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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Sep 30. 2024

반려견도 순례자 여권이 있다고요?

Day 2 순례자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생일축하노래

2024년 9월 5일 목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2


아침에 보는 조용한 대성당
아침 9시가 다 되어가는 산티아고, 굴다리에서 백파이프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오전조라 8시경에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숙소에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은 꾀나 직선에 순례자 안내 표시가 잘 되어 있어서 걱정 없이 쭉쭉 걸어 나간다. 어제보다 기온이 많이 떨어져 오늘 최고 온도는 19도, 내일은 15도라는데 엄청 추울까 봐 급하게 산 자라 패딩이 걸은지 3분 만에 짐이 된다. 역시 걷다 보면 열이 난단 말이지. 그래도 추워서 감기 걸리는 것보다 짐이 되어도 여분의 잠바하나 가지고 나온 게 마음은 더 편안하다. 여기에서 2주간의 자원봉사를 잘 수행하려면 아프지 말아야지! 건강 잘 챙기며 지내야겠다. 근데 정말 산티아고의 9월이 이렇게 추울지 상상도 못 했지 뭐야. 요즘은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날씨를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참 이상한 시대가 된 것 같다. 난데없는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하며 아침이라 조용한 산티아고를 걸어 대성당을 지나 순례자 사무실로 간다.

   

오픈 전의 순례자 사무실 그리고 막 순례자를 받기 전의 사무실 안


 문이 닫혀있는 순례자 사무실 모습은 나도 처음이었는데 와 벌써부터 이리 줄을 서있는 게 신기하네. 제일 먼저 도착해 계신 순례자분은 아예 침낭을 피고 주무시고 계신다. 이분들은 그럼 한 밤중에 걸어오신 분들일까? 새벽에 걷는 산티아고는 많이 익숙하지만 밤을 새워 오시는 분들의 길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9시가 조금 안되어 문이 열리고 봉사자들만 먼저 들어간다. 깨끗하게 정돈된 사무실에 테이블을 골라 앉아 순례자분들에게 드릴 사탕봉지도 컴퓨터 옆에 올려놓고, 오늘 순례자 여권에 찍어드릴 공식 사무실 세요와 날짜 도장도 확인을 해본다. 콤포스텔라와 거리증명서의 차이를 설명드릴 종이도 챙겨놓으면 내 준비는 완료! 곧 딩동 하는 번호판 알림 소리가 시작되며 우리의 일상이 시작된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날지 설레는 순간이다.


함께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순례자들을 맞이하며 하나 둘 콤포스텔라를 발급해 드리는데 오른쪽 팔뚝이 욱신욱신 거리는 게 신경 쓰인다. 내가 어디에 부딪혔었나? 이상한 자세로 잠을 잘못 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을 계속하는데 머릿속에 번뜩 그 이유가 떠올랐다.


아~~~! 도장! 세요!

 어제 도장을 두 손으로 꾹꾹 눌러드리느라 팔에 힘이 엄청 들어갔던 거였다. 안 쓰던 팔근육을 쓰니 놀랐나 봐. 어쩐지 어제 내가 두 손으로 도장 찍는 모습을 본 지영언니가 “그렇게 열심히 안 찍어도 되는데, 내가 본 사람 중에 도장 제일 열심히 찍는 것 같아.”라고 웃으셨지 말이야. 내가 이상한 폼으로 5시간 동안 팔이 아플 정도로 도장에 힘을 담아 눌러댔다는 것도 웃기고 도장 좀 몇 시간 찍었다고 꽥꽥거리는 내 몸도 너무 가소로워 픽 웃어버렸다. 자원봉사 덕분에 오래간만에 안 하던 팔운동도 완료!


 오늘 호주에서 오신 루스라는 여자분이 콤포스텔라를 발급받으셨는데 오늘이 본인 생일이라고 하셨다. 그걸 이탈리아 자원봉사자인 니콜라가 듣고는

 “모두들 주목해! 오늘 여기 이분의 생일이래.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 불러주자!”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순례자 사무실 안에 있던 모든 봉사자들과 직원분들, 그곳에 함께 계신 서로 모르는 순례자분들까지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이 얼마나 따뜻한 광경인지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듣고 너무 감격스러워하는 루스에게 사탕을 하나 건네며 생일축하한다고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이때 근처에 앉아 계시던 말 수 적은 봉사자 페드로가 루스에게 혹시 12시 미사를 보러 갈 거냐고 조용히 다가와 물어본다. 루스가 안타깝게도 곧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할 거라고 하니

 “아, 12시 미사 축성에 네 이름을 올릴 수 있나 알아봐 주려고 그랬어. “

 이러고 돌아선다. 이런 매력적인 아저씨 같으니라고! 무뚝뚝해 보이면서 은근히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다 귀 기울이고 신경 쓰고 계시는 거였다. 이런 작은 배려, 순례자들을 생각하고 특별한 경험을 드리고 싶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하는 게 오래 봉사하신 분들의 미덕이구나. 이렇게 조금씩 순례자 사무실의 은연한 분위기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쉽지만 너무나 고마워하는 루스를 보며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우리의 작은 축하가 그녀에게 조금은 더 특별한 생일로 기억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길 바란다.

 

 반례견도 순례자 여권이 있다고?

 작년에 순례길을 걸었을 때 강아지와 함께 걷는 순례자들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사실인데 실제로 꽤나 많은 순례자들이 사랑하는 반려견 또는 반려동물과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오늘 정말 귀여운 여자분이 내게 콤포스텔라를 발급받으러 오셨는데 난생처음 보는 귀여운 순례자 여권을 불쑥 내미는 게 아닌가. 이게 뭔가 싶어 순간 놀랐는데 아주 조심스럽게

 ”이거 우리 강아지 순례 여권인데 여기에도 도장을 찍어줄 수 있어? “

 라고 물어보신다. 알고 보니 이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걷는 강아지들이 사람 순례자처럼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반려견 순례 여권(Credencial Canina)이었다. 이 여권은 APACA(Asociación Protectora de Animais do Camiño)에서 주도한 프로젝트로, 가격은 3유로에 이 수익금은 길에서 버려진 동물들을 돕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다는 정말 좋은 의도가 담긴 것이었지 뭐야. APACA는 카미노 길을 따라 동물 보호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한다.


강아지의 순례 여권과 Turismo canino 사이트의 판매 사진

 

 이런 귀여운 여권도 처음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걸어 너무 뿌듯해하시는 예쁜 순례자분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도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다. 아직 한 살 반이라는 강아지의 이름은 겐조라며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앉아있는 검은 털 흰털이 섞인 예쁜 아이가 정말 너무 귀엽고 당당해 보였다. 엄청 씩씩하고 뿌듯해 보이는 이 강아지 사진을 보며 와 내가 주인이었어도 정말 자랑스러웠을 것 같더라. 반려견과 함께한 순례길은 어땠냐고, 또 함께 걸을 것 같냐고 물어보니 당연하다고 바로 대답하시는 순례자.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주시며 알베르게를 묵을 때 강아지가 있으면 돈을 아주 조금 더 내야 하지만 모든 업소들이 강아지 친화적이셨고, 어떤 곳은 강아지 쿠션을 따로 준비해 주시고 또 어떤 곳은 강아지 스낵도 주시는 등 행복한 여정이었다 하신다. 이분께도 첫 순례길이었는데 겐조는 정말 최고의 산티아고 동행자였다며 걷기도 잘 걷고 큰 위로가 되는 친구였다고 한다. 열을 내 설명해 주시는 그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내 행복치수가 초과되는 것 같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강아지와 함께 하는 순례길도 있었구나, 이런 것도 배워가며 우리가 순례길을 걷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겐조도 순례길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 미래에 또 다른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쁜 주인분과 겐조를 상상해 본다.


오늘의 배운 점
- 반려동물을 위한 순례길 여권도 존재한다는 것
(반려동물에게는 콤포스텔라나 증명서는 안 나가지만 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는 있다.)
- 반려견 여권은 Turismo Canino 웹 사이트에서 구매 가능함
 https://www.turismocanino.es/tienda​​​​​


 APACA에 이메일 credencialcanina@paradoxahumana.com 또는 WhatsApp 번호: 604 028 306으로 연락해도 주문하실 수 있다고 하는데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선 따로 판매나 관리를 안 하고 있기 때문에 반려견과 순례길을 계획하실 분이 있다면 여유를 두고 미리 확인하고 알아보시길 바란다.


누마루야 내가 다시 왔다
최고의 한식당 누마루와 내 최애 메뉴 두루치기


 오늘은 오후 2시에 봉사가 끝나는 오전조라 오후시간이 온전히 내 자유시간이다. 5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했더니 배도 엄청 고파 신랑과 함께 못 와 아쉬웠던 바로 그 한식당 누마루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도보 12분 정도의 거리라 위치도 딱이고 변한 것 없이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가게 안은 북적이고 있었다. 내 최애인 두루치기를 포함해 깔끔하게 한 상 차려 나온 비주얼은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너무 예쁘다. 역시 음식은 눈으로도 먹을 수 있어야 해.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그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싱싱한 상추에 매콤한 두루치기 한 점 싸서 입안에 넣는데 그냥 바로 천국행이다. 외국인한테는 살짝 매콤할 수 있을 것 같은 맵기인데 나에겐 딱인 데다 바삭한 야채튀김에 새콤 매콤한 오이무침까지 맛있어 정말 배부르게 먹은 뒤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섰다. 작년에 먹었던 그 맛 그대로라 예전 생각도 나고 참 고마운 식사다. 내가 산티아고에 살면 정말 정기적으로 와서 이것저것 시켜 먹을 텐데 아쉽지만 지금 이렇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의 순례자들

 

 맛있는 한식을 먹고 기분 좋게 부른 배로 천천히 산티아고를 산책한다. 성당 앞에 드러누워 자유와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는 순례자들도 지켜보고, 산티아고 파이를 시식하라는 다가오는 아주머니의 접시에서 파이 한 점 집어먹어 보기도 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오전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끝나는 이 시간대 정말 좋은데? 오늘도 행복해하던 많은 순례자들과 그들의 특별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뿌듯했던 하루였다.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일이라 앞으로 남은 11일도 잘 먹고 몸 관리 잘해가며 힘내자고 다짐해 본다. 오늘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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