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지원하는 방법, 메일 오는 데 걸리는 시간
내가 하고 싶은 순례길 관련된 자원봉사
이미 마음먹은 거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링크를 들어가 지원을 해본다. 생각보다 지원은 간단했다. 5분 정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서베이 형식이라 지원하는데 부담이 없어 좋았다. 단 한 가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모든 질문이 스페인어로 되어 있기에 번역기를 통해 질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전부다. 이메일을 적고 이름과 성, 국적, 어느 지역사람인지 몇 년도 생인지 그리고 순례자였던 적이 있는지, 어떤 길을 걸었었는지를 물어봤다. 당당하게 작년 2023년에 프랑스 길을 걸었다고 적으며 이게 뭐라고 뿌듯해진다. 그리고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적는데 나는 영어와 한국어를 선택했고, 아직 서툰 이탈리아어는 과감하게 생략했다. 내가 실제로 봉사를 하게 된다면 어려움 없이 외국어로 사람들을 지원을 해줄 수 있고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어설픈 언어를 경력으로 포장해 봉사자를 선정하는데 혼란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싶은지 순례길 위의 공식 알베르게에서 일을 하고 싶은지 두 가지 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나는 당연히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2024년 언제 봉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8월과 9월이라고 주관식으로 적은 뒤 지원형식 폼을 접수했다. 구글폼에서 이메일이 와서 이게 네가 지원한 내용 맞냐고 확인을 했고 그렇게 나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일단 지원자체가 너무 쉽기 때문에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꾀나 많이 몰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복잡해서 지원자체가 힘든 것보다는 누구에게나 열린, 그래서 나에게도 열린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7월 1일에 지원했는데 워낙에 순례자들이 많은 성수기인지라 과연 답변이 일찍 올지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그리고 이왕 지원하는 거 프랑스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기회도 만들어보고 싶어 지원할 수 있는 링크를 찾아보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꽁꽁 숨겨져 있는 건지 결국에는 프랑스 생장 순례자 사무소의 웹사이트에서 발견한 이메일로 냅다 편지를 써 보냈다.
내가 순례길에 관련되어 하고싶은 자원봉사는 딱 두 가지였다. 내가 순례자로서 큰 떨림을 가지고 긴장했던 두 순간이 하나, 생장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던 순간과 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콤포스텔라를 받았던 순간이기에 이 두 곳에서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 생장에서 이제 막 순례길을 시작하는 새로운 순례자들에게 여권을 발급하고, 앞으로의 길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일 아니면 산티아고에서 세요로 가득 채워오신 순례자 여권을 확인하고 콤포스텔라를 발급해 주는 일. 첫 도장을 찍는 순간과 마지막 도장을 찍어드리는 순간. 그 떨림과 감동을 이해하기에 나는 이 두 가지 일 중 하나를 꼭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산티아고에 지원하며 동시에 생장에도 이메일을 보내본 것이다.
*** 지금은 2024년 모든 봉사자들을 다 뽑아 놓았기에 올해는 마감이 되었지만 2025년 봉사자들을 뽑을 준비가 되면 다시 활성화될 것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된다. ***
https://acogidacristianaenloscaminosdesantiago.org/
드디어 순례자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다
정확히 열흘 만인 7월 10일에 순례자 사무실에서 개인 이메일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자원봉사자 코디네이터로부터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력서와 사진 한 장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고 현재 제안할 수 있는 기간은 8월 27일부터 9월 10일이라는 답변이었다. 와! 벌써 날짜 제안까지 받다니 그럼 가능성이 엄청 높을 거라는 생각에 얼른 이력서와 사진을 추려 보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을 했었기에 영어 이력서는 이미 준비되어있었고 내 이력서에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걸은 것을 가장 윗줄에 추가해 답변을 보내고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프랑스 생장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이메일에 대한 답신이 없는 걸 보니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도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서 기분 좋았다. 이력서도 잘 보냈고 기다리는데 2주가 지나도 도통 연락이 없는 게 좀 불안해졌다. 이 불안은 내가 봉사자로 선정되지 않았나하는 의문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었고, 내 마흔 번째 생일이 있는 9월에 나 또한 신랑과 어디든 여행을 계획하기로 한 상황이기에 날짜가 좀 정확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는 순간이라 불안해진 것이다. 조심스레 일정을 확인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니 다행히 이틀 만에 답장이 왔고, 내 생일이 중간에 애매하게 껴버린 첫 번째로 제안받은 일정을 피해(물론 내 생일이라고는 말 안 했다. 자원봉사여도 일은 일이기에 덜 전문적으로 보이는 언행은 지양하는 편이다.) 조금의 수정을 거쳐 9월 3일부터 9월 17일까지의 자원봉사 기간을 확정했다. 날짜를 받고 보니 조금의 욕심이 나서 내가 작년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던 10월 5일 부근에 일을 하면 더 완벽하겠다, 이런 일주년 기념이 어딨겠냐싶지 뭐야. 게다가 작년에 함께 걸었던 선생님도 10월 초에 산티아고에 도착하시니 내가 콤포스텔라를 드릴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특별할까 싶어 날짜를 10월 초로 조정하고 싶었으나 이미 10월을 포함한 남은 2024년도의 자원봉사자가 다 정해져서 내년 2월에나 새로운 공석이 생길 것 같다는 답변에 얼른 마음을 고쳐먹었다.
와… 내가 운이 좋았던 거였다. 봉사자 선정의 거진 막차로 뽑혔고 그렇게 2024년 자원봉사자의 기회는 마무리되어 내년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출발 전에 어떤 내용을 전달받을까
모든 이메일은 스페인어였다
제안받은 날짜를 수락하고 난 뒤 내가 묵을 숙소의 위치와 갖추고 있는 시설에 대한 정보를 담은 이메일을 받았다. 장소는 얼마 전에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한국분이 올려주신 알베르게와 같았다. 숙소는 Albergue Peregrinos San Lázaro이고 찾아보니 살짝 산티아고 벗어난 외곽으로 순례자 사무실까지 걸어서 대략 5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후기를 찾아보니 숙소 바로 앞에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어 1유로에 손쉽게 산티아고 시내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도착하고 나서 보니 우리가 순례길 막바지에 “산티아고에 입성하는구나”를 알 수 있는 표식과 같았던 포토스팟 바로 앞이 내가 묵을 알베르게였다.
이메일에는 개인실이 지급되며 공용 화장실과 공용 주방이 준비되어 있고, 세탁시설도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화요일 오후 2시에 입실해서 2주 뒤 화요일 아침 9시에 퇴실한다고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게 더 물어볼 것 없이 깔끔하게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단지 모든 이메일은 스페인어로 오기 때문에 나는 이참에 챗 GPT의 진가를 아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사용했다. 받은 이메일에 대한 서신도 영어로 해도 되었겠지만 담당자분이 스페인어가 더 편하시니 이메일도 스페인어로 하셨겠지싶어 이왕 이용하고 있는 챗 GPT로 내가 쓴 영어 이메일을 스페인어로 번역해 답메일을 했다. 큰 노력이 드는 것도 아니니 자원봉사자 코디네이터 하시는 분이 일하기 더 수월하게 느끼셨길 바랄 뿐이었다.
이메일 서문 번역
다음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순례자 환영 사무소에서 우리와 함께 자원봉사를 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입니다.
산티아고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할당되는 업무는 다양합니다. 몬테 도 고조에 있는 산 마르코스 예배당에서 정보 제공 및 도장 찍기, 순례자 환영 국제 센터의 대기실에서 순례자들을 동반하는 일, Rúa do Franco에서 정보 제공, 순례자들에게 콤포스텔라 배포 등의 업무가 있습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숙소는 HOGAR DEL VOLUNTARIO라는 이름의 개인 공간으로, 공공 숙소인 산 라사로 단지 내에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숙소는 순례자 숙소와는 독립된 출입구를 가진 별도의 공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숙소는 간소한 가구가 마련된 1인용 방으로, 90cm 크기의 침대, 침대 옆 탁자, 옷걸이, 의자, 램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각 자원봉사자에게는 체류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시트와 수건 두 세트가 제공됩니다.
HOGAR DEL VOLUNTARIO에는 순례자들과는 분리된 독립된 욕실 공간이 있으며, 남녀 각각의 욕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숙소에는 식기류와 주방용품, 전자레인지, 냉장고, 테이블이 있는 주방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또한 모든 장비를 갖춘 순례자 구역의 주방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용 구역으로는 텔레비전, 독서 및 휴식 공간이 있으며,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가능성에 따라, 2024년 9월 3일부터 9월 17일까지 자원봉사를 제안합니다.
입실은 9월 3일 14시이며, 퇴실은 9월 17일 9시입니다.
확인을 기다리겠습니다.
따뜻한 인사를 전합니다.
이렇게 나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행이 확정되었다. 아직 얼떨떨했지만 순례길을 준비하던 때의 작년 이맘때 마음만큼이나 들뜬다. 어떤 모험이 될지 너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