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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Aug 30. 2024

학교로 다시 출발

군 생활하듯 시작한 사회생활

2009년 3월.

나는 고등학교발령이 났다. 2학기 발령을 받지 않을까 싶었지만 3월 발령이 나서 갑자기 준비하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같은 경기도였지만,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가면 3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도착한 그곳은 군사지역이어서 군인들이 민간인처럼 많았고, 탱크가 도로에 지나다니고, 대포 소리가 '펑펑' 나는 그런 곳이었다. 수업하다가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줄 알고 놀랐는데 알고 보니 대포 소리였다. 

아무튼 집에서 절대 출퇴근이 불가능한 곳이어서 나는 발령이 나자마자 지낼 집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골학교였지만 그래도 한 학년이 10 학급씩이나 되는, 나름 큰 학교였다. 인문계와 전문계가 함께 있는 학교였는데 신규라서 인문계 반으로 담임을 주셨다.


나의 첫 업무는 고2 담임, 문학 수업, 주 16시간 수업, 학년부. (보충수업은 주 10시간)

학교에서 기간제 했던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거의 뭐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나이 스물여덟의 첫 직장생활.

오랜 시간 동안 꿈꿔 왔던 떨리면서도 짜릿한 순간이었다. 교단에 서고, 판서를 하고, 교탁에 서서 수업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꿈만 같았다.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하는 일상이 정말 행복했다. 


어렸을 때 좋은 선생님들을 보며 두루뭉술 꾸어 왔던 꿈이, 대학 진학 때 구체화 되었고,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치열하게 다듬어진 나의 꿈.


비록 첫 발령지는 군 생활 하듯, 외지에서 시작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게는 전우 같은 발령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또래의 신규 선생님은 영어과 한 명, 국어과 한 명이었다. 재연샘, 효정샘. 

지금도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들이다. 선생님들만 알 수 있는 우리들만의 고충과 스트레스를 '쿵'하면 '짝'하고 알아듣고 공감해 주는데 최적화된 동기이다.


그 당시 우리는 교사 사택에 자리가 나지 않아 학교 근처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자취를 했었다. 월세가 비싼 편이었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어서 약 1년 간  사택자리가 나기 전까지 우리는 원룸에서 세를 살며 지냈다. 사실 이때 나는 대학 새내기 시절 놀지 못한 한을 풀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여서 보충수업을 하고,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나면 피곤할 법도 한데 우리는 가끔씩 원룸에 모여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잘 풀리지 않는 연애 이야기들밤을 지새우며 울고 웃었다.


그때는 아침 자율학습도 있었던 때라서 아침 7시 40분까지 출근을 해야 했는데, 그런 생활이 많이 힘에 부쳤지만 오히려 함께여서 힘을 얻었다. 물론  젊은 시절이라 가능한 일정이었다. (지금은 저녁 9시만 돼도 녹초가 된다.)


학교에 가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따르는 아이들이 있었고, 한 참 연배가 있으신 존경하는 선배 선생님들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인 나를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며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대우해 주는 것이 감사하고 신기했었다.


열 살 정도 차이나는 조카뻘 되는 제자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고등학생들이라 그런지 제법 어른스러워서 농담 따먹기가 가능했고 가끔 진지한 이야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나는 에너지를 얻었다.

그렇게 나는 면접 때 외쳤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같이 성장했다.


가끔씩 망할 대표가 있던 출판사에 취업했으면 큰 일 났을 뻔했다고 생각하며 취업을 포기하게 해 준 담배 피운 대표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끝까지 도전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된다고.

만약 중간에 포기했거나 주저앉았다면 나는 지금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 살면서, 물론 현실에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마음속에 항상 아쉬움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고생 끝에 얻은 나의 꿈을 나는 학생들 앞에서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선생님이 경쟁자를 제치고 합격했다는 해피엔딩보다는, 선생님이 꿈을 갖고 최선을 다했지만 좌절하고 실패했던 새드엔딩 포인트다.


나의 실패담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희망과 용기가 된다. 누구나 힘이 들고 누구나 애쓰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유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특별한 일이 된다. 나는 가끔 그런 마법을 부린다.


나의 좌절과 실패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을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 줄 줄 아는 스승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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