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Cuidado(조심해)를 외쳐주는 사람들

그리고 멕시코 전통시장 소매치기.

by 헤스티아

“Where’s my food?”

멕시코 워크캠프 우리 팀 캠프리더의 첫마디였다.

드디어 그날 저녁 늦게 일주일을 함께 할 이전 팀 멤버들과 캠프리더를 만났다. 대만에서 온 여대생들, 프랑스에서 온 여자 참가자, 멕시코 현지 참가자가 있었다. 유머러스하게 말문을 튼 캠프 리더도 프랑스인이었다.

그날 나와 일본 친구는 현지 스태프의 도움으로 Mercado de Dulces를 둘러보고 왔다. Dulces의 어감이 영어의 sweets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달달한 간식거리류. 시장 건물에 들어서면 가게마다 젤리, 사탕, 빵, 파이 같은 간식거리를 그대로 쌓아놓고 파는 곳이었다. 늘 포장된 과자와 사탕을 보던 내겐 신기한 느낌이었다. 너무 많은 종류를 한곳에서 보자 막상 뭔가를 집어보겠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은 채 그대로 시장 투어가 끝나서 우린 빈손이긴 했다.

드디어 팀원을 만나고, 우리도 소속이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진짜 소속감을 느낀 건 다음날이었다.


추가로 인출을 해야 했는데, 내 거래 은행은 소깔로 광장에서 한참 더 내려가는 곳에 있었다. 잠시 은행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했더니, 캠프리더와 팀원들이 내 일정에 맞춰 다 같이 움직일 준비를 했다. 아마도 캠프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팀원들의 안전도 다 캠프 운영 측의 책임이란 생각으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은행에서 돈 뽑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용무를 팀 전체가 함께 움직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고 보니 별다른 할 일이 없는 시간엔 마을 마실을 겸한 거라 그리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좋았다. 낯선 곳에서 돈을 인출하는 일은 경계를 많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이런 곳에서도 안전하게 함께 다닐 사람들이 있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을 여행 후 (첫날의 우울함 뒤에) 곧바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팀원들과 함께 다니는 소속감은 밤에 더 빛이 났다.

내 성격상 낯선 곳에선 어두워지면 다니질 않는다. 여기선 종종 저녁을 먹으러 다 함께 식당가에 나갔다 돌아오기도 했다. 저녁 시간에 소깔로 광장을 지나쳐 까사 데 볼룬따리오로 돌아오는 길엔, 그 시간에만 무리 지어 다니는 동네 개들이 있었다. 그들도 비교적 사람들이 적은 이 시간이 안전한 시간인 듯, 앞에 리더를 따라 대여섯 마리가 세를 과시하며 일렬로 돌아다녔다. 아마 혼자 그 개들을 만났다면 상당히 겁을 먹었을 것 같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골목길로 들어서면 한 명만 지날 수 있는 좁은 인도에 일렬로 우리도 올라섰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 장난 겸 구호 겸 “Ten Cuidado!(조심해!)”를 외치면 낄낄대며 차례로 “Ten Cuidado!”를 외치며 숙소로 돌아왔다. 조심할 것은 어두운 밤엔 잘 안 보이는 중간중간 깨어진 돌틈이나 인도의 움푹 꺼진 부분이었긴 하지만.


이곳은 위험할 거라 걱정하던 ‘멕시코’가 아니라,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까사스의 워크캠프 순간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지역이 비교적 안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묵던 까사 데 볼룬따리오가 한 번은 도둑의 습격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미 그때 참가했던 멤버들은 거의 다 워크캠프가 끝나 돌아갔지만, 그중 장기 프로그램으로 체류 중인 프랑스 참가자도 있었다. 이 참가자는 여권을 도둑맞아서, 남은 기간 여권 복사본으로 어찌어찌 지내고 있었다. (나중에 프랑스 돌아갈 때 어쩌려나 싶었는데, 한참 뒤 페이스북에서 찾아본 근황에선 말끔하게 머리도 하고, 프랑스 대학원 졸업식에 무사히 참여한 모습을 보아 별 탈 없이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범죄를 직접 겪진 않았지만, 소매치기의 타깃이 된 적도 있다. 그날의 워크캠프 공식 일정이 끝난 후 오후엔 보통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에 다 같이 모여 저녁 먹고 술 마시고 놀기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중 하루는 숙소 근처 Mercado de Santo Domingo전통 공예품 시장을 몇몇 팀원들과 돌아다녔다. 각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흩어져서 돌아보는데 나는 친해진 일본 친구와 함께였다. 이 친구의 장점은 처음 보는 누구에게든 환한 미소로 상냥하게 대한다는 것인데, 그게 여기선 사달이 났다.



어떤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어디서 왔는지 물으며 말을 걸었다. Where are you from? 정도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 발음도 불분명하게 뭉개져서 어눌한 데다, 이도 몇 개 빠져서 아무래도 인상이 좋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대충 대답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계속 말을 걸었다. 일본 친구는 사심 없이 자기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대답해 줬다. 그랬더니 계속 따라오는 것이었다. 괜히 이상한 사람이 붙었구나 싶어 그다음부턴 최대한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관심을 끄고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었다.



그렇게 시장 안을 돌아다니고, 인디헤나 수공예 인형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가방도 구경하고, 다른 수공예 직물들도 구경하고 다니는데, 어느 순간 시장의 할머니들이 말을 걸었다.


¿Hablas español? (스페인어 할 줄 아냐?)

(잘 못하기에) No.라고 대답했더니, 그대로 스페인어가 쏟아졌다. 다행히 대충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Hay un hombre que trata de robarte la bolsa. (네 가방을 훔치려는 남자가 있어.)

Ten Cuidado! (조심해라.)


완전하게 못 알아들어도, 가방과 이상한 남자가 있다는 말만으로도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되었다. 그 할머니들이 가리키는 곳을 봤더니, 아까 인상 안 좋던 남자가 한 10m 거리를 두고 계속 우리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던 거다. 시장 할머니들이 다 눈치챌 정도로 꽤 오랜 시간 따라다닌 듯했다.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는데 흰 천막들 사이의 미로 같은 곳에서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급한 대로 나오지도 않는 스페인어 중 Dónde(어디)와 la salida(출구)만 강조하며 출구를 찾았다.


¿Dónde está la salida? (출구가 어디예요?)


다행히 시장의 할머니들은 서로 손을 가리키며 para aqui (이쪽으로)라고 알려주셨다. 그 길로 그대로 숙소까지 가면서도 혹시나 그 남자가 계속 따라올까 봐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그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도 않았고, 다른 캠프 멤버들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캠프 멤버들이 조심하라면서도 긴장 풀라며 농담 삼아 건넨 말을 보니, 그 남자를 유인한 데는 내 가방도 한몫한 것 같다. 여권이며 기타 중요한 것들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던 내 크로스백이 ‘돈 있는 사람’처럼 보인 댔다. (명품도 아니고 시장에서 산 천가방이었는데도, 이것저것 많이 담고 다닌 데다, 시장에서 물건도 계속 구경하고 고르고 있었으니까...)


진짜 흉악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 보는 시장 할머니들이 하나같이 나서 주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이 날의 오싹함을 바로 털어놓고, 함께 숙소에서 지낼 멤버들이 있어서 더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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