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마음을 울리는 순례자들
2025년 5월 18일 일요일
생장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7
미국인 투어 그룹의 재간
오늘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투어 그룹들이 전 세계에서 도착했다. 혹시 아시나요, 순례자 사무실에서 길을 안 걷는 투어 그룹 멤버들에게는 순례자 여권을 발급 안 해드리는 게 원칙이라는 걸 말이예요. 다들 아시듯이 순례길 자체가 발로 걷는 것, 자전거를 타는 것, 말을 타는 것 이 세 가지의 수단만을 인정한다. 그런데 가끔씩 며칠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차로 이동을 하시면서 중간중간 큰 도시에 쉬시며 관광을 하시고, 세요(스탬프, 도장)를 모으셔서 산티아고에 도착해 콤포스텔라를 받으시려는 분들이 계시다. 실제로 내가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하루에 한 팀 정도는 이렇게 시도하시는 분들이 도착하는데 아주 영리하게 단체로 안 오고 두 분, 세 분 짝을 지어서 시간 간격을 두고 사무실을 방문해 평범한 순례자처럼 보이려는 노력까지 하신단 말이지. 그런데 도장을 확인하는 입장에서 이상하게 날짜가 짧고, 도장수도 부족하면 “자동차로 이동 많이 하셨나 봐요.” 은근히 떠보며 “투어 그룹과 오신 거죠?” 라며 그분들 입에서 확답을 받아내는 스킬이 늘어가게 된다. 대부분 착하셔서 끝까지 거짓말을 하시는 분들은 없고 인정하시는데 콤포스텔라는 마지막 100km를 걸어내시는 분들께만 드리는 거라고 안내해 드리면 어차피 안 되는 걸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이기에 쿨하게 알았다고 돌아가시곤 했다. 그렇게 콤포스텔라를 받는다 한 듯 본인이 안 걸으신 걸 아실 텐데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도 꼭 콤포스텔라를 발급받고 싶어 하시더라고. 종교적인 이유와 상징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제대로 걸으셔야 의미가 있을 텐데 말이야. 뭐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들만의 의미는 모르는 거니까.
그런데 오늘 하루 종일 이런 미국에서 온 투어그룹 참가자 분들이 시간 간격을 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도착하시는 거다. 산티아고에서 다른 자원봉사자분께 들은 건데 투어를 주체하는 업체와 가이드가 따로따로 들어가고 이렇게 말해라 저렇게 말하라고 코칭까지 해주신다 한다. 산티아고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시작점인 생장에서 투어 그룹을 마주하게 되니 크레덴셜을 발급하는 입장에서 살짝 긴장되었다. 내가 안된다고 얼마나 단호해야 하는지 곤란해지더라고. 이런 분들의 특징은 일단 커다란 배낭이 없다. 게다가 이미 걷는 복장도 아니고 딱 봐도 관광객 차림에 신발들도 일반화니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순례길을 걸을 사람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재밌는 건 하나같이 말씀이 매우 많으셔. 묻지도 않았는데 “아~ 우리는 일단 팜플로나로 움직인 다음에 거기서부터 걸을 생각이야,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말이지.”, 또는 ”천천히 한 40일을 걸을 생각이야, 서둘러서 좋을 거 하나 없지. 안 그래요? “ 등 과도한 스몰토크를 아주 캐주얼하게 하시려는데 긴장하고 계신 모습이 보인단 말이지. 그럼 나는 하나둘씩 질문을 해 좁혀나가는 수밖에 없다. ”팜플로나 다음은 어느 도시로 가시나요? “, “내일 피레네는 안 걸으세요?”, “산티아고까지 몇 박으로 걸으신다고요?” 그럼 대답이 금세 뒤죽박죽 된다.
“음… 주비리인가? 그곳으로 가요.”, “주비리는 팜플로나 전인데요 투어 그룹과 오신 거 맞으시죠?”
끝없는 밀당이야 계속할 수도 있지만 아직 시작점이라 이분들도 파이팅이 넘치셔서 포기하지 않으신다. 뭐 이렇게 질기게 물어보나 싶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프랑스길의 시작인 순례자 사무실이라 매일 몇 명의 순례자가 길을 시작하는지 일일통계를 내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해야 하는 거다. 안 그러면 순례자가 아닌 사람들이 통계에 포함되는 거니 가능한 자원봉사자 선에서 분별해야 한다. 그래도 본인이 계속 자기는 진짜 걷는다고 하는데 안주기도 뭐 하고, 산티아고에서 콤포스텔라를 받을 때 분명 걸러지리라 믿고 결국에는 드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미국 투어 그룹분들이 한 열댓 분 오신 것 같은데 순례자 사무실에는 두 분, 세분 다 따로 오셨으면서 저녁에 그룹으로 음식이랑 기념품 쇼핑 한가득 가지고 올라오다 다 같아 마주쳤지 뭐야. 만일 가톨릭이시라면 왜 산티아고 방문 자체로 성지 순례 의미가 충분한데 안 걸으면서도 여권을 받고, 콤포스텔라를 받으려고 하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좀 알려주세요.
색다른 바스크 음식으로 점심 먹기
신나는 점심시간, 오늘 마지막으로 다 함께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일 오전이면 우리의 자원봉사 근무가 끝나고 이어서 일할 다른 팀의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해 함께 점심을 먹을거라 오늘 점심, 오늘 저녁이 우리끼리 하는 마지막 식사다. 이곳 생장에서 살고 있는 장베누아가 추천하는 레스토랑 Café Ttipia에 왔는데 와 사람들이 벌써 가득 차있네. 장베누아의 말로는 이곳이 음식 종류도 다양한데 가격도 합리적이고 맛있는 바스크 스타일 요리도 많다고 본인은 혼자일 때는 늘 이곳에 온다고 했다.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와인이 한병 도착했다. 응? 우리 와인 주문 아직 안 했는데? 알고 보니 먼저 떠난 자원봉사자 버나드가 우리의 마지막 날 함께 마시라고 와인을 미리 계산해 두고 간 거였다. 화창한 정오에 아주 잘 어울리는 프루티 한 화이트와인이었는데 한잔씩 들고 다 함께 “버나드를 위하여”를 외치며 비디오를 찍어 버나드에게 보냈다. 즐거운 점심되고,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같이 있다는 버나드의 답이 바로 왔다. 이곳에서의 자원봉사자들은 정말 진한 우정으로 서로를 챙기는 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만큼이나 동지애가 생기게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동지애도 우정도 다 사람 나름이지만 내가 있는 5월의 한주는 정말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애정 많고 사랑스러운 분들이라 감사한 마음에 가끔 어느 순간 뭉클해지곤 한다.
오늘 내가 선택한 메뉴는 Boudin Maison Grillé라는 프랑스식 수제 소시지에 이곳 바스크 지방의 피망과 고추가 들어가 매콤한 야채볶음 ‘피퍼라드’가 함께 나오는 음식이다. 수제 소시지는 역시 유럽이야! 매콤한 야채볶음과 함께 먹으니 느끼함 하나 없이 개운한 게 진짜 바스크 사람들 입맛이 약간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원봉사자 식구들이 시킨 다양한 해산물 샐러드, 해산물 파스타들도 보기에 양도 많고 모두가 여기 음식은 진짜 맛있다고 극찬을 했기에 추천하는 식당이다. 가는 날이 다 되어 이곳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게 살짝 아쉬울 정도였다니까. 식사를 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순례자들에 관해 이야기로 귀결되는데 오늘의 메인은 단연 시간차를 두고 오셨던 미국 투어 그룹분들이었지. 그 외에도 다른 흥미 있는 사연의 순례자들, 그분들이 전해주신 이야기들로 우리의 식탁은 늘 순례길 바이브로 충만하니 언제 또 이렇게 순례길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을까 싶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디저트에 커피까지 시켜 우리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이곳 Café Ttipia는 디저트도 정말 맛있으니 꼭꼭 디저트까지 챙겨드시길! 디저트 종류도 다양한데 난 당연히 프랑스니까 크렘브륄레를 시켰지. 원래 크렘브륄레를 정말 좋아해서 꾀나 많이 먹어봤다고 자부하는데 여기 거진 내 인생 크렘브륄레 탑 3에 든다! 바닐라맛도 시럽이 아닌 바닐라 빈을 썼고 양도 넉넉한 게 진짜 맛있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마음에 쏙 드는 프랑스음식을 먹으며 오후에 일할 힘을 제대로 충전한, 마음도 배도 꽉 찬 즐거운 점심이었다.
인도인 매튜의 순례길은 계속된다
오후 늦은 시간에 중국계 인도인인 매튜라는 분이 사무실에 오셨다. 얼핏 보면 한국인 같아서 순례자 여권을 작성할 때 인디언이라고 적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물어봤는데 부모님이 다 중국계이시고 캘커타에 사신다고 했다. 72세이신 매튜는 올해 아내분을 병으로 먼저 보내시고 두 번째 순례길을 찾아왔다고 했다. 첫 번째 순례길은 아내분이 아프셨을 때 제발 낫기를 바라며 걸은 포르투길이셨다고 한다. 이번 길은 아내분을 오랫동안 기리며 걷고 싶어 긴 프랑스길을 찾으셨다길래 헌정하는 비카리에 프로(Vicarie Pro)를 산티아고에서 꼭 받으시라고 알려드렸다. 정말 많이 슬퍼 보이시는 분이라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신 것 같았는데 “지난번 포르투길은 어떠셨나요?” 이 작은 물음에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매튜 아저씨는 원래 욱하는 성격에 거친 부분도 없지 않으셨다고 한다. 사랑하던 아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포르투길을 걸으셨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성당에 앉으니 눈물 밖에 안나셨다한다. 산티아고 성인 동상을 뒤에서 만질 수 있는 줄을 기다리고, 성인 산티아고의 어깨를 쓰다듬고 나오는데 경비를 서고 계시던 분이 자신을 보더니 “잠깐만, 가서 다시 안고 가셔도 돼요.”라고 그 많은 사람 중에 매튜에게만 성인의 동상을 뒤에서 안도록 허가를 해주었다고 한다. 아마 매튜의 감정이 그분에게도 느껴졌나 보다. 그리고는 다시 성당에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수녀님이 다가오시더니 말없이 자신을 안아주고 가셨다고 한다. 모든 게 왜 일어난 건지 모르겠는데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들이신가 보다 하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그동안 성당에 나가길 게을러한 본인의 모습을 아주 많이 반성했다고 한다. 그렇게 산티아고 대성당을 나섰는데 그 순간 어깨에서 무거운 것들이 훅 덜어진 느낌이 들었고, 원래 삼일 정도 더 머무르기로 생각했던 산티아고를 ‘이제 됐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 떠날 수 있겠다.’ 싶어 바로 그 길로 인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본인은 정말 독실한 신자로 다시 태어났고, 순례길 이후에 단 한 번도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욱하는 성격이 나온 적이 없다고 하신다.
지갑 속에 간직하신 돌아가신 아내분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이신 매튜 아저씨를 보며 나도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신 분들의 마음은 진심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슬픔이 깊고 공허하게 전해져 온다. 아저씨는 긴 이야기를 마치고 나가기 전에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자리에서 돌아서 나가 매튜 아저씨를 안아주고, 아내분이 늘 함께하실 거라고 천천히 평화로운 길을 걸으시길 바란다고 인사드렸다. 어쩌면 사람들은 힘들 때 그저 누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 같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 내가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그 시간에서 의미를 찾으시는 듯하다.
순례길은 누구에게는 이렇게 절박한 기도를 위한 길이기도 하고, 그 길 위에서 위로받고, 내가 변하는 기적의 길이 되기도 하는 신비한 길이구나를 그를 통해 보았다. 아무쪼록 정말 슬퍼 보였던 매튜가 길 위에서 잃어버린 웃음도 되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다.
재외국인의 희로애락
생장 순례자 사무실의 저녁, 오늘은 6시를 넘으며 한산한 게 정말 바빴던 토요일과는 사뭇 대조된다. 너무 바쁘지 않은 덕에 미국에서 간호사를 하신다는 한국 순례자분이 찾아오셨을 때는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참 좋았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도시중 하나인 뉴욕에서 간호사를 하고 계시다는 이분과 외국생활과 사람들에 대해 재외국인으로서 겪는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들을 나누며 얼마나 재밌었는지, 같이 웃다가 나중에는 눈물까지 찡한 대화가 돼버렸지 뭐야. 외국에서 산다는 결심을 하고 내 나라를 떠나 밖에 나와있는 건 겹겹이 묘한 맛을 담은 사탕을 먹는 것과 같다. 어쩔 때는 자유와 새로움에 달달하다가도 어느 순간 평생 외국인 취급을 받을 곳에 내가 있구나 하는 씁쓸한 맛도 느껴지고, 믿었던 사람과 일에 대한 기대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잘 풀렸다가 꼬이기도하며 그 업다운에 신맛까지도 나는 복잡한 사탕. 외국에서 목표를 향해 한 계단 씩 올라갈 때는 입안에 있는 사탕이 톡톡 터지는 듯한 흥분도 느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큼함까지, 정말 이보다 더 복잡할 수가 없는 사탕을 뱉지도 못하고 다음에 어떤 맛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걸 ‘내가 내린 결정’이란 책임감하나로 계속 맛을 보는 수밖에 없다. 좋을 때도 많지만 그 느낌과 경험이 늘 평탄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라 그저 내 노력으로 이 사탕의 맛을 더 좋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으로 한 발씩 꿋꿋하게 외국에서의 생활을 살아나가는 이야기가 같은 재외국인으로서 너무 공감이 많이 갔다.
너무나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힘들었던 일을 잠시 내려두고 무언가라도 찾았으면 좋겠다 해서 떠나신다는 이분의 순례길. 나 이 마음 너무 잘 알아. 누구나 내가 뭘 원하는지, 지금 이 순간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가끔 이렇게 헤매도 된다고, 아직 젊다고 정말 소리쳐 말씀드리고 싶었다. 이번 순례길이 이 젊은 간호사분의 인생에 새로운 매듭을 짓고 또 다른 도전의 문을 열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이유 없는 확신이 들어 마구마구 할 수 있다, 분명 좋은 길이 되실 거라 응원을 해드렸다. 눈물을 닦으시고 웃으며 나가시는 이분을 보며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한 것처럼 ‘밖에서 식사라도 같이할걸…‘하는 아쉬움이 들었는데 생장 순례자 사무실은 근무시간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라 그럴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게다가 산티아고는 종착지라 순례자분들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 생장은 다음날 순례길을 시작해야 하는 신체적, 시간적 제약이 크기 때문에 선뜩 저녁 8시에 끝나고 밥 사주고 싶다는 말도 못 하겠더라. 같은 재외국인에 ENFP언니로서 뭔가 따뜻한 밥 한 끼 먹여 출발시키고 싶은 그런 공감되는 사연의 순례자분이셨어. 그분이 가시고 조금 뒤에 내 팔에 차고 있던 성 야고보 십자가 팔찌가 기억났다. 산티아고에서 구입했던 건데 ‘아, 이걸 드릴걸.’ 이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이 팔찌를 사고 나서 보관만 하고 착용하지 않았는데 이번 자원봉사를 오면서 생각나서 하고 나왔단말이지. 근데 이 분이 가시고 나서 뭔가 이분에게 팔찌를 드리려고 여기까지 하고 왔나 보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게 참 묘했단 말이지. 일주일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처음 드는 느낌이었다. 결국 팔찌는 못 전해줬지만 재외국민이 외국에서 단지 일하고 생활하는 걸 넘어 얼마나 강단 있게 굳은 마음을 갖고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지 잘 알기에 순례길도 잘 걸어내실 거라고 믿는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라니까 분명 외국 생활을 이어나갈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시는 길이 되시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