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랑스 생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날

마드리드 가는 기차 안에서 울게 된 사연

by 몽키거
2025년 5월 20일 화요일
자원봉사를 마치고 생장을 떠나는 날


생장에서 마지막 아침 보내기
벌써 아침 근무로 바쁜 순례자 사무실의 풍경과 요새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침 생장의 모습


오늘은 근무를 하는 날도 아니건만 지난 한 주의 습관처럼 새벽에 눈이 떠졌다. 어차피 이곳 생장에서는 모든 알베르게의 체크아웃이 이른 아침이기에 지체 없이 씻고 내 짐을 싼 뒤 나와버렸다. 바로 순례자 사무실 옆에 있는 알베르게였기에 조심스럽게 순례자 사무실에 들어가 어제 만난 자원봉사자분들께 아침 인사를 건네고 내 짐을 사무실 안쪽 연결된 공간에 맡겨 놓고 하루를 시작해 본다.

아쉽게도 오늘도 날씨가 흐리네. 그래도 어제처럼 비 안오는게 어디야. 제일 먼저 오전에 다시 와보고 싶었던 La Citadelle 즉 요새를 다시 한번 올라가 보았다. 이곳은 Navarre 왕국의 성채가 있던 자리로, 프랑스·스페인을 오가는 전략 요충지였고, 스페인과 프랑스가 서로 소유권을 두고 점령과 탈환을 반복한 곳이라 튼튼한 방어시설이 필요했었다고 한다. 요새 위의 건물들은 지금은 실제로 학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전망대에서 생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 하나로도 충분히 올라갈 가치가 있다. 날씨가 조금만 더 화창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흐린날의 생장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이것 또한 오늘 내게 허락된 뷰인가 보다 마음을 비우고 마지막 생장을 눈 안에 가득 담기 위해 잠시 서서 시간을 보내본다.


에이라베리(Eyheraberry)길을 걸으면 니브강을 따라 조용한 산책을 할 수 있다

천천히 내려와 이번에는 노트르담 성당과 노트르담 문을 지나자마자 바로 왼쪽에 있는 에이라베리(Eyheraberry) 길로 산책을 해봤다. 늘 다리 위에 서서 멀리 사진 찍기 바빴지 이렇게 여유 있게 이 길을 걸을 날이 오다니 신기할 뿐이다. 나무와 풀이 웅성한 조용한 산책길 옆으로는 니브강(Nive River)이 천천히 흐르고 어디선가 다양한 새소리가 들리는 게 순식간에 도시와 단절된 시골에 와있는 느낌이 물씬 드는 게 참 좋다. 작은 다리들을 지나 걷다가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몸을 돌려 돌라오는데 어? 저기 다리 위를 지나가는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보인다.

“조세!!”

우리 프랑스 아빠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달려가니 조세가 아주 환하게 웃으며 “너를 마주쳤으면 하고 있던 참이었어!” 다며 나를 반겨준다. 아침으로 먹을 바게트를 사서 돌아가는 길이었다는 조세와 신나게 알베르게까지 함께 했다. 그곳에서 프랑스 엄마 미셸린에게 아침 인사도 하고 잠은 잘 주무셨는지, 오늘 몇 시쯤에 기차가 떠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가기 전에 얼굴 다시 보기로 하고 나와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으러 갔다.


내 인생 까눌레를 파는 Maison Berthold

흠… 프랑스 생장에서 마지막 아침으로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할까 생각하다가 나의 사랑 까눌레를 먹기로 정하고 Maison Berthold에 갔다. 여기 까눌레는 정말 내 인생 까눌레일 뿐만 아니라 이제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에 돌아가면 다신 먹을 수 없기에 꼭 마지막 날 다시 충전을 해줘야 덜 아쉬울 것 같았다. 일단 기차 안에서 먹을 큰 사이즈의 오리지널 까눌레를 하나 사두고 조세와 미셸린의 여정에 간식하시라고 그분들 것도 사서 따로 포장해 두었다. 그리고 아침으로 바로 먹을 미니 사이즈들의 까눌레를 이것저것 골라 담는데 아 행복해. 여기는 실험적인 맛도 다양해서 고르는 게 정말 재밌단 말이지. 솔티드 버터 캐러멜, 브리랑 무화과, 바나나랑 럼, 초리조와 피망, 살구맛 등 단 것, 짭짤한 세이버리 맛 등 조합이 진짜 신선해서 이것저것 하나씩 다 담아봤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오자마자 브리랑 무화과를 하나 집어 먹었는데 엄마야… 나 순간 되돌아가야 하나 했잖아. 먹자마자 ‘바로 이거야! 어떡하지 나 하나만 샀는데 다시 돌아가서 더 사야 하나?‘ 싶었다니까. 여러 개 샀으니 흥분하지 말자, 다른 것들도 맛있을 수 있을 거야 하고 길을 걸으며 하나 둘 먹어보는데 가장 기대했던 바나나 럼도, 다른 맛들도 다 맛은 있는데 브리 무화과처럼 우와는 아니었다. 브리랑 무화과는 단짠의 조합이 끝내 준다고나 할까. 짭조름한 치즈의 맛에 달달한 게 치고 들어오는 맛이 이건 식사빵인지, 디저트 빵인지 애매하면서 입맛을 돋게 하는 군침 도는 맛이었다. 결국 샀던 미니 사이즈 까눌레를 다 먹고 돌아가서 브리와 무화과 맛만 3개 더 사서 먹었다는 사실. 나에게는 완벽한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였다.

아침 식사도 했겠다 이번에는 L'étape gourmande에 들려 첫날 맛있게 먹었던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테이크아웃했다. 이제 곧 12시 버스를 타고 팜플로나를 거쳐 마드리드까지 긴 시간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프랑스식 도시락을 준비하는 중이다. 까눌레? 체크! 잠봉뵈르? 체크!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생장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눠본다. 가장 마지막으로는 조세와 미셸린의 알베르게에 들려 기차 이동할 때 드시라고 까눌레를 전해드리고 힘껏 안아드리며 작별인사를 하는 걸로 생장에서 나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우리 꼭 내년 이맘때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며 안전한 여행과, 앞으로의 건강을 서로 빌어주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언제나 참 아쉽기만 하다.


팜플로나를 거쳐 마드리드까지, 마드리드에서 이탈리아로
팜플로나 기차역에서 먹어준 L'étape gourmande의 잠봉뵈르, 기차 안에서 맛있게 먹어준 Maison Berthold의 까눌레


원래 버스에서 잠을 잘 못 자는데 긴장이 풀린 걸까 거진 기절한 것처럼 자고 일어나니 팜플로나 시내였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약간 졸린 게 정신 바짝 차려야지, 이제 기차역까지 안전하게 가는 게 우선이다. 아무리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해도 스페인에서 소매치기는 늘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시내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역 가는 또 다른 버스를 탈 때까지 가방 꼭 잡고 긴장하며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팜플로나 기차역은 생각보다 한가했고, 감기는 눈을 뜨기 위해 역사 안에 있는 카페에서 카페 콘 레체 큰 사이즈를 하나 시켜 아까 사두었던 잠봉뵈르를 먹기로 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잠을 깨는 데는 뭐 먹는 게 최고야. 아 잠봉뵈르야… 넌 정말 맛있구나.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프랑스는 정말 유럽 어느 나라보다 빵이 월등히 맛있다. 흔한 바게트 자체가 이미 비교 안 되는 예술이라고나 할까. 아마 내가 프랑스에서 살지 않아서 더 다행일 수도 있어. 내가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 살았으면 매일 바게트에 버터 발라 먹느라 일 년 안에 10kg는 가뿐히 찔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짧은 기간이라 더 달콤했고, 한정된 시간이라 죄책감 없이 빵에 버터를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먹었지만 단 일말의 후회도 없다. 행복했다 프랑스야. 당분간 프랑스 바게트와 프랑스 버터 조합은 내 인생에 없겠지, 다시 볼 그날을 기다릴게, 지금은 잠시 아디오스!

든든하게 점심도 마치고 그렇게 기차를 타고 4시간가량을 마드리드를 향해 달리는데 조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마 댁에 도착하셨나 보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문자를 열어봤다가 기차 안에서 꺽꺽 울게 될 줄이야. 우리가 봉사 초반에 조세가 이제 77세에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내년에는 자원봉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었기에 이 글이 더 마음을 울렸던 것 같다.


OO야, 너를 만난 건 정말 축복이야. 인생은 가끔 놀라울 만큼 멋진 순간을 선물하는데, 너와 함께한 지난 한 주는 나에게 진정한 행복과 평온의 시간이었어. 너의 친절함, 존중, 그리고 너의 태도 하나하나가 나에게 꼭 필요했던 힘을 줬어. 너와, 그리고 다른 모두와 함께할 수 있어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나는 지금 인생의 복잡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너는 아름다운 천사처럼 나타나서 내게 기쁨과 힘을 줬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감정을 가득 담아 이 말을 쓰고 있어.
삶에는 우연이 없다고 하지. 우리는 ‘만남’으로 이어졌고, 너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중 하나야. 너의 프랑스 아빠가 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워. 정말이지, 나는 너무나 운이 좋아. 그리고 꼭 기억해 줘. 언젠가 네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세상 끝이라도 나는 기꺼이 달려갈 거야. 내년에도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 나는 벌써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만약 다시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나는 절대 너를 잊지 않을 거야. 너는 항상 내 마음속에, 내 생각 속에 있을 거야.
내 마음의 딸. 내가 힘들고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너를 떠올릴게 그러면 내 하루는 다시 빛날 거야. 하나도 변하지 말고 지금 그대로의 너로 남아줘. 그 따뜻하고 깊은 인간미 그대로 말이야. 넌 정말 빛나는 사람이야. 따뜻한 친절, 배려, 인내심, 그리고 좋은 에너지가 너에게서 넘쳐나. 나는 너에게 아버지로서의 깊은 사랑과 애정을 느껴. 영원히 그럴 거야. 고마워, OO야.
나는 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항상 베풀며 살아왔어. 그래서 자주 나 자신을 잊고 살기도 했어. 그게 내 모습이야. 그런 나에게 너는 따뜻한 마음을 내주었어. 지금껏 거의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해준 적이 없었거든. 마음의 인연은 때때로 혈연보다 더 강하고 깊을 수 있다는 걸 너와의 만남이 보여줬어.
네 여행이 순조롭길 바라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가 기쁨으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은 울지 마. 너 대신 내가 두 배로 울었거든. 이 글을 쓰면서 내 감정이 너무 북받쳐 올랐어. 번역이 잘 되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 앞으로 가끔씩 성당에 가서 성모 마리아상 앞에 초를 켜며 기도할게. 마리아 님이 너와 네 남편, 그리고 너의 가족 모두를 언제나 지켜주시길.
안녕, 정말 기쁘고 반가웠던 나의 딸, 사랑을 담아 보내

갑작스럽게 눈물이 쏟아지는 게 냅다 휴지를 찾아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아보며 끝까지 읽는데 고맙고,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던지… 살면서 중요한 우정관계는 알고 지낸 시간과 크게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함께 공유했던 경험이 특별했다면, 서로에게 평생을 가기 충분한 애정과 인상을 남기기에 필요한 시간은 의외로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8일간 조세와 프랑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만난 모든 분들은 참 다르면서도 비슷한, 하지만 공통된 마음으로 같은 일을 했던 동기들이자 친구이고, 가족이었다. 서로의 웃음창고이자, 서로의 토론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 순례자 사무실에서 만난 가족들. 호세가 식사를 차리면 장 베누아는 맛있는 와인을 챙겨 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우리를 웃겨주고, 다 같이 식탁을 치우면 아일린은 설거지를, 미셸린은 우리 모두의 빨래를, 나는 바닥을 쓸고 조개를 만들며 매일 서로에게 고맙다, 함께 나눠서 하자 등의 감사와 칭찬, 격려를 하는 참 시너지 가득한 든든한 가족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십 대 청년들도 아니고, 이삼십 대 젊은이에서도 한참 멀어진 마흔 살 막내인 내가 70대 분들과 나눈 우정이었으니 더 의외의 기대 못했던 선물이었다고 할까. 어린아이들처럼 한순간의 기분에 휩싸여 좋다고 하는 게 아닌, 이미 인생에서 많은 일을 겪으신 분들이 주시는 사랑은 뭐랄까, 더 순수했고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분들은 이미 인생에서 뭐가 더 중요한지, 각자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가지는 덕목에 대한 기준이 확고하신 분들이시니까 말이야. 나를 딸로 생각해 주신다는 크나큰 칭찬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에 담아 나 또한 조세에게 문자를 보내고 보니 어느새 마드리드다. 이제 생장 피에드 포르에서의 특별했던 자원봉사 경험과 함께 함께했던 분들에게 과분하게 받은 사랑을 잊지 않게 잘 마음에 담아 이탈리아로 돌아갈 시간이다. 프랑스 생장 피에드 포르야,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을 허락해줘서 고마웠어. 우리 꼭 내년에 다시 볼 수 있길 바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