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차물라 투어를 가는 사람들은 옆 마을인 씨나깐딴 마을도 함께 간다. 이 마을은 화려한 것을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직물 수공예가 발달하고 꽃을 좋아하고 그들의 전통 옷에도 화려한 자수가 놓여있다. 차물라 마을과 달리 사진 찍는 것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
가이드 투어를 하면 마을의 어느 집으로 견학을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옥수수 타코 굽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자리에서 구운 타코를 시식할 수 있게 나눠주는데, 몇 번 이야기했다시피 옥수수 타코를 음료 없이 그냥 먹기는 너무 퍽퍽하다. 그래서 예의상 맛을 조금만 봤다.
그 집의 마당을 비롯해서 이 마을의 마당에는 직물을 짜고 염색하고 수를 놓는 수공예가 발달했다. 여행 초창기여서 굳이 여기서 뭔가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산 크리스토발이나 멕시코 시티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자수 공예품보다 훨씬 정교하긴 했다. 푸른색, 보라색 계열을 많이 사용한 자수품이었다.
어느 정도 마을을 돌아보고 나선 마을의 교회도 구경 갔다. 이 마을 교회에서 신전에 바친 꽃의 양과 화려함에 압도되었다. 매일 생화를 이만큼씩 올리려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 역시 이들의 주 생산품 중 하나였다. 마을 교회에서 마을 주민 남자들이 가이드 옆에서 설명을 도왔다. 이 마을에선 결혼을 하려면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을 해야 하고, 여자가 그 청혼을 받아들여야 가능하다고 했다. 청혼을 거절하면 안 되냐고 하니, 그것도 가능은 하다고 했다. 절반은 관광객에 대한 농이 섞여 있어서, 어느 정도로 진지한지는 모르겠다.
사실 씨나깐딴 마을은 차물라 마을과의 관계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차물라와 시난깐딴은 마야 후예로 하나로 묶기에는 너무나 다른 색을 띠고 있다. 이 두 마을은 서로 엄청 싫어한다. 이들이 싫어하는 모습은 정확히 분석심리학의 대가 이부영 선생님의 ‘그림자’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과 한국처럼 이웃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서로의 그림자를 투사하고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일본은 역사적으로 싫어할 이유라도 있는데 일본이 우리를 싫어하는 건 그림자 이론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자 책에선 그리스와 터키를 그림자 관계로 설명하기도 하고 스위스와 이탈리아, 스위스와 독일에서도 그림자 관계를 찾는다.
앞서 씨나깐딴 마을 사람들이 화려한 것을 아주 좋아한다는 점에서 차물라 마을은 전형적으로 그들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것 같다. 차물라 마을의 검은 양털 치마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주생산품이 꽃과 같은 화려한 품목이 아니라 감자라는 소박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씨나깐딴 마을 사람들은 차물라 마을 사람들이 거짓마을 잘하고 게으르다고 비난하는데, 그러니 차물라 입장에서도 씨나깐딴 마을이 곱게 보이진 않는다.
그림자를 투사해서 비난하는 건 자신의 경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한다. 이웃 나라 단위에서 그림자 투사하는 것에서 더 내려가면 지역감정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거기서 더 내려가면 마을 단위에서도 그림자 투사가 일어난다. 사실 아주 작은 모임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배제시키며 자기와 같은 편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으려 하고, 무의식 중에 자신의 그림자를 배제시키며 자신의 경계를 확인하려 한다. 안타깝지만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통합하려는 성숙함이 없다면 이 현상은 대상을 바꿔가면서 계속 일어난다. 그래서 특정 지역이 서로를 비난하는 현상에 대해 그 지역의 문제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저 인간의 본성을 이 작은 마을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