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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Nov 01. 2020

제11화 흙수저들의 엑소더스

Last year, 1,332 people renounced their South Korean citizenship, a 95 percent increase from 677 in 2014. An additional 18,150 dual citizens chose to let go of their South Korean citizenship — 61 percent of those dual citizens lived in the United States. Eighteen percent lived in Canada; 11 percent in Japan; and 6 percent in Australia.


(2015년 1332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전년대비 95% 증가한 수치다. 1만 8150명의 이중국적자들은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이 가운데 61%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18%는 캐나다 11%는 일본, 6%는 호주에 거주하고 있다.)—Korea Times 


‘부의 대물림’으로 계층 구조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교육과 일자리를 통해 더 나은 계층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굳어진 것이다. 직장인 이모 씨(31)는 “한 동료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별로 없는 ‘흙수저’들은 열심히 노력해봐야 결국 치킨집 사장님으로 끝난다’고 말하는 걸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지난해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신조어 중의 하나가 고착화되어가는 양극화 현상을 일컫는 ‘금수저, 흙수저론’이었다. 말 그대로 한국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가 이를 뒷받침하는데, 세대 내 계층 상향이동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응답자는 60%를 넘었고, 긍정적 응답을 한 비율은 20%로, 대부분이 본인의 노력에 의한 경제적 계층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60%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인데, 특히 경제 활동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30~40대의 70%가량이 계층상승에 비관적 인식을 나타냈다고 한다. –중앙일보





‘흙수저, 헬조선, 삼포세대, 88세대…’


우리나라 20-30대 젊은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자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나 또한 그랬다. 3년여간 눈물 나는 백수생활을 견디고 겨우 들어간 언론사를 5년만에 그만두고 2010년 돌연 영국 유학 길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말렸다. “왜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가느냐” "유학 해도 해외 취업이 쉬운줄 아냐." " 갔다오면 네 나이가 몇인 줄 아냐" 등등.


하지만 나의 이유는 분명했다. 학벌, 집안, 외모… 거의 모든 사회적 카테고리가 서열화되어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벽들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하다는 집안 배경과 경제력, 혈연, 지연, 학연 등 인맥을 내힘으로 능가할 순 없었다. 심지어 나는 소위 말하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명문 대학을 나온 개천의 용이었음에도 말이다.


실제로 동아일보와 한국 개발연구원(KDI)이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취업 및 출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혈연 지연 학연 등 인맥’(36.8%)이나 ‘경제적 배경’(28.5%)을 꼽은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나 역시 이 결과에 동의한다. 영어가 짧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국보다 싱가포르에서 취업하는 것이 더욱 수월하다고 느꼈던 이유 가운데는 대한민국이 공정경쟁이 가능한 실력 사회가 아니었다는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실제로 2016년 불거진 ‘최순실 사태’  2019년 버닝썬사태 등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부패 행태는 돈과 권력이면 대학 입시, 학점, 취업은 물론 마약, 성 관련 범죄의 조작 및 은폐까지...가히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믿기 힘든 현실을 낱낱이 보여준다. 흙수저들에게 더 이상 노력할 의지와 동기조차 부여하지 않는 불평등한 구조인 탓이다.


나는 그래서 공든 탑을 무너뜨렸고, 어렵게 얻은 타이틀을 버리고, 훌훌 털고 애증의 대한민국을 떠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난 대한민국에서 보다 적게 노력하고도 외국에서 더 큰 결실을 얻어낼 수 있었다. 


외국인이기에 어차피 밑바닥이라는 생각은 되려 '뭘 해도 진다'는 패배주의를 치유하고, 자유와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외국인이었기에 모든 사회적 카테고리에서 꼴지를 하더라도 내가 만든 길 위에선 1등이었다. 왜냐면 나는 그들과 다른 열외자이기 때문.


영국에서 1.5평 남짓한 기숙사 방에서 볶닦이며 살아도, 싱가포르에서 5년간 이사를 7번이나 하며 떠돌이의 삶을 살았어도, 난 행복했다.


왜냐면, 이곳에서는 내가 노력만 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5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만 6년 5개월 동안, 나는 한국에서의 고질병이었던 위염이 단 한 번도 재발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시달렸던 정체불명의 마른기침도 단 한 번도 시달려 본 적이 없다.


방 한 칸, 차 한 대 없는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였지만 행복했고 충만했다. 노력해도 패한 게임이라는 패배주의와 바닥을 친 낮은 자존감 대신, 브리티시 드림, 싱가포리안 드림을 꿈꾸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성취감과 위로를 느꼈기 때문이다.


해외 취업이 정답은 아니다. 유일한 해법도 아니다. 영국과 싱가포르란 나라가 마냥 좋기만 한 나라인 것도 결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 곳과 국적마저도 선택할 수 있는 이 자유주의 과잉 시대에 감히 흙수저들에게 고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이는 패자의 도피가 아니다. 승자가 되기 위한 전략적 이주다.. 그리고 분명 똑같은 노력에 대한 결실은 더욱 크고 값질 것이라 장담한다. 왜냐면, 적어도 당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그곳은 계층의 징검다리가 존재하는 실력 사회, 공정경쟁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하는 장밋빛 전망이 아니다. 이건 실제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글로벌 부자 순위 톱 10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1위), 인디텍스의 아만시오 오르테가(2위),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5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6위),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7위) 등이 세계 최대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부자가 아닌, 자수성가형 혁신 기업 창업자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별 부자 순위 상위 50인의 자료를 보면 중국은 상위 50명 가운데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 바이두의 리엔홍 등 인터넷 혁신 3인방을 비롯해 창업자가 49명이다. 반면 한국은 12명에 불과하고, 단 1명만이 상속자인 중국에 비해 한국은 상속자가 38명으로 한국의 계층 고착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 중앙일보[4]


싱가포르에서 미국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점은 외국은 굳이 정치를 하지 않아도 실력이 있으면 윗사람이 잘 이끌어준다는 점이었다. 입사 후 비록 텃세를 부리는 일부 싱가포리안 동료들 때문에 시달렸지만, 이 오피스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인디언 여자 디렉터가 나를 든든히 밀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점심식사 한 번조차 안 한 일면식밖엔 없는 사이였지만, 그녀는 내가 쓴 분석 리포트를 보고는 없던 상(월별 분석 리포트상, Monthly Analytics Awards)까지 만들어서 나를 칭찬하기에 적극적이었다.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몸매와 긴 생머리를 유지했던 그녀는 ‘걸 크러쉬’를 유발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였다. 그녀는 싱가포르 전체 임직원이 cc가 된 이메일을 보내, “이번 달 상은 수지(가명)의 분석 리포트가 받았다”며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칭찬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하거나, 살갑게 지냈다거나 한 적도 전혀 없다. 그저 열정적으로 일하는 후배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공정경쟁과 투명한 보상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이 회사를 다니며 느낀 건, 외국에선 실력자가 왕이라는 것. 아무리 인맥이 좋고 소위 레퍼런스라고 하는 ‘백’으로 입사를 하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가차 없이 잘린다. 반대로 아무리 외국인이고 아는 이도 하나 없고 정체불명의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도 실력만 있으면 왕처럼 대접받는다. 그리고 초고속 승진과 초고속 월급 인상을 맛볼 수 있다. 계층 이동의 황금사다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증거다.


흙수저라 미안했고, 흙수저라 상처 받았던 나의 자존감은 8년여간의 해외 생활을 통해 치유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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