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와 순례길의 인연은 계속된다
순례길 인연은 계속된다
2023년도의 산티아고 순례길, 2024년도의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자원봉사에 대한 글을 천천히, 옮기다 보니 어느새 2025년이 되어버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창고로 나중에 내가 나이 들어서도 들여다보며 소소하지만 확실했던 몽글몽글한 감정들을 잊지 말고자 시작한 글이었는데 천천히 되새기면서 산티아고를 떠올리고 싶을 때 쓰는지라 그간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긴 시간 동안 산티아고가 이어준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으니 그만큼 순례길과 산티아고가 우리의 삶에 주는 의미는 깊은 무게가 있다.
지난겨울에 서울에 갔을 때 산티아고 동기와 같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우리 선생님과 척척박사 J 씨와 다시 만나는 소중한 시간도 가졌고, 산티아고 봉사자 코디네이터인 몬세에게는 2025년 언제든 돌아오고 싶을 때 말해달라는 애정 어린 연말인사를 받았다. 산티아고에 있는 동안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사랑 넘치는 지영언니와 E언니도 오랜만에 전하는 인사를 반겨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빨리 다시 뵙고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게다가 지난주에는 산티아고를 함께 걸은 동갑내기 일본인 친구 메구미가 내가 사는 이탈리아의 도시에 와서 이틀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산티아고와 순례길이 맺어준 인연은 시간과 공간의 한정성이 없는 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어디에 있건 마음이 연결되어 있고 어색함이 없다고 할까. 그저 신기하고 재밌으면서 특이할 정도의 돈독함에 따뜻함이 가득하다.
특히나 마지막 서울에서 있을 때 만났던 우리 선생님과 J 씨와의 만남은 가장 특별했다고나 할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매번 운동복만 입고 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일상복을 입고 만나려니 기분이 묘했다. 멀리서 온 나를 챙겨주신다고 맛있는 고기도 사주시고, 선물까지 챙겨 오신 선생님은 산티아고에서나 서울에서나 사랑으로 가득하시다. 너무 감성 넘쳤던 순간은 우리를 순례길 첫날에 인연으로 이어준 호떡을 이번에 커다란 봉지로 챙겨 와 안겨주셨을 때! 다 먹은 고기 불판 위에 큼지막한 호떡을 올려두고 이번에는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게 참 감동이었다. 론세스바예스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선생님이 건네주신 작은 호떡빵 2조각을 이 층침대에 올라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산티아고의 내 자원봉사자 알베르게로 가방 한가득 보내주신 음식과 선물들 사이에 호떡봉지를 보고 감동과 감사함에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터졌던 게 꼭 어제 같은데… 우린 서울에서 처음으로 같이 호떡을 나눠먹고 있었다. 선생님과 나는 문자 그대로 호떡인연이다. 이것도 선생님의 섬세함이 없으셨다면 호떡이란 키워드로 오래 이어지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기억해 주시고 챙겨주시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에는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따뜻한 추억의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니 일 년이 더 넘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호떡 세 조각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산티아고 순례길 위로 데려다 놓았다. 식사하는 내내 J 씨와 나의 접시에 계속 고기를 올려주시고, 죽어도 함께 스티커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내 소원에 웃으면서 함께 해주시는 따뜻한 선생님. J 씨는 산티아고에서도 늘 그랬듯 능숙하게 스티커사진 가게의 위치를 찾아 척척 길을 안내해 주는 게 아 정말 언제 봬도 이 두 분은 든든하고 다정하신 게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나는 운이 참 좋게 산티아고에서 좋은 사람들만 만났구나를 느꼈다. 소중한 인연, 앞으로도 더 잘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백만 번 정도하고 돌아온 시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 되기
일단 경험 자체로 따지면 나는 내가 직접 걸은 순례자로서의 순례길 경험과 이번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2주간의 자원봉사를 비교해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경험도 순례길 못지않게 풍부하고 갚졌던 경험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강력추천한다. 물론 두 가지 경험의 결은 확실히 다르지. 그리고 내가 순례자였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자원봉사의 기간이 더 소중했고, 다른 순례자분들의 여정에 더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함께 걸었던 내 산티아고 순례길 동료들에게 자원봉사 경험은 정말 또 다른 감동의 연속이라고 꼭 추천한다고 누차 말했을 정도고 이미 길을 걸어본 순례자분들에게 정말 자원봉사자가 한 번 돼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순례자로서의 여정과는 또 다른 가슴을 가득 채우는 따뜻함을 경험하실 거기에 정말 후회 없으실 거다. 매일매일이 순례길을 새로 완주하는 듯한 기분과 큰 감동으로 꽤 벅찼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 지원 시 알아두면 좋은 점
1. 순례자 봉사활동은 최소한 2주일을 일하실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며칠만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주를 기본으로 여러 봉사자들이 로테이션을 하고 하루는 오전, 하루는 오후 번갈아가면 2주간 오프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여러 번 봉사를 하셨던 분들은 시간을 더 내어 한 달을 와 계시기도 한다. 2주 동안 연이어 쉬는 날 없이 봉사를 하고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2주라는 시간이 정말 짧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다시 지원을 해도 한 달을 연달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2주일 정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딱 적당하고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2. 대부분의 봉사자분들은 나이가 많으시다
당연히 인생의 프라임에 있으신, 한창 일을 하시는 분들, 특히나 우리같이 멀리 사는 아시아 사람들은 봉사하는 2주일에 비행기 타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긴 시간을 스페인에 오시기 힘드실 거다. 그래서 봉사하시는 많은 분들이 은퇴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많고, 젊어도 60대 정도 되는 것 같다. 가끔 20대도 있고 30대도 있다지만 꽤나 드물고, 내가 봉사할 때는 만 40살인 내가 제일 막둥이었다. 젊음과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 난 전 세계에서 오신 어른분들의 순례길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배운 게 참 많았다. 이곳 자원봉사자 숙소에서 활발하고 밤을 지새우는 젊음과 열정보다는 인생에 대한 조용한 조언을 얻어가실 걸 더 기대하시면 좋겠다.
3. 무료 숙소가 지원된다
봉사를 하는 2주간은 순례자 사무실에서 걸어서 50분 정도,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알베르게가 제공된다. 하지만 비행기 값이나 식비 등은 지원이 없으니 이곳에 오고 가는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과, 2주간의 식비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걸 알아두자. 함께 사용하는 부엌에 요리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은 아주 잘 갖춰져 있고, 내 음식들을 넣어둘 수 있는 커다란 냉장고도 2대나 준비되어 있으니 직접 요리를 해서 체류비를 좀 절약할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기회에 스페인 음식 실컷 먹자 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식대를 좀 많이 쓰긴 했다. 순례길도 그렇고 자원봉사도 그렇고 언제나 나 쓰기 나름인 건 똑같다.
4. 영어는 기본, 스페인어를 하면 더 좋다
한국어를 한다고 한국인 순례자만 응대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치면 하루에 혼자 대강 100여 명 정도의 순례자를 응대하는데 그중 많아야 6~7명 정도만 한국인이었다. 보통은 하루 2명 정도 뵌 게 다인데 이것도 시즌마다 다르고, 한국분이 더 계시다고 해도 나 외에 다른 봉사자나 직원분들에게 콤포스텔라를 받을 가능성도 있기에 한국어는 거진 안 쓴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대부분이 내 체감상으로는 80% 정도는 스페인을 쓰시는 분들이고 나머지가 영어를 쓰시는 전 세계에서 오시는 분들이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스페인어를 쓰시는 많은 분들이 나와 대화하실 때 영어를 하시려고 노력하셨고, 나 또한 간단한 질문과 축하한다는 말 정도의 기본 스페인어는 적어놓고 응대해 드리려 노력했다. 그러니 산티아고에서 봉사활동을 하실 때 스페인어를 하실 수 있다고 하면 베스트고, 적어도 영어는 기본으로 하셔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 한국어만 하시는 분은 큰 활약을 하실 수 없을뿐더러 이미 정기적으로 봉사하시는 한국인 봉사자분들도 계시기에 봉사자 선정 시 메리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5.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셨으면 좋겠다
나는 산티아고까지 와서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할 정도면 다 정 많고 친절하실 줄 알았는데 아닌 분도 계시다! 정말 무뚝뚝한 미국 아줌마가 한분 계셨는데 그냥 기계적으로 말씀하시고, 자기 순례길 경험 이야기만 줄줄 하시는 참 이해하기 힘든 분이었다. 이왕이면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고, 그들의 경험에 공감하고 마음 써주실 수 있는 분들이 자원봉사를 하시면 더 따뜻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드실 거라 생각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너무나 다양하고 멋진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고 배우면서 세상은 아직 따뜻한 곳이구나라고 느꼈다. 특히나 몇 년째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시는 지영언니와 같은 멋진 한국인이 중요한 인력으로 순례자 사무실에 계셔준다는 게 참 든든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외국에 살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난 지영언니와 같이 선하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궁금해하시고, 마음 써주시는 분을 본적에 없었다. 지영언니 외에도 이탈리아 할아버지, 스페인 할머니, 영국인 부부, 코스타리카 아줌마 등 많은 사람들에게서 밝은 에너지와 순례길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고 함께 일하는 게 서로에게 영광인 그런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건 순례길을 걸을 때의 동기애와는 또 다른 레벨의 교감이었고 자원봉사 일을 해보면 며칠 안에 깊이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행복한 자원 봉사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로 보낸 2주일은 정말 꿈만 같았다. 1년 전 31일간의 프랑스 길을 걸어내고 순례자로 증명서 크레덴셜을 받으러 온 지 바로 그 공간에서 이번에는 내가 그 크레덴셜을 다른 순례자들에게 발급하고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니… 하루아침에 난 비밀공간의 인사이더가 된 듯한, 아무나 맡을 수 없는 중대 임무를 수행하는 느낌이었고 실제로 하루하루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가진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감정의 교류를 한 마법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어느 날은 캐나다에서 오신 분과, 어느 날은 쿠바에서 오신 분과 우린 같이 웃고, 같이 울고, 때로는 손을 잡기도, 포옹을 하기도 하며 순례자라는 이름 아래 온정을 나누며 서로를 치유했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했는지 까마득한 게 기억 속을 한참 뒤적여봤어야 한걸 보면 아마 아주 오래되었나 봐. 예절, 예의, 매너, 상식 이런 정중한 개념들을 가지고 어른이니까 제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해왔지만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봉사를 하며 오래 닫아 두었던 마음을 빗장을 열고 정말 마음껏 사람들을 환영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느낀 자유의 느낌이랄까.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매일이 너무나 행복했고 매일 마음이 커다란 따뜻함으로 꽉 메꾸어졌다.
이 기분은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승무원이 되어 비행을 할 때의 그 소중함과 많이 닮아 있었다. 어떤 분들은 여행 가는 게 즐겁고, 남들이 예쁘다고 해주는 직업이라 승무원이 되고 싶어도 하지만 난 진심으로 사람을 대해는 게 너무 즐거워서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누구보다 승객들한테 친절하게 할 자신이 있었고, 어린 시절 승무원들을 보며 난 돈을 안 받아도 되니 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꿈꾸던 승무원이 되고 나에게 다양한 여행의 기회와 꽤나 괜찮은 월급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보너스 정도에 불과했지 난 진심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내 친절함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의 승객으로 인해 하루 종일 행복해하곤 했다. 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고 외국에서 살면서 일을 안 한 지도 4-5년이 되었는데 이번 산티아고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그때의 풋풋하고 설레었던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다니… 나 또한 의아해하면서 꿈의 직장이었던 비행시절과 비슷한 행복을 주는 봉사활동의 뿌듯함에 대해 정말 놀랐다.
중요한 건 모르는 사람과 접점을 찾아간다는 것, 나의 친절함을 알아주시고 교감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하는 짧지만 강력한 교류가 내게 큰 기쁨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역시나 비행할 때도 돈이나 여행이 주가 아니었듯이 나는 친절이라는 내 작은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들을 통해 지금보다 더 착하고, 더 선하게 살고 더 사람을 살피며 살아야겠다는 동기를 얻는 것 같았다. 꽤 긴 시간 잊고 있었던 덕목이기도 했다. 외국 살이를 하며 그냥 나와 내 가족만 외골수처럼 살핀 지 벌써 여러 해 되었을 때 순례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와, 순례자들에게 콤포스텔라를 나눠 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의 기회가 왔던 것이다. 아마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교류와 이유 없는 친절함의 따뜻함과 작은 인정이 내게 필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순례길 위에서, 산티아고에서 의도가 없는 순수한 아이가 되어 서로를 가식 없이 대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참 겸손해지고 감사했던 이 경험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나의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자로서의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