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워크캠프의 문화 활동 프로그램의 상당수는 산 크리스토발 근처의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여러 박물관을 돌아다녔더니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옥 장식품에 관한 박물관, 마야의 전통 의학 박물관, 마야 직물, 염색 박물관 등이 있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Kakaw Museo del Cacao y Chocolateria Cultural라는 카카오 박물관이었다. 이곳에서는 진짜 카카오빈을 갈아서 내린 핫초콜릿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기에, 카카오와 관련된 역사 전시품이 있는 멋진 카페란 이미지가 더 컸다. 핫초콜릿은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달랐는데, 알갱이가 그대로 남아있어 걸쭉하고 쌉쌀하며 구수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핫초콜릿과 전혀 달랐다. 인테리어를 위해 나무를 많이 쓴 데다 식물도 많고 초록색 페인트도 많이 사용해서 그 자체로도 이국적이면서 편안한 인테리어였다. 근처에 있었다면 종종 갈 듯했다.
이런 활동과 확연히 차이나는 문화 체험 활동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근처의 차물라와 시나깐딴이란 마을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 글에선 차물라 마을에 대해 먼저 써보겠다.
차물라 마을은 마야 문명의 후예들이 자신들의 부족 문화를 그대로 지키고 사는 곳이라, 이곳 인디헤나의 자치력이 굉장히 강한 마을이다. 그들만의 마야 가톨릭 종교를 믿고, 치안, 방범, 사법권도 자치적으로 작용한다. 가톨릭 사제도 여럿 쫓겨났고, 멕시코 정부의 치안 정책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이 공동체에서 잘못한 사람은 광장에 있는 감옥에 하루 이틀 정도 갇히는데,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다. 왜냐하면 감옥의 철창 사이로 누가 갇혀있는지 모두가 보게 하여 수치심을 유발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 마을 분위기를 한 번에 보여주기라도 하듯 마을 남자들이 흰 옷에 마체테 같은 칼을 차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마을을 경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주로 검은 양털 치마를 입고 다닌다. 산 크리스토발에서도 검은 양털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봤다. 고산지대에 있어 일교차가 많이 나지만 낮에 햇살이 강할 때면 꽤 더워 보였는데, 이 옷을 늘 고수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진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잃어버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시장에 물건 파는 사람들을 사진 찍으려고 관광객이 시도하면 흰색 옷을 입은 남자들이 저지하는 모습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훨씬 강경하게 저지하는 곳은 산 후안 교회 안이다. 마야 가톨릭의 독특한 의례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이곳은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 사실 마야 가톨릭이 워낙 먼 동네 이야기라 우리는 원래 잘 모르지만, 거리가 가까운 미국에서는 자신들이 들어본 독특한 교회를 직접 보기 위해 관광하러 오는 경우가 꽤 있는 듯했다.
산 후안 교회의 미사가 일요일에 있고, 일요일에는 장이 서기 때문에 주로 일요일에 방문한다. (마침 워크캠프 이튿날이 일요일이어서, 오자마자 난 또 관광객 모드가 되었다.) 마야 십자가는 초록색이다. 산 후안 교회도 흰색 단순하게 생긴 건물에 초록색이 살짝 포인트가 들어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안에선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고, 함부로 사진 찍다가 걸리면 그대로 사진기를 압수당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차물라 마을을 다닐 때, spiritual leader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때 가이드가 spiritual leader의 사진은 절대로 찍어선 안된다고 한 번 더 강조했다. 교회 의식 역시 그 연장선의 개념이었다.
이곳 교회는 의자가 없고, 소나무 잎 같은 걸 깔아놓은 바닥이 있다. 그곳에 앉아서 기도를 한다. 멕시코의 다섯 가지 옥수수 색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의 콜라(혹은 탄산음료), 다섯 가지 초를 이용해 기도를 한다. 필요한 경우 닭을 잡아서 피를 뿌리기도 한다. 바닥의 소나무 가지 같은 걸로 몸을 정화하기도 하고, 콜라를 마신 후 트림과 함께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정화하기도 한다. 나는 경건하고 진지하게 기도를 하는 이들이 과연 무엇을 빌까 가 궁금했다. 그 소원이 이 사람들의 핵심 가치를 보여주는 것일 테니.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가족의 안녕 같은 것을 빈다고 한다. 그런 건 어디나 다 비슷한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비는 소원에는 자식 대학 합격 같은 것도 끼어있는데, 여기서 그런 소원은 드물겠지?
이곳의 샤먼은 선택받은 존재라는 믿음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큰 사고나 질병에서 살아남았다든지, 손가락, 발가락이 여섯 개라든지 등 일반인과 다른 체험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샤먼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여느 전근대 사회에서 영웅의 자격과 비슷한 믿음이 여전히 유지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교회 근처는 작은 실팔찌 등을 만들어서 파는 장사꾼이 많다. 주로 아이들이 돌아다니면서 호객 행위를 한다. 한 명이 사면 그 동네 팔찌 파는 아이들한테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자기 것도 사라고 나타난다. 호객 행위가 강한 관광지에 가면 한 번씩 겪는 것처럼, 여기서도 물건 팔려고 달려드는 모습에 편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어떤 관광객이 팔찌 사 줄 테니 사진 찍자고 하면 술래잡기에 쫓기는 아이들처럼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난다.
한 관광객이 아이들이 아닌 어떤 여인에게 팔찌를 사면서 사진 찍자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여인은 매우 내키지 않아 했지만, 팔찌를 파는 게 더 중요했던지 사진을 찍게 했다. 그 여인의 표정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그 순간 투사를 통해 내가 읽은 감정은 돈을 위해 영혼을 팔았다는 수치심과 좌절감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다녀온 전 세계 여행블로거 중 굳이 찍지 말라는 차물라 사람들(특히 여자들)의 사진을, 자신은 해냈다는 듯이 찍어서 전시하는 블로그를 매우 불편하게 여긴다. 가급적 그런 블로그를 방문하지 않으려 하고, 실수로 클릭이라도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나가는 것으로 그 블로그의 체류 시간을 줄이는 것뿐이다.
이 마을의 spiritual leader의 집 방문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정확하게 우리에게 대응되는 지점이 없어서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spiritual leader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여러 수호성인 리스트가 있는데, 인기 있는 수호성인을 고르면 그 수호성인을 기리는 spiritual leader가 되기 위해선 대기 리스트가 길다고 했다. 그렇게 spiritual leader가 되면 1년 간은 생업에 종사할 수 없다고 한다. 매일 초를 켜고, 산 크리스토발과 차물라 마을(그리고 멕시코 시티에서 관광용으로 보여주던 마야 의식)에서 흔히 나는 알싸한 풀 냄새가 나는 걸 태우고, 방문객들에게 전통술인 포슈 Pox를 대접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일부는 관광객들의 기부금에 의존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사비가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그럼에도 대기 리스트가 길다는 건 이들에게 이 역할이 얼마나 명예로운 것인지 짐작케 한다.
여러모로 독특한 마을이었지만, 역시 내가 겪은 건 관광객으로서의 차물라 마을이었다. 정말 이 마을 사람들에 대해선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이 마을을 떠날 때, 이곳 가이드의 조언이 인상 깊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여러 가지로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생활 방식을 비난하지는 마세요.
이 사람들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서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