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캠프 막바지에 바비큐를 하기로 했다. 콜렉티보라 불리는 미니버스를 타고 바비큐장으로 향했다. 미리 돈을 걷어 소시지와 고기를 사러 큰 마트까지 다녀왔다. 우리가 묵던 숙소 근처의 재래시장에서도 고기를 팔았고 가격이 무척 쌌다. 처음엔 시장에서 고기를 샀는데, 나중에 현지 스태프 말에 의하면 그곳의 고기는 등급이 매우 나쁘니까 가급적 먹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사람들이 간사한 게, 그 말 듣기 전까지는 싼 가격에 고기를 잘 사 왔다며 맛있게 먹었는데 그다음 날 괜히 배가 아픈 것 같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진짜 탈이 난 사람은 없었다. 뭐, 항생제 등의 성분이 문제가 될 수는 있을지도.) 물가가 싸다는 멕시코, 특히 치아파스 지역이라도 대형마트의 고기와 소시지는 전혀 싸지 않았다. 우리로 따지면 백화점급이나 되던 마트를 갔던 것인가...
바비큐장은 숲 속의 유원지 같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숲길을 따라 어느 정도 걸어올라 가면 작은 정자, 바비큐 시설, 화덕이 보였다. 불을 피우는 건 프랑스 장기 체류자 마린의 몫이었다. 대학원 인턴쉽 대신 이곳에서 한 학기 동안 자원봉사를 하고, 그전에도 다른 NGO 단체에서 장기 체류 자원봉사를 하던 친구였다. 우리가 Magician Marine이라고 부를 정도로 못하는 게 없었다. 대놓고 넌 못하는 게 뭐냐라고 물었을 때도 자기 입으로 “딱히 그런 것 없는데?”라고 할 정도였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저녁 시간에는 영상 편집을 하면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 있었고, 낮에는 숲 보호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활동하며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우리 팀원들은 다들 넋 놓고 마린이 나뭇가지를 모아 불 피우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나마 검댕이 묻은 손 닦으라고 물티슈 정도 건네주는 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도움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불을 피우고 바비큐를 시작했다. 고기 굽는 냄새, 소시지 굽는 냄새에 떠돌이 개들이 한 마리씩 모였다. 한 친구가 개에게 고기를 주고 싶어 했지만, 그럴 경우 이 동네 개들이 다 몰려들 수 있다고 해서 말렸다. 그렇게 고기와 소시지를 접시에 담고 식사를 하려는데, 이태리 친구들이 빵을 찾았다. “우린 이탈리안이니까!” 라며 빵이 없는 식사를 상상하지 못한다고 했다. 고깃집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지만, 안 먹어도 되는 내 입장에서는 식사 옆에 반드시 빵이 필요한 친구들이 재밌었다. 굳이 빵 없이 고기를 먹지 못하는 그 친구들을 이해해 보자면, 예전에 밥 없이 김치만 접시째 먹던 캐나다 친구를 봤을 때의 충격과 비슷하려나.
이제 막 한 접시를 먹고 다시 고기를 구우려는데, 아까부터 물을 흠뻑 머금고 있던 구름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며 폭우를 쏟아부었다. 간신히 피운 불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우산을 불 위에 들고 있으며 불과 고기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래도 막지 못한 빗물에 꺼지는 불에서 연기가 많이 났다. 가까이서 고기를 굽기엔 연기가 너무 매웠다. 그때 가느다랗고 기다란 막대기 두 개가 있었기에,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기를 피하며 소시지와 고기를 붙들어 구웠다.
그 순간 주변의 경이로운 눈빛을 아직 잊지 못한다. 박수를 칠 정도로 신기하게 쳐다봤다. 요즘은 아시안 요리를 먹으면서 젓가락질하는 서구권 사람들도 흔하게 보지만, 불 위에서 미끄러운 소시지를 놓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했나 보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요즘 말로 하면) ‘봐라, 이게 K 젓가락질이다’하고 가볍게 우쭐대고 넘어갔는데, 그 에피소드를 마음 한편에 한참 두고 살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든다.
젓가락질이 내 몸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어린 시절부터 우린 얼마나 많은 연습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해왔던가. 나이가 들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면, 의식하며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의식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해왔던 연습량에 극히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조바심은 더 많이 느낀다.
영어권에서 자라지 않아서 후천적으로 영어에 써야 할 시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외국어를 배우는 그 자체는 재미있지만, 쓸모 있는 수준으로 만들기에 투자할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건 역사와 교양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구권 사람들은 유럽 위주의 세계사와 유럽의 미술, 예술, 철학 등을 위주로 공부하면 되는데, 우린 한국사와 한국 문화 예술 철학을 의무적으로 배우면서 거기다 유럽권 문화 예술, 철학, 세계사 공부를 추가로 해야 어디 가서 교양 지식을 좀 채웠다고 할 수 있다. 이중으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서 좀 억울할 때가 많았는데, 또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체화된 시선과 능력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잘 찾아내고 활용한다면, 나이 들어 뭔가를 배울 때의 조바심은 좀 누그러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