이동해 어느새 학원에 도착해 있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줄지어 다녔고 노량진은 검은 머리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지금은 공무원 월급이 박봉에다가 온갖 민원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고, 연차 높은 상사의 갑질 문화도 견뎌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공무원의 인기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추세이지만, 나 때는 취업 고민 좀 한다는 사람은 졸업하기도 전에 공무원이 되겠노라 포부를 밝히고 노량진에 발을 들이던 때였다.


그곳에는 임용고시생, 경찰 공무원, 소방공무원, 7급, 9급 공무원, 교정직, 사회복지 준비생들로 가득했다. 공무원의 종류도 참 다양하고 많았다.


그렇게 나이 비슷한 청춘들이 노량진에 모여 있는 것이 어떨 때는 그들이 경쟁자라는 생각에 숨이 막힐 때도 있었지만,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어 힘을 얻곤 했다.

 

노량진의 시작과 끝은 ‘줄’이었다. 학원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할머니들도 육교를 따라 줄줄이 사탕처럼 일렬로 서서 바쁘게 제 갈 길을 가는 수험생들 손에 전단지를 쥐여줬고, 수험생들도 강의실 명당자리에 앉으려고 새벽부터 나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심지어 먹는 것도 편히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토스트나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에서 밥을 먹으려면 앞사람이 다 먹어야 입장할 수 있었다.


취업준비생들 속에서 나 역시 취업을 하려고 줄을 서서 학원에 가고 줄을 서서 밥을 먹었다. 그 줄은 마치 취업으로 가는 긴 여정처럼 느껴졌다.


내 차례가 언제 되려나.

한참은 더 기다려야 되나.


그런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취업의 문을 열고 들어갈 내 순서를 기다리는 일은 더없이 길게만 느껴지고,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봐 늘 불안했다.  


임용고시 학원에서 수업을 하는 교실은 정말 컸다. 학교 교실을 네 개 정도 붙여 놓은 정도의 크기.


수강생 백여 명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던 곳이었다. 그에 비해 책상은 정말 작았다. 물병, 전공책, 연필 한 자루를 놓으면 끝이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옆 사람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꽂꽂하게 온종일 앉아만 있어도 피로가 쌓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앞자리를 맡기 위해 아침 7시에 집을 나가 노량진에 8시쯤 도착했다. 그리고 강사가 제일 잘 보이는 첫 줄에 자리를 잡았다.


두 시간 정도 자습을 하고 나면 10시부터 강의가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5학년까지 다닌 나는 그래도 대학에서 배운 게 있으니 어느 정도 아는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은 달랐다.


강사의 수업 내용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교과론은 학교 교육과정과 관련된 것이라서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수업을 들어도 낯선 용어들 때문에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종일 앉아는 있었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사촌 언니의 말을 떠올리면서 왠지 그거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10분 남짓 쉬는 시간에도 줄 서기는 계속되었다. 임용 수험생, 특히 국어 과목은 여자가 90%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자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여자 화장실만 복도 계단까지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반년 동안 학원을 다니며 나는 12월 초, 첫 번째 국어 임용고사를 봤다.


돌이켜보면 합격한 해를 제외하고 가장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치렀던 시험이 아니었나 싶다. 합격할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고, 떨어지더라도 떳떳할 수 있던 상황.


아는 것도 정말 없고, 투자한 시간도 짧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도 없었으니 시험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한없이 가벼웠다.


12월에 시험을 보고 결과가  조금 지나서 나왔는데, 당연히 첫 시험은 탈락이었다.

몇 점 차로 떨어졌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엄마 말대로 연습 삼아 본 시험이니 모든 게 다 괜찮았다.


불합격이라고 해서 타격감이 전혀 없었지만, 연습 경기를 한번 치렀으니 이제는 "진짜 수험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느껴졌다.


초겨울, 일 년 중 한번 시험이 있는 임용고시를 위해 나는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2006년 봄, 임용고시 재수 생활 시작



이전 05화 졸업 이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