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눈물바다가 된 우리의 봉사활동 마지막 날
2025년 5월 19일 월요일
생장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8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우리의 마지막 근무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마지막 날이다. 우리 뒤를 이어 봉사를 할 새 자원봉사자분들을 위해 방을 비워 놓아야 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짐을 싸고 방을 깨끗이 비운 뒤 1층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오전 근무를 하는 동안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이 도착해 다음 봉사자분들을 위해 이곳저곳 분주히 청소를 해주셨고 그렇게 우리의 월요일에서 월요일, 8일간의 생활이 정리되며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이 다음 사람들을 위해 깨끗이 다시 세팅되었다.
오늘 오전 시간에는 일곱분의 한국인 순례자가 찾아오셨는데 내게 마지막 날이라 조금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해 드려야지 유난히 신경이 쓰였던 날이기도 했다. 가방에 조개도 메어드리고, 여유 있는 시간대에는 순례자 사무실 앞에서 생장을 배경으로 한 배낭 멘 사진도 찍어드리고 (내가 이런 사진을 못 남겨서 많이 아쉬웠기 때문에) 담소도 많이 나눴다. 마지막까지도 한국인 봉사자로서 한국인 순례자분들을 만나는 건 참 가슴 뛰고 마음 가는 그런 설레는 만남인지라 끝까지 참 즐거웠다.
11시쯤 되었을 때 순례자 사무실에 오늘부터 봉사를 이어가실 분들이 한분, 두 분 도착하기 시작하셨다. 이곳의 봉사활동자들은 새로운 뉴커머보다는 그전에 경험했던 사람들이 더 많기에 이 분들도 지금 내가 속한 팀의 조세, 버나드, 미셸린, 장 베누와처럼 예전에 함께 봉사를 했었고, 다시 다 같이 이번 주에 봉사하기로 약속하고 다시 모인 팀이어서 이미 서로 알고 친한 분들인 건 물론, 일주일 동안 드실 와인과 직접 담은 증류주들을 한가득 가져오셨다. 유일하게 뉴커머로 새로 조인한 캐시만 새 멤버에 홍일점이라 봉사자 남녀 성별도 정말 랜덤인데 내가 운이 좋았구나 싶었다. 나는 남자들만 가득 차있는 곳에서 혼자 여자라면 정말 불편했을 것 같거든. 캐시가 조금 걱정되어 식사할 때 캐시한테 “유일한 여자라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네요”라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방 셰어할 생각하고 왔는데 여자 하나라 혼자 방 쓸 테니 오히려 더 잘 된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긍정적인 모습에 걱정은 바로 사라졌다. 게다가 이탈리아계 캐네디언이기 때문에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에 능통할뿐더러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스페인어까지 완벽 구사하는 능력자라 와 부럽기만 하다.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능력들이 필요한데 외국 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언어는 정말 가장 특별하고 강력한 힘이다. 나를 표현하는데 중요한 것뿐만 아니라 남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필요하기에 문화와 사람들을 깊게 이해하고 싶을 때 좋은 언어 능력은 언제나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 돌아가서 이탈리아어 공부 좀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할 시간
드디어 12시 정오가 되고, 점심시간을 위해 순례자 사무실의 문이 닫히며 우리의 자원봉사 공식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생장 피에드 포르 순례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모니크, 장 루이스와 함께 기존의 자원봉사자 팀과 새로 도착한 자원봉사자 팀 모두가 함께하는 점심을 마지막으로 우린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참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인사를 하고 헤어질 찰나 아이린이 우리 모두에게 줄 것이 있다며 카드를 한 장씩 나눠주는데 뭐야 뭐야 너무 따뜻한 선물이잖아. 늘 조용한 아이린은 남의 이야기도 참 잘 들어주고 평온한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감동을 줄 줄도 아는 멋진 아줌마였다. 다 같이 안고,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참자 참자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조세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폰으로 번역된 글을 나에게 보여주시는데 빵… 여기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딸이 셋 있고, 손녀와 증손녀도 있는데, 너까지 포함하면 딸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야.
기쁜 마음으로 널 내 딸로 받아들일 거야.
늘 웃어주시고, 내가 아프면 염려해 주시고, 멤버들 안에서도 남 이야기 들어주시기만하지 막 나서서 이야기를 주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 아닌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주셨다니… 가족으로 생각하고 싶다는,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엉엉 울기 시작하니 조세가 안아주었다. 항상 연락하기로 하자고, 이따가 우리 만나서 저녁도 같이 먹자고 잊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조세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나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쓰기에 소통은 보통 내가 눈치껏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방법 밖에 없었고 우리 사이에 큰 불편은 없었는데 같이 지낸 일주일 동안 지금 처음으로 번역기를 돌려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저렇게 보여주시는데 어떻게 안 울 수가 있겠어.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따뜻한데 그게 또 고스란히 전해져서 너무 행복해서 울었던 것 같다.
새로운 팀은 내가 왜 우나 싶었을 거야. 5분 전까지 야무지게 밥이랑 와인 다 챙겨 먹었는데 다 큰 어른 하나가 갑자기 사무실 한가운데서 울고 있다니. 그런데 이런 풍경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게 바로 생장 순례자 사무실의 매력일 거다. 각자의 사연과 인생의 짐들을 들고 세계 각지에서 이곳에 도착해 울고, 웃고, 기쁨과 슬픔, 감격과 설레임 등 모두 다 표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내가 있는 순례자 사무실이 아닐까 싶어진다. 이 마법은 순례자들은 물론 한 때 순례자였던 우리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 행복과 감사의 눈물이 어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 봉사자팀에게 파이팅 해달라고 인사를 전하고 우리는 그렇게 눈물을 닦으며 생장 순례자 사무실을 떠나게 되었다.
감격의 오리손 산장 비 오는 날 오리손 산장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다니
각자의 기차, 버스 그리고 순례길 일정 때문에 나와 조세, 미셸린은 생장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고 아이린은 지금 바로 순례길을 떠나게 되었다. 순례자 사무실 근처 각자의 알베르게에 짐만 놓은 뒤 바로 순례길을 떠나는 아이린을 초입구까지 함께 배웅해 주기로 했다. 이곳 생장에 집이 있는 장 베누와까지 우리 다섯 명이서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시간이다. 여러 번의 순례길 경험이 있는 아이린은 오늘 보르다까지 걸어간다고 했고,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생장은 그만의 운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초입구까지 함께 걸어간 뒤 돌아가며 아이린을 꼭 안아주고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뒤에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꼭 왼쪽으로 가셔야 해요! “, ”나폴레옹 루트로 가세요, 발카를로스는 차들이 많아서 안돼요! “ 라며 평소에 우리가 순례자분들께 안내하는 내용들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계속 걸어가며 높게 손들며 인사하는 아이린의 뒷모습이 웃고 있는 것만 같아 모두에게 즐거운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자식 작별인사가 되었다.
아이린을 떠나보내고 장 베누와가 차를 타고 오리손 산장에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오자고 제안해 남은 4명이 오리손을 향했다. 아, 오리손이라니. 1년 8개월 전 순례길 첫날에 걷기 시작하고 처음 2시간 동안 ‘이렇게 힘든 게 맞나?‘하며 걷다가 도착했던 바로 그 산장. 내가 지금 그곳으로 다시 가다니 기분이 묘하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래 갑자기 비가 정말 미친 듯이 쏟아진다. 내가 생장에 있었던 일주일 동안 만나본 적이 없던 비고, 심지어 순례길을 걸었던 31일 동안에도 겨우 하루나 이틀 있었던 아주 보기 힘들었던 되찬 비에 운전 또한 신경 써서 조심해야 할 정도로 시야를 가리는 많은 양의 비였다. 가는 길에 아이린을 만나 잠시 멈춰 파이팅을 전했는데 시작할 때는 안 입었던 커다란 우비를 쓴 그녀를 통해 비 내리는 정도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15분 정도 조심조심 운전해 도착한 오리손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때는 여유가 없었고 지금은 여유가 있다 정도랄까. 안으로 들어가니 순례자들이 가득한 게 여기저기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바로 어제 크레덴셜, 순례자 여권을 발급해 드린 커플, 가족, 개개인들이다. 우리 바로 옆테이블에는 어제 정말 재밌게 이야기를 나눴던 미국에서 온 어머니와 아들 딸 세분이 계셨는데 너무 반갑다며 같이 사진 찍자고 해주셔서 우리 자원봉사자 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는 등 훈훈한 분위기에 우리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4명이 받았던 순례자들이 각기 다르기에 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고, 우리끼리 커피를 마시며 테이블 건너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는 순례자분들이 멈춰 서서 인사를 건네주시고, 언뜻 보면 오리손 산장의 카페 전체가 어제의 순례자 사무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인 게 참 재밌었다.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안 떠올릴 수가 없었는데 순례길을 시작하고 미지의 길에 대한(나한테는 미지의 길) 약간의 두려움과 의외로 힘들었던 첫 시작의 느낌, 아주 조금의 조급함까지 갖고 이곳을 지나갔던 게 바로 어제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이때 밖에 쏟아지기 시작한 엄청난 양의 비에 여러 순례자들이 쉴 새 없이 비를 피해 들어오는데 어우 이거 장화가 아니라면 그 어떤 등산화도 흠뻑 적실 무거운 양에 순례자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행도 순례길도 날씨가 다 하는 게 사실. 순례길 중 이렇게 비가 흠뻑 내리는 날은 정말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곤 했는데 그것도 첫날에 이런 비라니… 순례자들의 순례길 여정에 대한 사기만 꺽지 말아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장 베누와가 어제 받았다던 영국의 십대 청년 세 명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 공손 한듯한 말투지만 매우 화난 어조로 오늘 론세스바예스까지 갔는데 숙소가 없다면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냐며 물어왔다. 그리고 론세스바예스 넘어서라면 숙소를 확실히 구할 수 있을지 물어보는데 아… 이 친구들이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에 얼마나 당황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의 여유로운 오리손에서의 커피 한잔은 거센 비와 함께 순례자 사무실 애프터 서비스 고객 상담 만족 센터가 되어버렸다. 이런저런 순례자들과 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오리손 산장을 나선다. 제발 비가 멈추길, 첫날 순례자들을 너무 시험에 들게 하지 않길 그저 바라고 또 바라지만 무심한 하늘은 우리가 생장에 도착해서도 비를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을 위해 올리는 촛불
우리의 근무도 끝났고, 점심도 먹었고, 아일린은 떠났고, 오리손 산장에서 커피까지 했겠다 생장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쉴 시간이었다. 저녁 6시 반에 레스토랑 Café Ttipia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알베르게, 집에서 쉬다 만나기로 했다. 하룻밤만 자고 갈 거라 필요한 것만 조그맣게 짐을 풀어놓고 아까 받은 아이린의 카드를 열어보았다. 스윗한 글과 함께 카드도 나에게 딱 어울리는 게 고심해서 카드를 고르는 아이린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카드는 바스크 지역의 명물인 양을 캐릭터로 한 건데 양이 “빵 오 쇼콜라? 쇼콜라틴!” 의 뉘앙스로 빵 오 쇼콜라는 말 그대로 빵 그리고 초콜릿이고, 이곳 바스크에서는 쇼콜라틴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게 우리끼리 인사이드 조크였던 게 내가 크로와상을 아침으로 사 온 날 모두에게 “내일은 빵 오 쇼콜라 사 올게.” 했다가 미셸린이 파리와 같은 북부에서나 빵 오 쇼콜라라고 하지 여기 남부에서는 무조건 쇼콜라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참 교육을 해줬었거든. 아이린이 그걸 기억하고 재치 있게도 내 카드로 바로 이 내용을 담은 걸 골라 써준 것이니 너무 귀엽잖아! 아일린이 카드에 써 준 내용처럼 우리 꼭 내년 이맘때 다시 다 같이 만나서 같이 봉사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오래간만에 느긋한 오후다.
푹 쉬다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와 조세, 미셸린, 장 베누와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Café Ttipia에 모였다. 처음 시킨 샹그리아로는 비 오는 날 열심히 순례길을 걸어낸 아이린을 위해 잔을 기울였고, 두 번째 술로 고른 와인으로는 우리보다 먼저 떠나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던 버나드를 위해 잔을 기울였다.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제 장 베누와랑 조세가 시켜 정말 맛있어 보였던 구운 오징어 샐러드를 시켰는데 와… 대박… 나 이렇게 맛있는 해산물 샐러드 처음이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에 정말 강력 추천하고 싶다. 얼마나 맛있냐면 어제 이 구운 오징어 샐러드를 점심으로 먹었던 장 베누와랑 호세 두 분 다 오늘 저녁으로 이 샐러드를 다시 주문하셨을 정도. 유럽사람들 대부분 같은 음식 연달아 먹지 않는데 말이야 얼마나 맛있으면 어제 먹고 또 시키셨겠어. 이게 일단 드레싱이 범벅되어있지 않고 오일 조금에 살짝의 소금 간만 되어있는 게 맛이 고급스러운 데다 오징어 양이 아주 많고 야채들이 신선해 너무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해산물 안 즐기는 내가 ‘이거 뭐지? 왜 이렇게 맛있지?’ 생각하며 먹은 정말 몇 손꼽게 맛있는 샐러드였고 양도 많아 끝에 몇 입 남겼을 정도로 푸짐했다. 무엇보다 작은 오징어들이 기가 막히게 탱글하단 말이야. 너무 질기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게 진짜 잘 익혀서 감탄했으니 이곳에 가게 된다면 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하니 꼭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한참을 식사 중에 생장 순례자 사무실을 관리하는 모니크가 문자를 보냈다며 장 베누와가 소식을 전해줬는데 내용인 즉 이번 주 우리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기부와 기념품 판매가 이뤄졌다며 박수를 보낸다는 거였다. 장 베누와는 “우리 모두가 정말 한마음으로 친절하게 순례자들을 대했지. 우리의 친절이 순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생각해. 그러니 조개를 고르시면서도 선뜻 큰 금액을 기부해 주시고, 친절함은 또 다른 친절함을 낳을 수밖에 없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정말 우리 모두가 아주 즐겁게 봉사활동을 했고 모든 순례자들과 웃고, 울고, 이해해 가며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신기하게도 중간에 먼저 떠난 버나드까지 포함해 6명 모두가 캐릭터들이 조금씩 다른데도 순례자를 대하는 태도나 결에 대해서는 꽤 비슷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누구 하나 시니컬한 사람 없고, 권위적이거나 편협하지 않고 모두가 꾀나 둥글둥글했던 거에 감사할 뿐이다.
식사를 하고 장 베누아는 집으로, 나와 조세와 미셸린 셋은 우리들의 알베르게가 위치한 순례자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무거웠던 비도 많이 잦아들었고, 우리는 술과 많은 대화와 뿌듯했던 8일간의 동고동락했던 기억과 함께 프랑스 생장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언덕이 시작하는 마을 가운데 자리한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자 조세가 제스처로 이곳에 잠깐 들어가자며 평소와 다르게 성큼성큼 앞장을 서서 들어가신다. 성당의 가장 앞쪽까지 들어간 우리는 봉헌촛대들을 마주했는데 조세가 헌금을 하고 새 초를 하나 가져오더니 “새로운 가족을 위해서(Pour une nouvelle famille)“라고 말하며 다 함께 불을 밝히자고 하셨다. 셋이 긴 촛대를 잡고 같이 불을 붙이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우리의 초를 세워 놓았다. 서로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우리 셋 모두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다 같이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나는 ‘봉사를 위해 찾은 이곳에서 이렇게 사랑 많은 어른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큰 사랑을 베풀고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를 올렸다. 서로 안아주고 셋이 손을 꼭 붙잡고 알베르게 앞까지 천천히 걸어 나가는데 마음이 따뜻함으로 벅찼다. 아무 말 안 해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이 작은 인연이 준 깊은 행복에 그저 감사한 마음만이 넘쳤다.
내 나이 마흔 살,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줘야만 할 것 같은 나이에 이곳 생장에서 다정한 프랑스인, 아이리쉬 어른들을 만났고, 생각지도 못하게 막내로, 딸 같은 아이로 사랑을 받은 그 기분이 참 묘하게 생소하면서도 따뜻하고 평온했다. 생장에서의 마지막 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즐거웠던 자원봉사 경험과 함께 그렇게 나는 마흔 살에 프랑스에서 새로운 프랑스 아빠와 엄마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