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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신혼부부

Day 6 생장에서 새벽에 여는 빵집

by 몽키거
2025년 5월 17일 토요일
생장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6


Ogitegia : 새벽에 문을 여는 빵집
새벽 6시의 생장

새벽 5시 반 알람을 듣고 일어나 일찌감치 샤워를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나 혼자 쓰는 화장실이 아니기에 빨리 씻고 나와 아일린이 쓰기 편한 시간에 비워두려고 조금 더 서두르지만 아침도 일찍 열고 나름 좋다. 오늘은 생장에서 유일하게 새벽 6시에 여는 빵집인 Ogitegia에 아침 식사로 먹을 크로와상도 살 겸 현장 답사를 나왔다. 많은 순례자분들이 아침 일찍 순례길을 출발하면서 음식 구할 곳들을 자주 물어보기에 구글에서 검색한 빵집 중 새벽에 문을 여는 이곳을 권해주기 전에 직접 여는지 안여는지, 무엇을 파는지 보고 싶어서 오늘 오게 된 것이다. 새벽 6시에 이렇게 생장을 걸어본 건 아마 2년 전 순례길을 시작할 때 이후로 나도 처음이다. 안개가 자욱한 생장은 평소보다 더 비밀스러워 보인다.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유일한 빵집 Ogitegia


순례자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이 빵집은 순례길이 시작되는 포인트 직전에 있는 곳이라 순례자들이 아침 식사와 길 위에서 힘이 돼줄 간식을 사가기에 너무 좋은 위치에 있다. 다행히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고 다른 주민 두어 분이 빵을 사고 계산하시던 참이었다. 종류가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크로와상과 쇼콜라틴(빵오쇼콜라)과 같은 빵이 들은 쇼케이스가 두 개나 있었고, 계산대 뒤로는 다양한 바게트들이 줄을 지어 가득 있으니 진심 버터만 가져갈 수 있다면 왕 같은 식사를 할 수 있겠네 싶었다. 프랑스 버터와 프랑스 바게트는 사랑 그 자체지… 이곳에서 정말 5년간 먹을 빵과 버터를 다 먹고 있는 듯한데 너무 맛있어서 살찔 걱정 하나 안 되는 이 마음 이해가 가려나 몰라. 여하튼 우리 자원봉사자 식구들이 먹을 크로와상을 여러 개 사서 순례자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 눈으로 빵집이 새벽에 문을 여는 걸 확인했으니 오늘부터는 마음 놓고 이곳을 추천해 줘도 되겠다 안심도 되고, 순례자분들께 유용한 정보 하나라도 더 줄 수 있음에 마음이 즐겁다.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해 부엌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조세가 바쁘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갓 나온 크로와상 배달이요!” 하고 들어가니 놀란 눈의 조세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고맙다고 빵을 받아 들어주신다. 곧이어 아이린과 미셸린도 내려오고 크로와상과 함께 우리만의 따뜻한 아침식사 시간을 가진다. 근데 여기 빵 진짜 맛있네! 일단 크로와상 합격! 내일은 여기 식구들이랑 먹을 쇼콜라틴을 사러 한번 가봐야겠다.


연애는 이탈리안이랑 하고 결혼은 독일 남자랑 하라던데

오늘은 의외로 한국분들이 많이 없으셨다 15분 정도로 다른 날에 비해 절반 가량이었네. 그중에서 독일인과 결혼하셔서 현재 독일 거주 중이신 국제커플 부부가 오셨는데 여자분이 한국분이셨다. 내가 농담으로 여자분께 “연애는 이탈리안이랑 하고 결혼은 독일 남자랑 하라는 말이 있는데 맞나요?” 하고 물으니 여자분이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물어보신다. 그러자 독일인 남편분이 고민도 안 하시고 바로 “음식은 이탈리아, 남자는 독일이죠!” 당당하게 말씀해 주셔서 빵 터졌네. 왜 이탈리안이 로맨틱하다고 소문이 나있기에 연애는 이탈리안과 하데 누구한테나 친절하기 때문에 바람도 잘 피운다는 인식이 있는 건 사실, 대신 독일 남자들은 연애할 때는 재미없어도 결혼해서는 한눈도 안 팔고, 내 가족 밖에 모른다고 해서 결혼은 독일인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거든. 특히나 외항사에서 일하면서 크루들 사이에 국제커플인 연인과 부부들이 대부분이었던 지라 이런 이야기를 엄청 많이 듣고 지냈었기에 이탈리안과 결혼한 여자로서 독일남자와 결혼한 여자분께 한번 물어는 보고 싶었단 말이지. 외국에서 일하고 또 외국인과 결혼해서 살아보니 말인데 인종별 특징이 존재하긴 한다. 왜 중국인은 시끄럽고, 일본인은 조용하고, 스페니쉬는 활달하고, 아랍인들은 조금 무례하고 이런 캐릭터들이 대강은 맞긴 하다는 거. 근데 결혼과 관련해선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인종 캐릭터를 넘어서는 좋은 사람을 잘 선택하면 되는 것 같다. 모든 중국인이라고 다 시끄러운 거 아니고 조용한 사람들도 많을뿐더러 모든 스페니쉬라고 다 활달하지 않고 굉장히 진중하고 조용한 사람들도 많이 봐왔었다. 모든지 사람 나름인 것 같다는 게 나의 생각. 이상 바람기 많다는 이탈리아 사람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아줌마의 변론이었습니다.


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를 걷는 크로아티아의 커플
크로아티아에서 온 예쁜 신혼부부, 서로를 위해 고른 조개를 들고 웃는 모습이 닮아있다

크로아티아에서 온 정말 얼굴도, 마음도, 말하는 것까지 예쁜 신혼부부가 순례자 사무실에 왔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영어를 예쁘고 착하게 말하는 여성분은 처음 보는데 꼭 영화배우 에이미 아담스같이 목소리와 톤이 너무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은 분이셨다. 아직 둘 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High school sweetheart로 만나 작년 겨울에 결혼했다고 수줍지만 살짝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셨다. High school sweetheart는 한국어로 치면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 재질 정도 되는데 학창 시절에 첫사랑으로 만나 10년 가까이 교제하다 작년 겨울에 결혼하셨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신혼여행으로 걷자 약속하셨다고 한다. 날씨가 풀리길 기다렸다가 화창한 5월에, 살짝 늦춰졌지만 제대로 된 신혼여행 겸 순례길을 오신 거라고 한다. 누가 먼저 가자고 한 거냐고 물어보니 “저희는 둘이 생각이 굉장히 비슷해서요, 언젠간 같이 걷고 싶다고 말해오다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가보자 결정했어요. 완전 공동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하시는데 서로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달달한 게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커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사랑스러우셨다. 웃는 모습도,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모습까지 하나같이 닮아있는 게 오랜 시간 함께한 이런 커플, 특히나 부부는 어딘가 묘하게 서로를 닮아있다.

이래저래 순례길에 대해서 잘 설명해 드리고, 결혼 정말 축하한다고 내가 조개를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근데 괜찮다면서 “저희 결혼을 축하해 주시고 친절한 설명해 주신 것 만으로로 이미 큰 선물이에요.”라고 하신다. 크… 이 커플 말하는 걸 실제로 들으면 정말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동안을 거절하다가 내가 정말 너무 선물로 주고 싶어서 그러니 서로에게 어울릴 것 같은 조개를 골라 주는 건 어떻겠냐 하니 그제야 “너무 좋은 생각 같아요, 그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서로를 닮아 보이는 조개를 고를게요.”하고 수줍게 웃으신다. 한참을 조개 스탠드 앞에서 서로를 위한 조개를 고르시고, 서로의 가방에 단단하게 메어준 뒤 출발하는 이 커플에게 모든 행복이 함께하길 바라본다. 산티아고로, 또 그 길 이후에도 크로아티아까지 늘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응원해 본다. 크로아티아에서 온 아름다운 신혼부부에게 우리 모두 부엔 까미노!


목소리가 갈랑말랑해도 행복했던 생장의 밤마실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 바빴다. 특히나 오후 2시에 순례자 사무실 문을 열고는 정말 많은 순례자분들이 찾아주셔서 저녁 7시까지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간당간당하던 목소리는 어디론가 가고, 연신 큼큼 소리 내 목을 가담으며 “제 목소리가 이래서 죄송해요,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라고 양해를 구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너무나 다행인 게 기침감기도 아니고, 콧물감기도 아니라서 보기엔 정상이었다는 거. 가뜩이나 목소리도 이상한데 코 훌쩍거리거나 기침까지 한다면 순례자분들도 불편하실 것 같다. 앞으로 한 달간 열심히 걸으셔야 할분들이 아파 보이는 사람한테 설명을 들으면 감기 옮을까 얼마나 불안하겠어. 아마 감기기운이 살짝 있었는데 그건 아주 작은 증상만 있다 지나갔고 갑자기 말 안 하던 사람이 쉴 새 없이 떠드니 성대에 무리가 간 것 같다. 몸 컨디션도 괜찮고 으슬으슬한 것도 첫날 약 먹고 없어진 게 역시 성대였어, 성대. 오늘이 봉사활동 6일 차니 목소리야, 제발 이틀만 더 버텨줘라 속으로 기도를 한다. 다행히 목에 뿌리는 스프레이도 도움이 되는지 목소리가 아주 없어지지는 않고, 쉰소리가 나랑 말랑한 경계선에서 멈춘 것 같다. 목이 무겁고 잠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소리가 나오기라도 하는 게 어디야!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루가 다 지나가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이었네. 아마 주말이 시작되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려고 평일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왔던 것 같다. 일하다보니 날짜 가는줄도 모르고 있었네 그래. 허허 주말에 더 바쁜건 순례자 사무실도 피해갈 수가 없나봐요.

생장의 밤은 고요하다(오후 10시 경)

엄청난 인파에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6일째, 가장 도전적인 하루를 마무리하고 저녁식사를 먹은 뒤(빵에 버터는 빠질 수가 없다) 아이린과 밤산책을 나섰다. 생장의 밤은 정말 고요하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한 뒤 정리하고 나오면 9시가 훌쩍 넘는 늦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내일 순례길 시작을 위해 이른 잠을 청하는 수많은 순례자들로 가득한 도시이기 때문에 더 조용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새벽까지 곳곳의 가로등 불에 환한 서울의 밤과는 참 대조적인 풍경이다. 그래도 한 때 순례자였고, 이곳에서 이른 잠을 청했던 사람으로서 그들의 설레임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상상이 가기에 마음이 아련하다. 나도 얼른 다시 순례자로 돌아가 그 설레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충동도 느껴진다.

순례자 사무실 바로 위에 있는 la Citadelle, 성곽을 따라 올라가니 생장이 발아래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뷰에 ‘왜 여길 지금 왔지?‘ 싶다. 성곽을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가고 내려오는데 30분이 채 안 걸리니 생장에 들리는 순례자분들이라면 꼭 한번 올라가 보시길 추천한다. 해가 쨍하게 뜬 오후에 다시 한번 찾아와 맑은 날씨의 생장을 보러 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해가 거진 넘어가는 늦은 저녁에도 이렇게 예쁜데 아침의 생장, 제대로 된 노을의 생장은 또 얼마나 예쁠까? 새로운 뷰에서 바라본, 마음에 쏙 드는 생장의 모습에 정신없이 바빴던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오후, 칼칼하게 잠긴 목은 이 순간 바로 잊어버렸다. 오늘도 행복한 순례자분들과의 만남, 따뜻한 자원봉사자 가족들 그리고 아름다운 생장에 감사하며 벅찬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해가 지고 있는 성곽에서 바라보는 생장, 생장은 해가 늦게 진다(오후 9시 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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