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연속
응급실 막막함과 불안함 그 어디쯤.
구급차가 교문을 빠져나가자, 도로는 퇴근 시간 몰려든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안젤라는 안나가 기댈 수 있게 몸을 내어주고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일정하게 똑같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안젤라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엄마 어깨에 기댄 채 고통을 참아내려는 건지 안나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지만,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있어서 안나의 상태가 심각함을 예감할 수 있었다.
"안나야, 많이 아파? 조금만 참아. 병원 가면 선생님이 안 아프게 해 주실 거야.."
안젤라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긴 채 안나에게 말을 건넸다. 도착한 곳은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대학병원.
이 동네에서 평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썩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 유명한 곳으로 갔으면 했지만 안젤라는 일단 안나의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줄여줘야겠다는 생각에 구급대원이 정한 행선지에 군말 없이 따랐다.
병원에 도착했다.
안나와 요한이를 응급실 의자 한편에 앉히고 구급대원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보호자 서명을 하라는 곳에 했다.
'김안젤라'
자신의 이름이 쓰이는 곳이 참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 이런 상황이라니.
안젤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병원 직원이 왔다. 그리고 접수 절차를 안내했다.
안젤라는 안나와 요한이가 앉아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접수처로 발길을 옮겼다.
"접수 완료 되었습니다. 온 순서대로 진료를 보지는 않습니다. 응급환자부터 볼 수 있어요. 그러니 호명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세요."
병원의 낯선 공기에 한껏 움츠려든 안젤라는 직원의 차가운 말투에서 또 한 번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단단해 보이려고 애를 썼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안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30분쯤 지나자 응급실 안쪽에서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나와 '서안나'를 불렀다. 간호사는 차트에 기록을 하면서 문진을 하기 시작했다. 안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스했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차분히 묻고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안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거나 저을 뿐이었다. 여전히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셋은 한참이 지나서야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배정받은 침대에 안나를 눕히고 요한이를 보호자용 의자에 앉히고 난 뒤 의사가 올 때까지 또 기다렸다.
응급실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여태껏 아이를 키우면서 험한 곳에 데리고 오지 않았던 지난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지낸 벌을 받는 걸까. 하느님께 죄송하다고 화살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안나가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도 덧붙였다.
어느새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초록색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가 안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나야, 어느 쪽이 아파? 여기? 이렇게 한번 해 볼까? 선생님이 한 번 만져볼게."
의사는 인사도 없이 안나의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만져보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골절인 것 같습니다. 먼저 X-ray를 찍어도 되겠지만 아이가 많이 아파하니 아이 두 번 고생시키지 말고 ct를 찍어보고 자세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떻게 진행할까요? 어머님?"
안젤라는 의사의 말에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진행하냐는 물음은 ct 찍을 형편이 되느냐는 뜻 같았다. 안젤라는 망설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빠르게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안젤라가 임신 20주 되던 때, 여느 산모들처럼 태아보험에 가입하려고 여러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그런데 남들은 사은품과 축하인사까지 듬뿍 받아가며 가입했던 것을 안젤라는 자격 미달로 거부당했다.
어렵게 가진 아이였지만, 아이들을 지켜내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산모의 나이가 많아서, 쌍둥이라서, 그리고 산모가 임신 중독과 임신 당뇨를 앓고 있다는 이유로 안나와 요한이는 실비 보험에 결국 가입할 수 있었다.
안젤라는 아이들을 낳고 나서도 보험을 가입하려고 애를 썼지만 보험사에서는 여러 이유로 또다시 거절을 했다.
이미 시험관 시술 비용으로도 너무나 많은 돈을 써 버렸고, 임신을 하기 위해서 직장까지 그만둔 상태라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다.
자잘한 병원비는 괜찮았지만 만에 하나 아이들이 크게 아프기라도 한다면, 그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안젤라는 늘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게 하려고 애지중지 키웠다.
병원비가 걱정된다고 해서 ct를 안 찍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안나였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안나는 ct실로 이동을 했고 안젤라는 밖에서 기다렸다.
"ct 결과 골절이 맞습니다. 그런데 성장판이 손상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하지만 골절된 부위가 좀 아쉽네요. 팔꿈치를 연결하는 연골 쪽 뼈가 골절되었는데 이 부분이 수술 없이 잘 회복이 될 수 있을지는 교수님 소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오늘은 반깁스를 해드릴 테니까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먹이시고 다음 주 월요일로 예약 잡으시고 외래로 오시죠."
의사는 빠르게 말을 쏟아내고 홀연히 사라졌다. 안젤라 머릿속에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강하게 남았다.
안나가 반깁스를 하는 동안 수납 창구로 가서 수납을 하고 외래 일정을 잡았다. 30만 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카드 거래 서명을 막 마치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정우 엄마가 있었다. 정우 엄마는 안젤라를 보자마자 안나의 안부부터 물었다.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눈물이 나고 숨통이 틔이는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를 다치게 한 아이의 엄마가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