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워크캠프 정식 프로그램이 없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 신청을 받아 놀러 갔다. 해변으로 놀러 간다기에 준비를 했다. 해변에 귀중품을 놓아둘 곳이 없다고 해서 여권은 숙소에 두고 복사본만 챙기고, 돈도 최소한만 챙겼다. 그게 나중에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출발 시간이 되자 트럭이 도착하고, 커다란 매트리스를 트럭 짐칸에 두 개 깔았다. 그때만 해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매트리스를 다 깔고 나자 우리더러 그곳에 앉아 있으랬다. 대략 1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트럭 양옆으로 다리를 엇갈리게 자리 잡고 앉았다. 우리의 이동 수단이었다.
중국이나 멕시코처럼 땅덩이가 크고, 빈부격차가 많이 나는 나라의 어떤 지역에서는 종종 시간이 평행으로 펼쳐져있는 것 같다. 한쪽에선 최첨단 수입차가 질주하고, 다른 한쪽에선 몇 십 년 된 트럭이나 자동차 뒤에 짐을 잔뜩 부리고 간다. 동물을 차도 위에서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 여행에서도 그랬다. 멀쩡한 차들 옆에 짐칸에 동물을 실은 트럭을 바라보면 우리랑 같은 처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트럭 짐칸에 장막을 쳐둔 채로 직사광선을 받으니 열기가 그 안에 고였다. 앉아있는데 무릎 뒤로 땀이 줄줄 흘렀다. 목적지까지는 이렇게 네 시간 정도 가야 했다.
중간중간 연방 경찰이 세 번이나 트럭을 불러 세웠다. 멕시코의 부패가 심한 지역 경찰들은 돈을 뜯기 위해 일부러 트집을 잡아 세우기도 한다던데, 같이 갔던 멕시코 팀원이 나중에 얘기하기를 연방 경찰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랬다. 그들은 우리에게 여권과 멕시코 입국할 때 받았던 출입국 증명서를 내놓으라고 했다. 복사본임을 계속 문제 삼았고, 출입국 증명서를 갖고 있지 않음도 문제 삼았다. 트럭 뒤엔 인종도, 국적도 다양한 2,30대 남녀가 여럿 타고 있으니 어떤 연유로 밀입국하여 사람들을 싣고 가는 조직으로 의심받았다고 했다.
진짜 모르는 게 약이었다. 나는 그 당시 분위기 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고, 그들이 선글라스 낀 얼굴로 우릴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그저 아니꼽게 되받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전혀 거리낄 게 없으니, 그 상황을 알았다고 해서 바뀔 게 없어야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안 그렇지 않은가. 미국 출입국 심사받을 때도 잘못한 게 없어도 괜히 한 번 주눅이 드는데...
결국 워크캠프 참여할 때까지 메일로 주고받았던 서류들, 그리고 산 크리스토발에 있던 워크캠프 기관과 연락이 되어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그렇지만 계속 우리 트럭을 의심했는지 한 시간 정도마다 한 번씩 불러 세워서 다시 검사를 했다. 다행인지 돌아오는 길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멕시코에서는 여권뿐만 아니라, 출입국 증명서도 필수로 가져 다녀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동네는 보카 델 씨엘로 (Boca del Cielo), 천국의 입이란 뜻을 갖고 있는 해변이었다. 길쭉한 모래톱 모양이어서 리조트 뒤쪽에 큰 바다가 있고, 앞쪽으로도 라군처럼 바다가 또 있는 구조였다. 뒤쪽 큰 바다는 멀리 나가기엔 바다 색도 무섭고 파도도 세게 치지만 바로 앞에선 해수욕을 할 수 있었다. 그 옆엔 야자수와 해먹이 간단히 설치된 방갈로가 여럿 있었다.
앞쪽 바다는 물풀이 많고, 좀 지저분해 보였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보트를 타고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구조였다. 여기서도 굳이 물에 들어가서 놀려면 놀 수 있다.
멕시코 시티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옆좌석에 앉은 노부부에게 Boca del Cielo란 해변에 가서 놀았다고 했더니, 내가 Boca가 들어간 다른 해변과 헷갈린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들어보지 못한 해변인 듯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이 투 마마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해변이기도 했다.)
이곳의 여러 숙박 시설 중 우리는 친환경 리조트에 묵게 되었다. 사실 리조트란 근사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모래 위에 침대 몇 개를 넣은 방, 큰 고무대야에 물을 퍼담아 바가지로 떠서 샤워해야 하는 샤워장, 샤워장 가림막 위에 대충 늘어뜨려진 오렌지빛 알전구, 빨랫줄 등이 있는 곳이었다. 수익의 일부는 다시 환원되는 일종의 협동조합이거나, 마을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문을 잠그고 귀중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많은 돈이나 귀중품을 가져오지 않은 건 잘한 것 같았다. (그래도 출입국 증명서 사본은 챙겨 다녀야 했다.) 오히려 너무 돈을 적게 가져와서 중간중간 맥주 사 먹을 돈이 모자란 게 문제였다. 다행히 캠프 리더에게 빌려서 해결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바로 갚긴 했다.
얼핏 보면 상당히 불편할 것 같은 곳인데 이곳에서 정말 간소한 소유로 인한 자유를 누렸다.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도 모래 위에 나무 테이블과 의자를 그저 가져다 놓은 채였다. 어미개와 새끼로 보이는 강아지가 밥 먹는데 식탁 아래 모래를 파고 구덩이 안에서 쉬었다. 똑같이 생겼기에 캠프 리더가 피콜로와 그란데라 부르며 구분했다. 이탈리아 팀원이 아주 즐거워했다. 식사는 생선 튀김 요리와 약간의 가니쉬가 나왔는데 맛있었다. 뼈가 이미 발라진 채로 요리가 되어서 자기가 남기지만 않으면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게 좋았다.
음식을 다 먹으면 스스로 설거지를 하면 된다. 음식물 쓰레기는 옆에 있는 작은 쓰레기통에 두면 되는데 대부분 그다지 많이 나오진 않았다. 설거지하는 공간이 아주 단순하게 생겨서 편안했다. 커다란 돌 하나가 싱크대처럼 놓여있는 게 끝이었다. 그곳의 일부는 개수대, 그 옆에 그릇을 엎어놓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돌 아래쪽에는 작은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있었고.
그렇게 식사를 끝내면 별을 보면서 모랫사장에 앉아있거나, 방에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까 봤던 샤워장도 천장이 뚫려있어서 별을 보면서 샤워를 하게 된다. 공기가 따뜻해서 그런지 고무대야의 물을 퍼서 하는 샤워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사실 약간 낭만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나도 안다. 이 생활이 즐거운 불편함으로 남았던 건, 춥지 않고 비도 오지 않은 날씨 덕분이기도 하고, 생활이 아니라 휴가를 떠난 일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음식도 누군가가 다 준비해 준 덕분이었다는 것. 그래도 이때 느꼈던 작은 소유의 개운함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서, 여전히 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두리번 거린다. (그래도 여전히 나가는 책 보다 들어오는 책이 훨씬 많고, 마음에 드는 옷들도 아닌데 버리기엔 아까워서 옷장은 항상 다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