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침은 무슨 맛 기분입니까?

by 헤스티아

멕시코 워크캠프 참가비에는 아침, 저녁 식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캠프 건물이 커다란 중정 마당을 두고 미음자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중 한 귀퉁이가 bio cantin이라고 불리는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음식을 받아서 마당의 벤치에 들고 와서 먹으면 된다.



아침 메뉴는 현지식으로 약간씩 바뀌어 준비되었는데, 늘 함께 나왔던 메뉴는 엄청 목이 메어서 그냥은 먹기 힘든 옥수수 또르띠야 (밀가루 또르띠야와는 전혀 다른 경험임), 프리홀레스(frijoles)라고 불리는 삶은 콩 으깬 것, 그리고 스크램블, 오믈렛 같은 계란 요리였다. 커피도 한 잔씩 나온다. 프리홀레스라 불리는 삶아 으깬 콩은 멕시코에서 음식을 먹을 때 거의 어지간한 요리에는 저절로 딸려 나왔다. 레스토랑마다 향신료 차이로 맛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짭조름하면서 부드러워서 맛있게 먹었다. (콩 종류에 따라 색이 다른데, 내가 있던 지역에선 팥 색에 가까운 으깬 콩이어서 처음엔 팥인지 콩인지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짭조름한 삶아 으깬 팥과도 약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멕시코 음식이라 불리는 요리들, 화히타나 타코, 퀘사디아 같은 음식들을 좋아하고 할라피뇨도 잘 먹었기에, 멕시코 음식을 아주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멕시코에 와서 ‘진짜’ 멕시코 음식들을 먹어보니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밀가루로 만든 또띠야가 아닌 옥수수 또띠야는, 밥 먹을 때마다 늘 주는 건 고맙다만, 정말로 목이 멘다. 게다가 먹는 요령이 없어서 그런가, 먹을 때마다 입천장에서 부대끼는 게 영 먹기 힘들었다.


타말레스 tamales 라 불리는 요리도 먹어봤는데, 옥수수 반죽을 치킨, 돼지고기 등 적당한 속과 양념을 넣고 버무려 옥수수 껍질로 감싸 찐 요리였다. 개인적으로는 평양냉면이나 올챙이국수 같은 음식이었다. 처음 먹을 땐 ‘이게 무슨 맛인가?’ 싶을 정도로 맛이 잘 안 느껴지는 데, 또 익숙해지면 특유의 맛이 생각나는 맛.



멕시코 현지식에서 인상 깊었던 건 몰레 mole라 불리는 소스였는데, 만드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전부 다른 맛이었다. 우리가 김치란 이름으로 대충 채소 절여 고춧가루 버무린 건 전부 김치라 하듯이, 몰레도 ‘이거다!’라고 고정하기엔 안에 들어가는 재료가 너무 다양하고 맛도 다양했다. 심지어 어디는 초콜릿, 피도 넣었다. (우리의 피순대, 선지랑 비슷한 발상일 수 있겠다.) 맵지 않고 밋밋한 맛도 있고, 매운맛도 있고, 종체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 우리 팀 프랑스인 캠프 리더는 멕시코의 몰레를 정말 맛있다고 좋아했다. 난 먹을만했는데, 여전히 ‘맛있다’는 느낌까지는 안 왔다. 많이 낯설었지만, 그렇다고 현지식이 안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식사 과정도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이곳 주방에 있는 분들이 영어는 전혀 할 줄 모르기에, 컵이나 숟가락, 나이프 얻기도 처음엔 힘들었다. 간신히 쿠차라 cuchara (숟가락), 쿠치요 cuchillo (나이프). 그리고 바소 vaso (컵)이라는 단어를 익혀서야 가능하게 됐다. 이 단어들을 알려주는 현지 꼬마들이 ‘그렇게 하는 거 아님.’ 하면서 발음을 몇 번이나 교정해 줬다. 우리가 제대로 단어를 말하게 되면 그 친구들은 꽤나 흐뭇해하면서 숟가락을 내어줬다. 새삼 숟가락, 칼, 유리잔이란 영어 단어 spoon, knife, cup을 알고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탈리아 친구가 자기는 이 식당에서 아침을 먹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짠 계란과 짠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곤 아침 식사비를 돌려받고 개인적으로 준비한 블랙커피 한잔만 내려서 먹는 걸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친구가 아침을 잘 안 먹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다 다른 프랑스 친구를 통해 아침 식사를 처음으로 맛과 연결해 봤다. 이 친구도 아침엔 단맛이 필요하기에, 아침 식사로 짠맛을 선택하는 건 못하겠다고 했다.


사실 맛으로 아침 식사를 구분한 건 처음이어서 상당히 신기했다. 프랑스에 있을 때 홈스테이를 했기에 아주머니가 늘 아침을 준비해 주셨다. 그때 메뉴가 마들렌, 브리오슈와 잼, 크루아상, 홍차 등이었는데, 그렇게 먹으면서도 그냥 아침에 (밥 대신) 빵을 먹는구나 정도였다. 컨티넨탈 브렉퍼스트를 구분하면서도 그냥 메뉴 구성의 차이라고 생각했지, 맛으로 구분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나의 상식으로 아침식사는 ‘먹을 때 학업/일 능률이 더 좋은가?’의 논쟁의 대상일 뿐이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는 건 기본 전제였고, 다만 바쁜 아침 시간에 아침을 챙겨 먹을 여유가 없거나,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어 부대낄 때는 거르거나 간단하게 커피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가 아침식사에 대한 내 상식이었다. 아침에 먹을 수 없는 맛을 따진 적은 없다. 오히려 아침에 삼겹살을 먹을 정도로 헤비 하게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정도를 고민할 뿐.



그런 나의 반응에 프랑스 친구가 “넌 아침을 기계적으로 영양만 따지는구나.”라고 했던 게 신선했다. 뭐, 꼭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 친구가 자신의 아침 식사를 할 때 양손으로 몸을 감싸며 “난 지난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내 몸에 달콤한 기분을 선사해야 해.” 하며 눈을 감고 무척이나 흐뭇한 표정을 짓던 게 인상적이었다. 단맛을 찾지만, 당 떨어졌다고 채우는 게 아니라, 달콤한 기분을 위해서라는 발상이 말이다.






Bien manger, c'est très important!
(잘 먹는 것, 그거 참 중요하죠!)



예전에 프랑스에 있을 때, 실제로 본 광고 문구이다.

그때 이 광고를 웃으면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 잘 먹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이 친구 말을 들으면서, 혹시 ‘잘’의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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