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ironmental Sustainability in Sport(1)
최근 K리그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주제는 잔디입니다. 지난 3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FC서울과 김천의 경기에서 드러난 잔디 상태는 선수들의 경기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깊숙이 파인 잔디에 부상을 당할 뻔한 린가드 선수는 본인의 SNS를 통해 불만을 표했고(린가드 선수의 팔로워는 918만명이나 됩니다),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는 양 팀 감독 모두 잔디로 인한 경기력 저하와 선수들의 부상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눈에 보일 정도로 흙바닥을 드러낸 '논두렁 잔디'는 경기장에서 그리고 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좋은 경험은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은 범인을 찾는 중입니다. 누군가는 경기장 관리 주체인 시설관리공단이, 누군가는 구단이, 또 누군가는 리그를 운영하는 연맹이 문제라고들 말합니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예산도 부족하고, 잔디도 기후에 적합하지 않고, 시즌도 너무 빨리 시작했고, 더 나아가서는 경기장의 설계부터 잔디 생육을 고려하지 않았다 까지. 여러 이해 관계자가 얽혀 있는 잔디 문제는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잔디 얘기가 더 흥미롭겠으나 저도 잘 모르는 분야기 때문에.. 저는 오늘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스포츠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과 기후변화입니다.
축구와 기후변화의 상관관계
K리그의 잔디 문제는 오래된 고질병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잔디의 생육 환경도 그중 하나입니다. 축구장에서는 흔히 겨울철에도 푸른 녹색이 유지되는 켄터키 블루그래스(Kentucky Bluegrass)나 페레니얼 라이그래스(Perennial Ryegrass) 같은 한지형 잔디를 사용합니다. 한지형 잔디는 서늘한 기후(15-24도)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 강한 반면 고온에 취약한 단점이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여름의 평균기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2024년,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6도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고, 여름철 전국 평균 폭염일수도 24일로 역대 3위, 열대야일수는 20.2일로 역대 1위를 기록하며 역대급 더위를 기록했었죠. 9월까지 더위가 계속되며 매년 여름이 더 길어지고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한지형 잔디가 자리가 어려운 환경인데 계속해서 더 악화되고 있는 거죠. 배수가 잘되지 않는 토양은 잔디의 생육에 완전 쥐약인데, 작년과 같이 좁은 영역에서 강하게 내리는 국지성 폭우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에서 비단결 같은 잔디를 보는 것은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점점 잔디를 기르기 어려운 환경이 되는 이유는 명백하게도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K리그는 2021년 탄소중립리그로의 비전을 발표하고 환경캠페인 'K리그 그린킥오프'를 런칭하며 지속해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경기장 방문 시 대중교통 사용을 장려하는 '환승입니다' 캠페인이나 경기장 내 올바른 쓰레기 분리배출을 유도하는 '모두의 행운권' 캠페인 등 팬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캠페인도 운영하고 있고, 환경 데이터 측정과 관리를 통해 온실가스를 저감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보고서도 발간하고 있죠. (환경 영역은 데이터 수집과 관리가 필수입니다.)
환경 캠페인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환경과 K리그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우리가 이만큼 줄인다고 뭐가 바뀌냐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제와서는 오히려 반문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K리그가 환경에서 자유로운 것 같은지요.
여태까지의 축구는 날씨,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축구는 추워도 하고, 더워도 하고, 눈이 와도, 폭우가 내려도 멈추지 않는 종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세먼지와 황사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2018년, 미세먼지 경보가 2시간 이상 넘게 지속되면 경기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생기면서, 더 이상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환경오염이 경기를 멈출 수 있게 된 거죠. (실제로 프로야구경기는 미세먼지로 일부 경기가 취소되었습니다.) 이번 잔디 사태를 봐도 그렇습니다. 잔디를 건강하게 키워낼 수 없다면, 우린 축구를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몇몇 구단은 잔디 이슈로 인해 홈경기장이 아닌 다른 지역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축구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빙상, 설상 종목 국제 스포츠 조직에서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평균기온이 올라서 얼음이 얼지 않거나, 눈이 오지 않으면, 그리고 폭설 같은 극단적인 기후가 잦아지면 동계스포츠 대회는 당장 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눈이 오는 지역이 줄어들면 많은 스키장들이 문을 닫아야 하고 (실제로 알프스에 있는 많은 스키장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적으로 해당 스포츠 산업 자체의 크기를 줄이게 됩니다. 눈이 오고 얼음이 어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스키나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에 입문하고 즐기던 사람들도 줄어들겠죠.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이 2012년부터 지금까지 NHL GREEN 이라는 환경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환경 캠페인을 한다고 뭐가 바뀌냐, 당장 눈이 오냐 아니면 잔디가 자라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개선들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방치한다면, 우리는 그냥 그렇게 지켜보다가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를, 축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ESG, 환경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를 지키기 위해 축구계에서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잔디 #K리그 #환경 #지속가능성 #ESG #기후변화
(이 글은 지난 3월 7일 매거진을 통해 발행된 글을 재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