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한 건 목표와 성장이었을 수도 있다
길리 프리다이빙 일기 1
내 발리한달살기 여정에 길리를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나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길리에서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겠다고 결심하게 될 줄은. 살다 보면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나 싶은 것들이 있는데, 가령 지금도 그렇다. 내가 그렇게 물을 좋아하는 것도, 휴직을 앞두고 명상을 배우려 노력했던 것도, 한달살기 지역을 발리로 정한 것도,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것도, 2주가 지나서야 처음으로 친구가 된 한국인이 프리다이빙 강사였던 것도, 물에서 헤엄치는 거북이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낀 것도, 마침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던 상태였던 것도, 그 모든 게 다 내가 프리다이빙을 배우게 될 계시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 문제는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일기에 ‘내일부터 수업을 듣는데, 과연 나는 프리다이빙에 재능이 있을까 기대된다’고 적었는데, 바로 그다음 날 수업에서 처참히 깨달았다. 나는 재능이 없었다!!!
프리다이빙은 쉽게 말해서 맨몸으로 물속 깊이 잠수하는 스포츠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호흡을 잘 참는 것과 물속으로 헤엄쳐서 들어가는 능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퀄라이징 스킬이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압 때문에 고막 안팎의 압력 차이가 생기는데, 이를 공기를 불어넣어서 맞춰주는 걸 이퀄라이징이라고 한다.
나는 그중 호흡은 좀 참을 수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수영을 못하고, 무엇보다 이퀄라이징이 전혀 안 됐다. 10m를 잠수해야 하는데 고작 3m에서 고막이 찢어지는 고통을 풀지 못한 나를 보고, 차갑고 시니컬한 백인 남자인 우리 선생님은 무슨 미드에 나올 것 같은 톤으로 “수영을 못하는데 프리다이빙을 하겠다는 건 걷지 못하는 아기가 뛰겠다는 것과 똑같아. 난 네가 아마 자격증은 못 딸 거라고 생각해.”라고 팩트를 때려 박으셨다. 아주 우울했다.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맞닥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저히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선생님은 내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는 못했던 적이 없댄다. 참나, 이래서 잘하는 사람들은 누굴 가르칠 수 없다.
애초에 실패할 일은 도전하지 않는 나는 실패에 대한 면역이 별로 없다. 언젠가 또 이런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낀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서 생각해 보니, 10년 전 운전면허를 처음 따려고 시도할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2종 보통 면허를 두 번 떨어졌다. 한 번은 오른쪽 차선을 계속 넘어서 감점이 쌓여서 떨어졌고, 그러지 않으려고 연습한 뒤 다시 본 두 번째 시험에서는 중앙선을 넘어서 실격당했다. 대체 차선을 맞춘다는 게 무엇인지, 핸들을 얼마나 돌려야 얼마나 차가 움직이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아빠는 내가 도통 그 감을 못 잡는 걸 또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2종을 떨어지다니 사람이냐고 놀렸고, 아빠는 다섯 번까지만 치고 다섯 번 떨어지면 평생 운전대를 잡지 말라고 했다. 나는 눈물을 찔끔하면서 포기했다.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은 대체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운전을 못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
이퀄라이징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뿅 하고 되는 거라고 했다. 어차피 길리에서 딱히 할 것도 없고, 내가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선생님의 말에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일단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연습해 보기로 했다. 주말 내내 핀 차는 법을 익히기 위해 바다에 나가서 스노클링을 하고, 숙소 수영장에서 잠수 연습을 하고, 물속에 거꾸로 매달려서 이퀄라이징 연습을 했다. 선생님이 아무 때나 조금이라도 발전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었기에 찾아가기도 했다. 물론 선생님은 내 이퀄라이징을 보고 “똑같아.”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또 찾아오라고 했다. 아무 때나 편하게. 그 말이 뭔가, 어쨌든 내가 될 거라고 믿는 의미로 느껴졌다. 아예 각이 안 보였으면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을까?
내일이 마지막 수업날이고 나는 내일 또 10m 잠수를 도전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사실 불가능하다. 아마 재시험을 위해 학원비를 추가로 납부해야 할 것이고 그럼 또 현금 뽑아줄 한국인을 찾아다녀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확실한 건, 프리다이빙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힘들거나 심심하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오히려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목표지양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목표 있는 삶을 거부하고 유유자적 사는 게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주어진 과제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는 상황을 직면하니까,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에, 노력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느껴지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그동안 나에게 부족했던 건 이런 거였을까? 실패하는 게 무서워서 나 자신에게 모든 성장과 노력의 기회를 차단한 채 온실 속에 가둔 탓에 내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걸까? 못했던 30m 수영을 성공하고, 당장 내일은 자신이 없지만 언젠가는 10m 잠수도 성공할 날이 올 거라 믿으며, 성장하는 기분이 이토록 짜릿하다는 걸 깨닫는다. 운전처럼, 대체 내가 처음에 왜 그렇게 못했는지 이해를 못 하게 되는 날을 기대한다.
그동안 회피하고 있었던 걸 마주해 보자. 어쩌면 나에게 필요했던 건, 간절히 바라고 추구해야 할 목표였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