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학자다 대부분 학자는 숲에 모여서 토론을 하거나 저마다 학설을 세우려고 산꼭대기, 혹은 풀밭 한가운데 습지에서 말씀 수행에 빠져들기도 한다 뿌리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자애로운 말씀을 줄기에서 잔가지로 잔가지에서 이파리로 허공을 넓혀가며 그늘을 드리운다 나무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늘이 될 수 없다 멋진 그늘을 만들고 싶은 어떤 학자는 무지개 끝에 우뚝 서 있어 본 적도 있다 가끔 열띤 토론에 빠진 열기를 소낙비가 순식간에 삼켜버리지만 천둥 번개에 맞선 이는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며 허리를 굽히기도 한다 강가에다 발 담근 채 강물이 실어다 주는 이야기를 듣거나 비탈에 서서 언덕을 지키거나 사막에서 오가는 이를 손짓하는 학자들 모두 서로 다른 손짓, 몸짓 언어로 올바른 학설을 세우려 한다 하지만 고향을 지키는 노학자들은 언제나 고고하다 젊은이들 모두 떠나고 몇몇 노인들만이 쉬어가는 가난한 그늘 밑에서 등 굽어가는 고향마을을 의젓하게 지키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미래의 학자들은 끊임없는 학설은 세우려 할 것이다 겨우내 침묵하던 빈 가지에서 새잎이 돋기 시작하면 사람들도 역시 새 그늘을 찾아 몰려들 것이다 학자들이 무한히 쏟아냈다 비워내는 무언의 말씀으로도 세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