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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Oct 26. 2024

사랑스러운 섬, 길리에서의 소중한 만남들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 친구, 그리고 프리다이빙



나의 여행은 꾸따와 우붓을 거쳐, 길리로 이어졌다. 최근 부쩍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아진 길리는 예쁜 바다와 거북이가 유명한 곳으로, 바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길리는 사실 발리가 아니라 발리 옆에 있는 롬복에 속한 섬이라, 발리에서는 배를 타고 꽤 오랜 시간 이동해야 했다. 귀찮아서 좀 고민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이렇게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우붓에서 빠당베이로 3시간가량 이동한 끝에 길리로 가는 배에 올랐다. 약간의 뱃멀미를 느끼며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햇빛에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로 내가 발리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꿈꾸던 풍경이다. 나는 직감했다. 내가 이곳을 많이 사랑하게 될 거라고.




지난 2주 동안의 발리 여행에서 나는 정말 지독하게 ‘혼자’ 여행을 했다. 현지인들과는 좀 얘기를 나눴어도 한국인들과는 어쩌다 사진을 부탁하는 것 외에는 전혀 말을 섞지 않았다. 비치클럽이나 래프팅 같은 액티비티는 다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동행을 구한다던데, 낯선 사람들과 굳이 말을 섞을 생각을 하니까 너무 귀찮고 피곤해서 그냥 돈 더 내고 혼자 다녔다. 내가 이렇게 반사회적 인간이었나 싶었다. 아마 그동안 나는 사람들 대하는 데에도 지쳐있었던 것 같다.


런 내게 길리의 여유로움은 힐링 그 자체였다. 길리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 매연기관이 금지되어 자전거나 마차만 다닐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공기가 유독 맑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하필 내가 바로 직전에 있던 곳이 습하고 우중충하고 교통체증이 심한 우붓이었기에 더욱 비교된 듯하다(우붓 미안…). 평소에도 기분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지라, 쨍한 태양과 파란 하늘을 마주하니 급격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곳을 자전거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니! 예약한 숙소도 마음에 쏙 들었다. 넓고 밝고 깨끗하고 직원들이 친절한 데다가 귀여운 고양이까지 있었다. 없이 여유롭게 늘어져있을 수 있는 곳,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나는 숙소 수영장 옆 선베드에 누워서 앞으로 길리에서 무엇을 할지 발리여행 카페를 찾아보았다. 마침 ‘지금 길리이신 분?’이라는 제목의 글 두 개가 나란히 올라와 있었다. 내가 길리에 오자마자 이런 글들이 올라오다니, 이건 운명이 아닐까? 하나는 투어 동행을 찾는 글이었고 하나는 노트북 빌려줄 사람을 찾는 글이었다. 한창 마음의 여유가 잔뜩 생긴 상태였던지라 나는 그 둘에게 전부 연락했다. 저요! 제가 할게요! 그렇게 바로 다음날 아침, 나는 한국인 동행 S와 현지인 가이드 해리를 만나게 되었다.




프리다이버라고 본인을 소개한 S는 나보다 3살 어린 여성분이었다. 사실 처음 투어를 함께 하기로 하고는 걱정을 좀 했다. 일행을 더 구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단둘이서 투어를 하게 되어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았다(그리고 사실 S도 똑같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만난 S는 너무 착하고 유쾌하고 편한 사람이었다! 바닷속 산호를 걱정해서 선크림도 안 바르고, 말들을 걱정해서 마차도 타지 않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혼자 2주 정도 여행하느라 한국인과의 대화에 목말라 있던 터라,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회사 생활에 지쳐 잠깐 쉬고 있다는 것도, 심지어 인천 사람이라는 것마저 같았다! 그동안 동행을 안 만나고 다닌 게 괜히 아쉬울 정도였다. 동행이란 게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우리가 신청한 투어는 롬복섬의 예쁜 곳들을 속성으로 둘러보는 롬복투어였다. 롬복은 발리의 쌍둥이섬으로, 섬의 크기와 형태나 기후, 식생이 발리와 유사하다. 발리만 해도 한 달 동안 지역을 옮겨가면서 여행하는데, 그와 비슷한 롬복을 하루 만에 보는 투어라니? 당연히 차에서의 이동시간이 길었고 그 시간은 거의 대화로 채워졌다.


이렇게 가이드와 프라이빗 투어를 진행하게 되면 가이드와 대화하면서 그 지역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롬복이 발리의 쌍둥이 섬이라지만 원체 문화, 인종, 종교, 언어가 다양한 인도네시아 특성상 롬복-발리, 길리-롬복 간에 여러 차이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발리는 대부분 힌두교였는데, 롬복은 이슬람교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발리에서는 집집마다 음식이나 꽃을 얹은 작은 접시인 차낭을 볼 수 있었는데, 롬복과 길리에서는 차낭 대신 모스크가 눈에 띄었다. 또 발리에서는 집집마다 꼭 개를 키웠는데, 길리에서는 한 마리도 못 봤다. 대신 고양이가 많았다. 이 역시 종교의 영향이었다. 해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농담했다. "길리는 개가 살기엔 너무 더워. 고양이는 맨날 누워만 있으니 살아남은 거야."


S는 해리의 누나 비비와 친해져서 이 롬복투어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S가 비비를 처음 만난 것은 20명 단체 스노클링 투어에서였는데, 그 다음에 우연히 다시 마주친 비비가 S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그러자 해리가 그건 사실 여기에서는 당연한 거라고 했다. 이름을 외우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존중이 담긴 거고, 그 사람과의 앞으로의 관계를 위한 기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발리에서 지내면서 그랩 기사나 가이드를 우연히 다시 마주쳤는데 내 이름을 계속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반면 나는 그들의 얼굴조차 희미했던 게 미안해졌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누구든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고 했다. 그게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래서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모르는 사람이 대뜸 인사하니까 '누군데 인사하는 거지?' 하며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 나도 발리/길리에서 자꾸 사람들이 말 걸어서 성가실 때가 많았다. 특히 길리에서는 한국인이 많아서인지 지나갈 때마다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하고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는데, 일일이 대꾸하 귀찮았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리고 쪼마난 여자애라서 그러는 건가 싶어서 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리의 말을 들으니 오해였던 것 같다. 본인들끼리도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니,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게 미안해지면서 앞으로 더 인사를 잘 받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리가 우리한테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문화가 달라서 놀란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꾸따에서 만난 서핑 강사님이 내 나이를 듣더니, “How many kids do you have?”라고 물어본 게 너무 충격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보통 인도네시아에서는 25살만 되어도 다 결혼하는지라, 내 나이 서른 즈음 되면 이미 애가 둘 정도는 있을 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리는 자기는 23살이지만 딸내미가 있다핸드폰 배경 사진을 보여주었다. 헐! 이를 계기로 마침 롬복이 고향이자 집인 해리의 집 근처를 지나면서 우리는 해리의 딸 아이샤도 만날 수 있었다. 너 충격적으로 귀여웠다.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가이드의 딸내미와 아내분까지 만난 건 또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밌었다.


미친 귀여움이다...




차로 롬복을 횡단하고 나서는 해변가에서 보트로 갈아타고 롬복의 스노클링 포인트를 찾아 나섰다. 이번 투어에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었는데, S가 나에게 프리다이빙이 무엇인지 알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프리다이빙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S가 물속으로 부드럽게 잠수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나는 구명조끼조차 무서워서 벗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S와 해리가 용기를 준 덕분에 간신히 구명조끼를 벗었다. 그러고 나니, 사실 물에 뜨는 것보다 가라앉는 게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S가 알려준 대로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머리부터 물에 냅다 꽂으려 하는데 잘 안되었다. 내 몸은 물속을 파고들기는커녕 바로 두둥실 떠오르기 일쑤였다. 나에게는 2차원인 바다를 3차원으로 누비는 S와 해리가 너무 자유로워 보여서 부러웠다.


계속 상체만 냅다 꽂고 물속을 들어가 보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해리가 물속에 함께 들어가자며 손을 잡고 이끌었다. 하나, 둘, 셋 카운트다운에 맞춰 숨을 참고 스노클을 뺐다. 입을 앙 다문채 훅 물속으로 밀어 넣어지는 순간,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물속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S가 말했던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아픔, 당장 숨을 쉬고 싶다는 호흡 충동, 온몸에 가해지는 수압, 그렇지만 그걸 참고 버티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몸이 물 위로 떠오를 때까지 조급하지 않게 마음을 가다듬는 것까지. 그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아주 조금 맛보기 한 기분이었다.


뭐라 할까.

내가 만약 프리다이버가 된다면, 지금 이 순간 이 느낌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내가 모르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은 기분, 그 시작이 될 순간.


그 순간을 만들어준 S와 해리, 오늘의 만남 나에게 있어서 정말 귀한 만남이었다.




이후 모래섬 Gili psair를 비롯한 다른 곳을 몇 군데 더 돌아보고, 운 좋게 롬복 전통 혼례와 노을까지 보고 나서 어둑해진 뒤에야 보트를 타고 길리로 다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나의 길리생활의 시작인 오늘은 S의 길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S가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는 맛집에서 저녁을 함께 한 뒤, 해리가 숙소가 외진 곳에 있는 나를 전기자전거로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사양하는데 해리가 자기는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을 기껍게 여긴다고 했다. 덕을 쌓으며 나중에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카르마가 본인의 인생 모토라면서,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를 위한 거라고 말하면서 데려다준다길래 감사히 얻어 탔다.


그렇게 너무나도 알찬 하루를 보내고 숙소에 돌아와 눕는데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사실 나는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뿐 아니라 평소에도 그랬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이미 주변에 충분히 많으며, 그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내게는 충분히 찼다. 때문에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인연은 더욱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 관계에 괜히 에너지 쓰는 게 싫어서 동행을 안 구하고 내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가려 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그리고 덕분에 벅차게 행복한 시간을 보낸 탓에 또 사람이 그리워졌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너무 많고,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고, 그렇게 또 넘치는 인간관계에 허덕이고. 그러다가 또 이런 보석같은 인연에 감동받고 위로 받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 같다. 발리에서, 길리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만나게 될 인연들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이후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무작정 인연의 씨앗은 심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경험을 통해 길리에 머무는 동안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바로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는 것! 딱히 목표나 계획 없이 부유하던 내 여행에 지향점이 생겼다. 그러자 갑자기 활력이 도는 느낌이었다. 당장 내일 눈을 뜨면 바로 프리다이빙 샵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혼자여행 3주 차, 앞으로의 날들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를 것 같다.


롬복의 핑크비치
작은 모래섬, Gili ps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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