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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Sep 28. 2024

산티아고 자원봉사자 숙소로 들어가는 날, 긴장되는구먼

순례자를 위한 자원봉사 오늘부터 시작인가요

2024년 9월 3일 화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 day 자원봉사자 숙소로 입소하는 날


안녕 내 짝꿍아, 2주 뒤에 보자

 신랑은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아침 비행을 위해 일찌감치 씻고 준비해 호텔을 나선다. 우리 신랑은 앞만 보고 하루하루 열심히 비행하는데 난 이곳저곳 내 열정을 따라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는 게 가끔 미안하다. 뭐든지 내가 원하는 걸 이유도 묻지 않고 서포트해 주는 신랑덕에 늘 큰 주저함 없이 결정을 내리곤 하는 오늘처럼 문을 나가는 신랑의 뒷모습을 볼 때면 가장의 무게가 느껴져 눈시울이 시큼해진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한 순간.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줄 수 없는 무한 서포트와 함께 나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굳건하게 믿는 모습에 오늘도 ‘야~ 나 결혼 진짜 잘했다.‘ 감탄을 한다. 그래! 이왕 2주간 이렇게 떨어져 있게 된 거 후회하지 않게 멋진 시간으로 만들자! 다녀와서 정말 즐거웠다고,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고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으로 만드리라 다짐을 한다.


 체크아웃을 하고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코앞인 산티아고 거리를 걸어 다니며 기념품샵들과 인파들을 즐겨보기로 했다. 신랑이 있을 때도 기념품 샵은 마음껏 들여다보았지만 진정한 쇼핑의 묘미는 혼자 있을 때라는 거! 누구 신경도 안 쓰고 자석 하나, 엽서 한 장이라도 혼자 이상하게 꽂힌 물건을 원하는 만큼 보고 집중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기념품 사냥이 아닐까. 게다가 신랑은 내가 뭐라든 다 사라고 해서 같이 쇼핑하기 조금 부담스러운 타입이다. 그래서 연애 7년에 결혼생활 5년 도합 12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아직도 신랑을 데리고 쇼핑을 잘 못 간다. 사든 안 사든 모든 가게를 다 기웃거리는 내 특성도 그렇고 조용히 지켜만 보는 신랑의 특성도 차라리 따로 가는 게 더 편하다고 할까. 특히나 가격대가 있는 샵에서는 나의 관심이 꼭 사달라는 말로 그에게 들릴까 봐 아직도 많이 조심하는 편이다. 그저 시간이 지났다고 편해지고 무엇을 요구해도 아무렇지 않아지는 관계보다 배려를 바탕으로 조금은 조심하고 지내는 게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라 난 참 좋다.


예쁘고 다양한 조개 모양의 팬던트들

 

 신랑 없으면 보고 싶었던 주얼리 가게로 들어가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조개 모양의 금 펜던트를 샀다. 우리 언니가 10년 전 산티아고를 걸을 때 한 목걸이를 하고 걸었었는데 지금도 완주를 함께한 그 목걸이를 참 아끼고 있거든. 무언가 힘이 되는, 성취와 좋은 기운이 담긴 목걸이라 내가 산티아고 걸을 때 나 그 목걸이 줘라 했더니 안된다고 거절당했었지. 그래서 나도 산티아고에 온 김에 그런 목걸이 하나 사서 다음 순례길에 하고 가고 싶었던 거다. 아 거참 나이가 들어도 남들 하는 이런 소소한 거 나도 하고 싶어지는 건 왜 이리 변하지 않나 모르겠다. 다행히 딱 내 마음에 드는 펜던트를 찾아 기분 좋게 포장해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조개 펜던트는 내 다음 산티아고 순례길의 공식 파트너로 이미 선정된 셈이다.


2주간 머물 숙소에 도착하다

 드디어 봉사자로서의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출발을 해본다. 겨우 10분 남짓한 이동 시간이 내가 묵을 숙소가 산티아고 대성당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공항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Albergue Peregrinos San Lázaro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 호탕해 보이시는 리셉션의 남자분이 나를 맞아 주신다. 내가 봉사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니 활짝 웃으시며 어디론가 나를 데려다 주시는데 일반 순례자들이 지내는 알베르게 구역을 지나 건물의 다른쪽에 위치한 자원봉사자 전용 숙소로 안내해 주신거였다. 오후 2시가 되고 드디어 그동안 내가 이메일로 꾸준하게 소통해 왔던 자원봉사자 코디네이터 몬세를 만났다. 정말 환하게 웃으시며 안아주시고 잘 왔다고, 환영한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그 따뜻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 나 이런 좋은 분들과 일하겠구나.’ 좋은 생각이 든다.


 

 오늘 유일하게 함께 입소한 또 다른 자원봉사자 D는 아일랜드 사람인데 이름이 복잡하니 그냥 D라고 부르라고 한다. 60세가량 된 그녀는 하얀 금발의 앞머리에 핫핑크색 브릿지를 넣은 멋진 아줌마다. 혼자 입소하는 것보다 이렇게 밝은 동기가 있다는 것도 참 다행이지. 혼자 멀뚱멀뚱 있게 된 것보다 같이 헤매더라도 의논할 사람이 하나 있다는 건 천지 차이다. 몬세가 우리에게 숙소를 안내해 주며 앞으로 2주간 묵을 각자의 방도 소개해주었고,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드디어 시간표를 확인했는데 D는 당장 내일 오전조로 아침 9시에, 나는 오후조로 오후 2시부터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와… 이렇게 바로 시작되는구나. 나는 회의실 같은 곳에서 여러 명이 함께 교육이라도 먼저 받고 투입되는지 알았는데 일단 내일 순례실 사무실로 가면 알 거라고 쿨한 안내를 받으니 얼떨떨하다.

 숙소는 모두가 개인실이고 총 12개 정도의 방이 있었다. 부엌과 화장실은 공용인데 모듬 공간이 넓직하고 기구들이 잘 갖춰져있어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엌에는 전자렌지와 오븐, 전자 물주전자는 물론 커다란 냉장고가 2개나 있어서 봉사자들이 자신의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었고 모두가 공유하는 조미료들이나 음식들을 모아둔 선반도 있었는데 여기서 물씬 풍기는 순례자 느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숙소에서 가까운 몰 Centro Comercial As Cancelas

 간단한 안내가 끝나고 오늘은 지금부터 방에 짐 풀고, 개인시간을 가지라고 해서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산티아고에서 제일 큰 몰인 As Cancelas가 숙소에서 걸어 20분 거리라 까르푸에서 앞으로 먹을 음식 장도 보고 날씨에 맞는 옷도 추가할 절호의 기회였다. 9월 초 산티아고의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서 얇은 여름옷만 챙겨 온 나는 새 옷을 잔뜩 사야 할 판이다. 급하게 신랑이랑 함께 산 검정 진바지 하나랑 청남방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당장 입고 잘 잠옷도 너무 얇아 썰렁한 밤을 대비해야해서 이미 어떻게든 쇼핑센터에 가야겠다던 참이었다.

 예전에 하루 대여섯 시간도 걷던 순례자였는데 같은 스페인 산티아고 안에서 20분씩 왕복 40분 걷는 거는 일도 아니지.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As Cancelas 몰에 갔는데 여기 정말 내 스타일이다. 일단 이탈리아에도 몇 개 없고 아직 한국에는 아예 없는 영국 SPA 브랜드인 Primark(프라이마크)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 의류 브랜드 Sfera(에스페라)에 자라, H&M 등 지금 내가 급하게 뭘 사기에 적당한 브랜드는 다 있었다. 게다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손꼽는 공간… 대형 까르프가 있다! 외국 여행을 할 때 명소를 보고 맛있는 거 먹고 기념품 사는 이 모든 걸 좋아하지만 내가 가장 재밌다 느끼고 만족도 최상인 순간은 바로 외국 까르프에서 장 보는 시간이다. 까르프를 본 순간 ‘아… 여기 자주 오겠군.’ 느낌이 왔다. 진짜 까르푸에서 장 보는 거 나 너무 재밌고 행복해.


As Cancelas 몰과 그 안의 까르푸

 

 프라이마크에서 따뜻하게 입을 맨투맨이랑 운동화도 한 켤레 사고(집에서 테바 샌들이랑 하바이나스 조리만 가져왔다. 난 이번 산티아고의 날씨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까르푸에서 음식 잔뜩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내 침대를 정리하고, 짐들을 푸는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뭐 별거 가져온 것도 없는데 짐 싸는 건 금방해도 짐 푸는 건 늘 복작스럽다. 사 온 음식들을 공용 부엌에 정리하자 싶어 나갔는데 몇몇 봉사자들과 함께 사브리나라는 이탈리안 직원분을 만났다. 이 분은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까지 하는 능력자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한참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하다 사브리나가 자기 까르푸에 갈 건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본다. 생각해보니 내일부터 사무실에서 일할 때 만날 순례자들을 위해 간단한 사탕이나 카라멜같은 간식을 좀 준비하고 싶었기에 나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궁금한 것도 많았던 차에 사브리나와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내가 간식을 얼마나 사둬야 할지 모르겠다며 보통 하루에 한 명당 몇 명 정도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하니 이 경력 많은 사브리나는 나를 멈추며 이렇게 말해줬다.


 걱정하지 마. 네가 줘야 할 사람이 있으면 느낌이 올 거야. 꼬마 아이가 될 수도 있고 어른이 될 수도 있어.


 그녀는 내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내가 준비하고 싶은 만큼만 준비해 가라고 한다. 이 때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여하튼 내가 스페인에서 맛있다고 생각했던 초코바 몇 봉지와 츄파춥스 큰 거 한통을 사서 돌아왔다. 내일 가져갈 가방에 초코바와 미니 츄파춥스를 삼십여 개 정도 담으며 부족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시작이라니 뭔가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분 하나는 설렘이다.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앞으로 2주 동안 산티아고 대성당을 매일 지나며 순례자 사무실로 출근하고, 수많은 순례자들과 만날 생각에 정말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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