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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Apr 06. 2024

향로 미사와 한식으로 기념한 순례길 완주

2023년 10월 5일 순례길 31일 차, 오페드로우조에서 산티아고

2023년 10월 5일 Camino de Santiago Day 31
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 19.88 km
출발 05:30/ 도착 10:40, 총 5시간 10분 걸림


으악! 빤콘토마테가 이렇게 맛있었다고?
이 빤꼰토마테는 요물이다


 새벽 5시 반에 일찌감치 마지막 일정을 시작한다. 오늘은 대망의 산티아고 입성일. 비장한 마음가짐보다는 여느 날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조용하게 하루를 열었다. 2시간 반 남짓 걸었을 때 아침을 먹을까 싶어 들린 작은 바 Bar A Concha Lavacolla 1에서 내 인생 최고의 빤콘토마테를 만나다니 이거 마지막 날의 시작이 벌써 행복으로 넘친다.

 빤콘토마테는 단단한 식감의 빵을 구워 살짝 마늘향을 입혀주고 갈은 토마토 과육을 올려서 먹는 스페인의 간단한 에피타이저 같은 음식인데 소금과 올리브유를 더해 간단하지만 풍미가 좋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를 여러 번 여행하면서 그냥 토마토 맛 조금 나는 식전빵같이 맹맹한 것들만 만나왔었는데 오늘,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날, 눈 커지게 맛있는 인생 빤콘토마테를 만났다.

 언니는 평소처럼 따뜻한 콜라카오 한잔을 시키고 나는 코르타도를 시켜서 같이 먹었는데 빵 사이즈도 크고 2조각씩 나와 정말 푸짐해서 이걸 다 먹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맛이 일반 빤콘토마테가 아니었다. 빵은 더 두껍고 바삭하고, 토마토는 다른 소스가 들어가지 않으면 낼 수 없는 진한맛이었는데 엄마야... 너무 맛있어서 커다란 빵 두 조각을 각자 싹 비우고 나왔잖아... 이제 스페인 어딜 가도 무서워서 빤콘토마테 못 시키겠다. 여기가 정말 다른 차원으로 맛있었거든. 다른 순례자들이여, 마지막 날 산티아고 입성 전에 여기 한 번 들려주세요. 구글 평은 안 좋던데 아마 서비스가 좀 퉁명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시 가면 꼭 들를 곳으로 정했다. 10유로 조금 안 되는 가격에 언니와 나 둘이서 맛있는 아침도 먹었고, 여기에서 내 산티아고 순례자 여권의 마지막 빈칸에 도장을 꾹 찍어 가지고 나왔다. 든든한 배, 꽉 찬 순례자 여권. 이제 정말 산티아고 입성의 모든 준비가 완성된 것 같다.


순례자 여권의 마지막 남은 한 칸을 채웠다


안녕? 산티아고!
안개가 자욱했지만 그래서 더 신비로웠던 마지막 길


 오늘 길은 참 쉬웠다. 20km 정도인데 5시간이 넘어 생각보다는 조금 오래 걸린 느낌이지만 쉽고 재밌게 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미스트 같은 안개비가 계속내려 도착할 때까지 조금은 어둡고 썰렁한 길이었다. 길을 걸으며 많이 담담해진 터라 산티아고에 들어가면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영원한 ENFP인걸 바로 확인했다지. 성당 들어가기 전 작은 굴다리에 다달아 그 유명한 백파이프 소리를 들으니 크흑 하고 울음이 터졌다. "어떻게~" 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뭐라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성당이 내가 들어가는 입구에 딱 있는게 아니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바로 안보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뒤돌아 올려다보았다. 내가 도착했구나.

 내가 흘린 눈물은 아마 안도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해냈다! 아니면 '드디어 도착했어!' 같은 해방감이나 성취감과는 조금 거리가 먼 눈물이었다. 오히려 '여기까지 안전하게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고마움의 눈물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일주일을 30km 이상씩 걸으며 속도를 내어 거리를 늘려왔기 때문에 초반 비슷한 시기에 함께 걸었던 아는 얼굴들은 찾아볼 수 없다는게 조금 아쉬웠다. 성당 앞에서 서로 얼싸안고, 어깨동무를 하고 다독이는 다른 순례자 그룹들을 보니 나와 함께 했던 J씨와 H 양, 메구미가 보고 싶어졌다. 함께 한바탕 울고, 눈물 콧물 범벅된 채로 활짝 웃는 단체사진을 한 장 남긴다면 내 평생 가끔씩 들여다보며 힘을 내는 큰 재산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도 나는 여기 내 가장 큰 지원군이자 사랑인 우리 언니와 함께 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친언니와 산티아고를 경험하겠어? 있긴 해도 많지는 않을걸? 게다가 우린 쌍둥이란 말이지. 이미 그 특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 그 자체다.


믿기지 않지만 제가 산티아고에 도착했답니다


 앉아서 조용한 성당을 올려다보니 "하~"소리가 절로 나온다. 기분 좋은 한숨이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크고 멋진 산티아고 대성당은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우와 소리가 나오게 감탄했던 다른 나라의 규모 큰 대성당들보다 더 아름다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걸까.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해방감, 자유, 슬픔과 기쁨, 성취감까지 내가 앉은 이 땅에 그들의 눈물과 땀이 다 녹아있을 것만 같다. 내가 도착했구나. 나만의 역사를 썼구나 내가 온전한 나로서 변할 수 있는 부분은 변해가며, 변하지 않는 부분은 받아들여가며 이렇게 31일을 걸어 걸어 오늘 산티아고 대성당을 눈과 마음에 담게 되었구나. 묘했다. 감정이 확실하게 이거다 저거다, 아싸 끝났다 이런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이 느낌은 운동회에서 100미터를 뛰기 전 같은 건강한 긴장감과 비슷했다. 설렘이 동반된 긴장감이 막 순례길을 끝낸 사람의 느낌이 아니라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 기대반 긴장반의 느낌에 더 가까웠다.


이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가 보다.


 성당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내가 지금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건지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몽글몽글한 이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 그대로 내가 옛날 사람들이 성지로 여긴 산티아고에 내 두 발로 안전하게 도착했음에 그저 감사했다.

 9년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카톨릭 신자가 된 언니가 12시에 있는 순례자들을 위한 향로미사를 드리러 가자고 서두르라길래 완주 확인증을 받으러 자리를 옮겼다. 나름 한번 온 적 있다고 평소 걸을 때는 지도 한번 안 들여다보던 언니가 순례자 사무실이 어딘지, 교회는 어떤 입구로 들어가야 하는지 척척 앞장 서가는 모습이 우습고 귀여웠다.


향로미사가 이런 거구나
순례자 사무소와 나의 완주 증명서


 드디어 순례 완료증을 받았다. 들어가기 전에 QR코드 설문으로 내가 걸은 구간과 날짜, 이름 등 간단한 정보들을 적어 접수한 뒤 안내요원에게 보여주고 입장하면 10분 안팎으로 완료증을 받을 수 있었다. 완주했다는 증명서는 무료로 제공해 주고, km 거리가 자세하게 적힌 증명서는 2유로인가 3유로인가 조금의 비용을 내고 받을 수 있어서 우리는 둘 다 발급받았다. 이제 공적으로 나는 산티아고를 완주한 순례자인 거다.

 12시 미사 시간이 임박해 서둘러 성당으로 돌아갔고, 간당간당하게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물론 모든 자리들은 이미 꽉 차있어서 우리는 서서 예배를 드렸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새벽 서너 시에 출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해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싶다. 서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되지만 앞에 사람들에 시야가 가려져 까치발에 옆으로 허리를 빼꼼 내밀고 보고 있어야 하는게 조금 힘들었다. 아마도 자리에 착석한 분들은 적어도 한두 시간 전에 와서 앉아계셨을 터, 그 철저한 준비성과 의지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향로가 올라가기 직전이다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 드디어 대형 향로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가 올라갔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향로로 알려진 보타푸메이로는 그 무게가 무려 53kg이고 20m의 긴 줄에 달려 아주 높이 올라가기 때문에 여러 명의 사제님들이 함께 힘을 모아 움직이게 하신다. 제대의 측면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면에 앉은 사람들은 향로가 움직이는 그 광경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측면에 앉은 사람들은 향로가 머리 위로 지나가며 축복의 느낌을 제대로 받지 않을까 한다. 축일 미사 때 기부금이 500유로 정도가 되어야 향로가 올라간다는 소리를 어디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가끔 기부금이 안모일 때는 향로가 안 올라가기도 해서 산티아고를 두어 번 오신 분들도 예배 때 이 향로를 못 보셨다는 분들도 있었다. 와 이거 얼마나 행운인 거니. 언니와 나의 산티아고 여정이 이렇게 보타푸메이로도 볼 수 있었던 뜻깊은 미사와 함께 마무리하는구나. 정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순례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카톨릭은 아니지만 걷는 기간 동안에 조금씩 자기 나름대로의 신자가 되어간다. 성모마리아와 하나님, 예수님을 믿지 않더라도 각자의 이유와 목적을 갖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걸으니 종교를 떠나 모두가 신자이지 아닐까 싶다.


성 야고보의 어깨를 만지는 의식
향로 밑 가운데에 보이는 성 야고보의 어깨를 만질 수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바티칸과 예루살렘에 이어 세계 3대 카톨릭 성지라고 하는 이유는 성인 야고보의 유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당으로 들어가는 줄 이외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담긴 관을 보고, 교회 제단 가장 정면에 있는 성 야고보 상의 뒤로 올라가 어깨를 만질 수 있는 줄이 따로 있다. 대중에 공개가 된 무료 줄이고, 교회 지하로 들어가 안장되어 있는 관을 보며 지나가고, 교회 내부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올라가 성 야고보 상을 만질 수 있는 시스템. 안타깝게도 사진을 엄격히 금해서 규칙을 따르니라 사진을 남기진 못했다. 물론 줄은 계속 움직이고, 줄 서는 것까지 다하면 10분도 안 돼 끝나는 작은 투어 느낌이지만 이게 정말 특별하다. 오직 성 야고보의 유골이 안치된 관과 성 야고보상을 만지기 위해 이 곳 산티아고로 여행 오는 사람도 많으니 그 특별 함을 쉽게 가능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성 야고보상의 어깨를 만지며 소원을 빈다고 하는데 그 앞에 도달했을 때 나는 ‘여기까지 오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되뇌었고, 아마 이게 산티아고 여정을 막 마친 나의 감상이자 진심인 것 같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는게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작은 의식에 마음이 찡해졌다.


선물 같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숙소
Apartamentos Atia Catedral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아름다운 향로 미사를 보고 언니나 나나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비록 나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내가 지금 3대 카톨릭 성지에서 방금 미사에 참여했다는게 얼떨떨 할정도로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공식적인 나의 순례길은 여기까진게 신기하다.

 언니랑 미사를 끝내고 나와서 숙소에 체크인을 했는데 너무 깔끔하고 사진 그대로라서 마음에 쏙 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위치가 센터 한가운데라 레스토랑이 정말 많고 성당이 3분 거리라는 거다. 진짜 여행 다니면서 많이 느끼는 거지만 숙소의 위치가 여행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걸어 다니다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들렸다가고, 무거운 짐이 생겨도 들렸다 놓고 나가고, 피곤하면 잠시 들어와 눈 좀 붙였다 나가는 등 이동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감소해서 가능한 센터를 선호하는데 오늘 산티아고의 숙소 Atia는 이런면에서 정말 강력 추천이다!

 늘 순례자로서 컴팩트한 사이즈들의 숙소에 머물다가 오늘 이렇게 마지막 날 잘 마무리하고 공간 넓고 인테리어도 귀여운 곳에 머무니 너무 좋다. 조금은 내가 산티아고에 여행온 듯한 느낌이 드는게 벌써 31일 간 산과 들을 지나 걸어온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 또 뭘까. 이제 슬슬 배도 고파지는데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자.


순례길 완주 후 한식당 누마루는 국룰이지!
외국 생활 12년 중 가장 맛있었던 감동의 한식
정말 맛있었던 매콤한 제육볶음


 나는 외국 어디를 나가도 한식당을 절대 안간다. '외국에서 그 나라 유명한 음식을 먹어야지 왜 한식을 먹어?' 이런 생각이 늘 있었고 승무원 생활을 하는 5년 내내 내가 가진 모든 레이오버 기회는 그 나라 음식을 먹는데 썼다. 그런데 산티아고는 뭔가 좀 달라... 요상하게도 순례길을 걸으며 나는 한국인! 이런 느낌을 더 진하게 받았단 말이지. 우리의 완주를 축하해 줄 좋은 식당을 찾아 블로그의 리뷰들을 참 많이 봤는데 다들 한식당 누마루의 제육볶음을 먹으며 축하했다는 거 아니야!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우리도 누마루에서 맛있는 한식을 먹으며 순례길 완주를 축하합시다!' 하고 누마루로 향했다. 현지인들에게도 리뷰 좋기로 유명한 식당이기에 예매는 필수고, 카톡아이디 david9712로 사장님께 연락하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다. 이것도 언니가 며칠 전에 예배 후 바로 먹을 수 있는 시간으로 기가 막히게 예약해 두어 참 편했다. 뭐야 산티아고 걷는 내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그냥 따라오기만 하던 언니가 산티아고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의기가 아주 넘친다. 그 덕에 참 편하고 좋네. 아... 집사가 있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걸까? 언니는 나와 걷는 11일 내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어 '와... 엄청 좋았겠는데?' 과거의 언니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누마루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15분 정도의 위치에 있는데 이제 걷기 15분 하면 콧웃음이 쳐질 정도로 가소로운 거리가 된 거, 바로 이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갖 완주한 자의 여유 아니겠나! 남동생이 누나들 열심히 잘 걸은 걸 축하하며 맛있는 밥 한 끼 거하게 사드시라고 용돈을 준다길래 동생 덕에 양념치킨도 시키고 나는 제육볶음, 언니는 갈비를 시켰다. 와 이거 너무 다 내 스타일이라서 정말 너무 행복했다. 특히나 가장 잘 나가는 메뉴인 제육볶음은 불맛이 나는게 매콤했고, 양이 어마어마하다. 사진으로 보면 크게 많은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받아보면 깊고 오복한 그릇에 한가득 담겨있다. 적어도 한국 식당식으로라면 1.5인분은 돼 보인다. 언니의 갈비는 집에서 우리 엄마가 구워준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둘 다 메인을 정말 배부르게 먹어서 결국 양념치킨은 끝내지 못하고 포장해서 나중에 숙소에서 먹었을 정도.

 나는 오이무침이라는 걸 절대 먹지 않는데 뭐야. 여기 오이 무침이 진짜 매콤한 간장게장 스타일의 소스에 버무려져 너무 입맛을 당기는게 아니야! 마지막에는 오이 싹 다 먹고 소스에 밥까지 비벼먹었다. 외국의 한식당들은 대부분 현지인 입맛에 맞춰 간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여기 한식당 누마루는 매콤한게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감칠맛 나서 진짜 즐거운 식사를 했다. 외국생활 12년 중에 가장 맛있고 양도 혜자라 한껏 기분 낼 수 있었던 한식당이었다! 다 먹으면 디저트도 주시는데 우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선택해 입가심까지 제대로 하고 왔다.

 뭔가 한식으로 그동안 잘 걸었다고 어깨를 토닥토닥 위안받은 느낌이었다. 외국에 살면서 가끔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는데 내가 지금 이 산티아고에 31일을 내리 걸어와서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고 있다니.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우리가 앉아있던 1시간 남짓 동안에도 순례길을 마친 한국인 분들이 계속 도착을 하고 계셨다. 그동안 다 어디에 있다 지금 뵙는 건지, 그저 신기할 나름이다. 그분들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나 한식으로 길의 끝을 축하하려는 건 비슷하겠지? 사장님, 오래오래 가게 열어주세요! 다음번에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저 100% 꼭 돌아오겠습니다!


이렇게 순례길을 마친 하루가 저물어간다
멀리서 바라본 산티아고 대성당이 너무 예쁘다


 언니랑 산티아고를 돌아다니는데 뭔가 꿈같다. 전혀 실감이 안난다. 이런저런 작은 감정들이 마음속에 자글자글한 것 같은데 깊이 있는 큰 한 방의 느낌은 없다. 그래도 나는 지금 산티아고에 있으니까 많은 걸 보고 담아야 한다는 일념은 있어서 9년 전 추억을 더듬으며 산티아고 곳곳을 누비는 언니를 따라 나 또한 열심히 돌아다녔다. 알라메다 공원의 두 마리아 상(두 여인상)에 가서 손잡고 사진도 찍고, 산티아고 성당이 저 멀리 보이는 뷰 명당에서 사진도 남기고... 배가 고파질 땐 근처아무 가게에서 간식도 사 먹어가면서 이제 더는 걸을 계획이 없는 무언가 허한 마음을 달랜다.


 오늘의 저녁은 지나가다 발견한 아시아마트에서 너구리를 두 봉지 사와서 일주일 전 트라바델로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언니가 가게에서 먹었던 것과 같이 계란도 넣어 아주 맛나게 끓인 데다 띤또 데 베라노까지 곁들여 우리끼리의 소소한 밤을 보낸다. 오늘 언니와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안전하고 감사하게 말이다. 아직은 할 말이 많지가 않다. 그만큼 더 소화해야 하는 커다란 감정이 남아 있나 보다. 그래도 불가능해 보였던 31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끝냈다는 사실 하나는 내 가슴에 작은 뿌듯함으로 남은 건 확실하다.


오늘의 산티아고 숙소 리뷰
2023년 10월 5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Apartamentos Atia Catedral

가격: 개인실, 101유로 (14만 7천원)

구글평점 5.0, 내 평점 5.0

제일 중요한 수건 유무 : 있음

담요/이불 유무: 있음

위치 : 시티 가운데,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걸어서 3분 (창문을 성당 꼭대기가 조금 보일 정도)

다시 와도 여기 예약할 건가요? 100% 네

나의 경험 : 산티아고의 센터 한가운데에 위치. 아주 크고 모던한 새 방에 엘리베이터, 무료 세탁시설까지 구비(제일 위증에 공용으로 하나 있음, 건조기는 없음). 방이 사진과 정말 똑같이 크고 깔끔하고 요리도구들과 식기들이 완벽 구비되어 있어 너무 좋았다. 늘 순례자로 그냥 컴팩트한 곳에서 머무르고 다니다가 이젠 여행 온 듯 마음껏 느끼기 좋았던 숙소. 꼭 다시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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