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의 스페인어 수업과 워크캠프 프로그램

by 헤스티아

내가 참여했던 멕시코 워크캠프 단체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하였다. 유네스코 세계 문명 유적지인 팔렌케 유적지 보호 활동,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 지역 근처의 자연보호 활동, 농장 일손 돕기 및 현지 문화 체험 프로그램, (스페인어를 잘하는 사람들에 한해) 현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봉사 활동 등이 있었다. (스페인어를 잘 못해서 아이들 대상으로 한 교육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서 곧바로 캄보디아에서 진행된 영어 교육 봉사 워크캠프에 참가하기도 했다.)




첫날 저녁 얼굴을 튼 후 어느 바에 놀러 갔다. 그 바에는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있었다. 사실 그날 바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캠프 끝나기 전날 다시 만났을 때였다.

아직 이곳 분위기와 프로그램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낯선 우리 팀원들과 달리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술판에 갑자기 초대받아 낀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매주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데다, 다음번 프로젝트에 캠프리더로 참가하기 위해 미리 그전 캠프에 팀원으로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고, 장기 체류자들도 있어서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첫날 아침 로비에 모여 앉아 다른 팀이라도 서로 얼굴을 트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 각자 자신들의 팀 프로그램을 따라 흩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스태프가 데려온 뉴페이스가 나타나면 그대로 둥글게 서서 다짜고짜 건배를 외치기도 했다. 그냥 건배는 살루드 Salud라고 하는데, 신이 나서 술잔을 들고 외칠 때는 스페인어로 술잔을 위, 아래, 앞으로 들었다가 (입) 안으로 마시라는 의미인 ¡Arriba, abajo, al centro, pa' dentro!라고 외치면서 요란하게 마시기도 했다.


워낙 정신없이 흘러가던 분위기라, 이곳에서는 매일 일과가 이렇게 바에서 술판으로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술판은 까사 데 볼룬따리오에서 개별적으로 벌어졌고, 이 친구들은 이 날 처음보고 그리고 워크캠프 마지막 밤에 두 번째로 보게 되었다. 그 친구들도 2주간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왔기 때문이다.


유적지와 야외 자연보호 활동에 참가했던 친구들은 2주 사이에 새까맣게 그을려 왔다. 인상적이었던 건, 한 팀은 2주 동안 거울이 없는 지역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2주 만에 자신의 얼굴을 처음 본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어떤 사람들은 멕시코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는 다른 워크캠프로 이동하기도 했다. 우리 팀에도 거북이알 보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팀의 프로그램은 농장 봉사 활동과 장애인 시설 봉사활동이 주 봉사 프로젝트였고, 나머지 시간은 문화 체험과 스페인어 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이 체험에서 느낀 점이 있는 것들은 따로 다른 에피소드에서 언급할 테니, 여기서는 스페인어 수업에 대한 이야기만 간략히 하겠다.


원래 프로그램 참가비에 수업 시간에 비례하여 스페인어 수업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매번 참여하는 팀원들의 스페인어 레벨이 제각각이다 보니 실제 수업을 동시에 진행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던 점이 이 부분이었는데, 스페인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왕초보와 약간 구경이라도 한 초보를 한 반에서 수업을 하려 한 것이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그곳도 무조건 프랑스어만을 사용해서 가르쳤다.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이든, 모국어가 프랑스어와 비슷한 로망스어 계열(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출신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프랑스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일단 현지어 100% 상황에 던져놓고 계속 반복하기만 했다. 정말로 못 알아듣고, 행정 처리 등에 꼭 정확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경우에만 영어로 설명을 해줬다. 그렇게 한 두 달 보내다 보면, 학생들끼리 눈치 싸움도 하고, 사전도 찾아보고, 프랑스어 더 잘하는 한국인들에게 물어가면서 조금씩 알아듣게 되었다. 사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예 프랑스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언어가 대충 어떤 건지 한 번이라도 구경하고 기초반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한 두 달 사이에 훨씬 빨리 언어가 늘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할 때도 그런 구분이 없었다는 점이 상당히 아쉬웠다. 그때 스페인어 수업을 같이 듣던 멤버 중 두 명은 스페인어를 전혀 배운 적이 없었고, 한 명은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 사람과 스페인 사람은 처음 만나 서로 자기 나라 말로만 이야기해도 70%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대신 간단한 단어들의 어미가 조금씩 달라서 정확한 문장이 안 나올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첫날 수업을 했더니 전혀 진행이 되지 않아서, 결국 그다음 시간부터는 우리 팀에 할당된 수업 시수를 1부, 2부로 나누어 진행했다. 참가 인원이 반으로 줄어서 그 절반의 시간만 수업을 해도 1인당 할당된 시간은 비슷하다는 논리였다. 사실 여러 명이 듣더라도 수업을 더 많이 듣는 게 유리할 수 있지만, 그래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는 최선의 방안이었기에 받아들였다.



나는 이탈리아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친구랑 비할 바는 못하지만, 그래도 수업을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었고, 대신 문장을 아직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2주 간의 스페인어 수업으로 말문이 크게 트이진 않았다. 그래서 더 준비해 가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같은 자원봉사자 숙소에 있던 캠프 리더들과 현지 스태프들이 스페인어를 다 잘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숙소에서 얘기하는 동안 도와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한된 수업 시간에 다 하지 못했던 스페인어 수업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


그래도 문화 체험을 위해 박물관을 간다든지, 현지 가이드 설명을 듣거나, 워크 캠프 끝난 후 짧은 멕시코 시티 여행에서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을 할 만큼은 알아들은 건 미리 공부를 했던 게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국어를 배울 때 구문의 패턴이 파악되기 쉬운 간단한 책을 많이 보는 걸 좋아한다. 왕초보 때에는 패턴이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길고 복잡한 이야기(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책이나 영화)를 처음부터 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교재 한 두 권을 보아서 감을 잡았고, 또 하나 도움이 되었던 공부법이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 두 언어가 동시에 적힌 동화책을 많이 봤다. 미국의 히스패닉계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이런 식으로 출판된 동화를 아마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Scholastic 출판사에서 나온 Eric & Julieta 시리즈도 많이 봤고, Curious George 시리즈 중 bilingual reader로 나온 책들도 봤다. (이 시리즈들은 일대일로 문장을 바로바로 비교해 볼 수 있어서 빠르게 익히기 좋다. 다만 문장이 너무 짧아서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다.) 다른 bilingual 동화들도 읽다가 아예 스페인어로만 된 동화들도 읽었다.


이렇게 조금 익숙하게 출발한 후, 현지 벼룩시장에서 Mafalda 시리즈 만화를 사서 워크캠프 기간 내내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난다. (Mafalda는 현지에서도 인기 책인지 비닐로 싸여있는 새 책이었고, 전혀 세일도 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배우는 제2외국어는 이렇게 간단한 문맥 속에서 익힐 때 단어 외우는 괴로움도 적고, 몸에 빨리 익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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