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May 06. 2024

길리여행 난이도 극상으로 끌어올리기

혼자여행하며 맞닥뜨린 아찔한 순간들

어느새 발리한달살기 3주 차가 훌쩍 지났다. 그동안 나는 꾸따와 우붓을 거쳐 길리로 들어왔다. 길리에 처음 발을 디디고서 감탄했다. 길리야말로 발리한달살기를 결심하고 내가 그리던 곳이었다. 수영복만 입고 돌아다니다가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하고, 햇볕에 몸을 말리고, 다시 수영하고. 나는 그 자유로움에 반해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이대로 남은 기간 전부 길리에 머물다 돌아갈 것 같다. 그렇게 쭉 평화로울 줄 알았다.


내가 지금 만 일주일 넘게 머물고 있는 길리 트라왕안(이하 길리 T) 섬은 공권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안전한 편이다. 의외로 길리 T는 한적한 휴양 섬이 아니라 광란의 유흥 섬이었다. 밤 12시가 넘도록 해변가에 늘어선 클럽에는 춤판이 벌어진다. 좀 더 서쪽 으슥한 곳으로 가면 마약을 파는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 있는데, 그들 역시 위험하진 않다. 그저 “위드? 위드? 머쉬룸?”하면서 권하기만 할 뿐. 어쨌든 밤에도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위험한 느낌은 별로 없다. 단, 내 숙소가 숲 속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만 빼면.


애초에 걷거나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자전거로 한 바퀴를 돌아봤자 30분 밖에 안 걸리는 길리T에서 굳이 위치가 좋은 곳에 숙소를 잡을 필요가 없었다. 번화가까지 자전거 10분이 채 안 걸리는데? 숙소까지 가는 길에 가로등이 없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핸드폰 플래시가 있으니까. 내가 길을 못 외우는 것도, 구글맵이 있으니까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으슥한 숲 속 한가운데 있지만 가성비가 좋은 숙소를 고르고 아주 만족했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난 핸드폰이 있으니까.


그날은 유독 우울하고 외로웠고, 왠지 방에 들어가기 싫었던 나는 라이브 공연하는 곳을 찾아서 굳이 또 모히또 한 잔을 시켜 먹었다. 공연을 보며 일기를 쓰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영상을 찍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배터리가 15 퍼 정도 남았을 때, 이제는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하필 딱 그 타이밍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 Oasis-Don’t look back in anger가 시작되었다. 그날 하루 중에 가장 기분이 좋아진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를 켰다. 연주가 끝나고 나니 배터리가 10 퍼 남아 있었다. 딱 집으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가로등이 없는 흙길로 들어서는 순간, 핸드폰이 꺼졌다.


사실 나는 안전불감증이다. 사람에 대한 낙천적인 믿음과 “에이 설마~”하는 게으른 안일함이 더해져서 밤길을 돌아다니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없는 어둠은 처음이었다. 내가 들어온 길로 다시 나가려고 했으나,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제야 실질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누구한테? 이 캄캄한 밤길을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내 숙소 위치를 알려달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저 멀리 희미하게 불빛이 보이는 집에 불쑥 들어가서,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 내가 지금 핸드폰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고백하면서? 나는 이곳에 의지할 곳 없는 작은 여자인데, 상대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살면서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취약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근처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한 가족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 그들은 내 숙소 근처를 가려던 참이었다.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그들은 바짝 얼어있는 나에게 "Are you lost?, Are you Korean?, I love K-drama!" 하면서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셨다. 웃으면서 대답하고 감사인사를 하고 뒤돌아설 때까지 나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조금 더 일찍 집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테고, 조금 더 핸드폰 배터리를 신경 쓸 수 있었을 테고, 숙소 위치를 잘 외웠어야 하고… 여러모로 내가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거고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지, 혼자 다니니까 나를 내가 잘 챙겨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야말로 What the fuck이었다. 세상아 나한테 왜 이래? 아니, 세상을 탓할 게 아니다. 내가 문제다. 소연아 대체 왜 이래!!! 정신 좀 차려!!! 그렇게 잠깐 속으로 아우성치다가,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지갑에 현금은 거의 없었고, 거금의 프리다이빙 학원비는 따로 보관해서 정말 천만다행이고, 완전한 거지가 되었으니 일단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다행히 발리여행카페에 도움요청 글을 올려서 내가 현금을 계좌이체 해주면 대신 ATM에서 출금해 주겠다는 분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현금은 일단 넉넉하게 가지고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기지만 않길 바라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더 큰일이 생기지 않은 게 다행인 나날들이다. 발리에서도 그렇지만, 그냥 지금까지의 부주의했던 삶을 이 기회를 통해서 반성하고 있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나한테 언젠가 큰일이 나야 정신 차리겠냐고 잔소리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일을 가벼운 경고로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그 안전하고 쉬운 길리여행 난이도를 극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대충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에 여러모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반성할 일이 많았다. 잠깐의 귀찮음과 안일함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오는지 생각하면서, 좀 더 주의하며 살자. 부디!!!

매거진의 이전글 클럽에서 외쳐보는 "나는 술이 싫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