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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Sep 22. 2024

마흔 생일, 산티아고 순례길이 다시 가고 싶어졌다

순례길이 다시 나를 부른다

어떡하지?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리워진다
포르토마린으로 향하던 다리 위에서


 순례길을 걸어본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블루’라고 순례길을 그리워하는 그 특정한 시기를 겪는다. 대부분은 길을 막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작년에 준비를 시작했던 6월이 다가오니 소위말해 뽐뿌(펌프질 하다에서 온 말인 것 같다)가 오더라. 뭔가 이번에 걸으면 더 잘 걸을 것 같고,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다 나름 한번 걸어본 길이라고 막연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언젠가는 분명 다시 걸을 거라 확신했던 길이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다시 걷고 싶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만큼 내가 길을 걸으며 받았던 행복감이 컸었나보다. 게다가 작년 순례길 초반에 함께 걸었던 선생님이 9월에 다시 길을 시작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니 나도 한껏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 것도 있었다. 나와 산티아고 길을 함께 했던 분의 스페인행 소식은 작년 이맘때의 설렘을 고스란히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내 까미노블루라는 물을 흔들기에는 작지만 아주 충분한 사이즈의 던져진 돌이 되었다.


다시 한번 가볼까?


 가히 충동적이긴 하지만 한 번 해봤다고 예전의 기억을 살려 빠른 검색들을 해본다. 나는 다시 걸어도 프랑스 길을 걸을 거라 정해놨기 때문에 크게 헷갈릴 부분은 없어 좋았다. 생장과 론세스바예스, 수비리와 팜플로나 정도로 초반 3일 숙소가 커버가 된다면 그건 청신호다라고 받아들이고 갈 기세다. 검색을 하면서도 마치 어제 걸었던 것처럼 순례길 곳곳의 광경이 비디오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특히나 초반에는 긴장도 많이 하고 감정도 더 복잡했던 터라 더욱더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일단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 편과 기차, 버스를 확인하니 다 예약 가능하다. 아주 좋은 신호이다. 그렇다면 이제 숙소를 알아봐야지.

 혹시나 작년 나의 첫 순례길 경험기 ‘서른아홉에 걸은 산티아고’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나에게 순례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숙소이다. 애매한 예비 중년의 나이에 기혼녀 아줌마로서 공동숙소에서 다 같은 공간에서 자고 시설을 공유하는 게 경험 정도로 감사하지 매일 하기엔 부담이다. 난 외국항공사에서 수년간 일하며, 어느 곳을 가던 개인실을 써왔고 지금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정되는 유럽에서 긴 시간 살고 있기에 나의 모험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숙소는 가능한 편한 내 공간이 필요하다. 작년에 순례길을 걸으며 묵었던 대부분의 숙소들의 내가 바란 조건을 많이 채워줬기 때문에 그 위주로 휘리릭 검색을 해나간다.


 솔드아웃, 예약불가

 이런… 빨간색으로 예약이 꽉 찼다는 내용들 뿐이다. 9월은 물론 10월까지 하루 이틀 애매한 날짜들을 제외하고는 풀북킹이다. 내가 작년 9 월행 산티아고 숙소들을 대략 6월에 예약을 했는데 사람들이 더 빨라지는 걸까? 생장에서 꼭 같은 곳이 아니어도 적당할 것 같은 숙소를 찾아보니 구글 평점 3.5를 밑도는 악평 가득한 몇 군데를 빼고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산티아고야 너의 문턱은 매년 조금씩 더 높아져가는 것만 같구나. 다행히 공립 알베르게에 수용인원도 많은 론세스바예스는 아직도 예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해. 순례길 여정을 시작하는 생장과 초반에 자리한 수비리와 팜플로나는 일단 적당한 곳이 없다. 특히나 수비리는 도시 자체가 작아서 머물 수 있는 숙소 수도 뻔한데 다 만실이다. 늦었구나. 어쩔 수 없지. 이렇게 급작스레 뽐뿌가 온 산티아고 순례길 피버를 다행히 적당히 하라며 꽉 찬 숙소들이 알아서 그 열을 식혀주는 것 같다. 그래 올해는 내가 걸을 길이 아닌가 봐. 계획에 없던 것이었으니 이쯤에서 내려놓기로 하자고 스스로를 달래 본다. 급작스러웠던 만큼 포기도 쉬웠다. 순례길을 걷기 위한 결정 요소들 중에 숙소에 대한 중요도와 그것에서 오는 안정감이 나에게는 가장 크다는 걸 다시 느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니 다음 산티아고에는 더 기깔나게 숙소들을 미리 잘 예약해 보겠어! 이렇게 큰 거 하나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떠날 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이 한 번 내 머리와 마음을 솎아 놓은 다음이 더 문제였다. 이거 계속 신경이 쓰인다. 순례자로서 가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으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무언가 순례길과 관련된 의미 있는 일들 말이야.

 이때 작년 네이버 까친연(‘까미노의 친구들 연합’의 줄임말) 카페에서 산티아고 자원봉사에 대한 글을 봤던 게 생각났다. 우리 모두의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한국인 자원봉사자를 찾고 있다던 그 글! 다시 찾아보니 그 글은 2023년 10월 경의 글이었고, 실제로 어떤 분이 몇 달 전인 2024년 5월에 자원봉사를 시작하신다는 글도 있었다. 바로 이거야!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한 명의 순례자로서 의미 있는 순간이 될 것 같아 지원하기로 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한 뒤 한 명의 순례자로서 가장 떨리고, 가장 가슴이 뛰었던 두 번의 큰 순간이 있었다. 하나는 순례길의 시작인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여권을 발급받으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설명을 듣는 순간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순례길을 완료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입성해서 순례자 사무실에서 콤포스텔라와 거리 증명서를 발급받는 순간이었다. 이 중요한 순간에 내가 느꼈던 설렘과 떨림을 새로운 순례자들과 나눌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링크를 열고 들어가 본다.

 머릿속에는 이 중요한 일을 과연 자원봉사자에게 그분들이 맡기실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일단 마음을 먹었으니 지원하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 당차게 마음을 먹어본다. 거 참 자원봉사를 지원하며 이렇게 떨렸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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